주님께서 이스라엘을 고발하시다(6,1-5)
하느님은 이스라엘과 변론하자고 하시며 그 변론에 대한 증인으로서 산들을 세우셨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진실이심을 증거 하기 위함이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하였느냐?
내가 무엇으로 너희를 성가시게 하였느냐? 대답해 보아라.(6:3)”
하느님께서 이렇게 물으심은 마치 목자가 양떼를 인도해 준 것처럼
그토록 은혜를 베풀어주었고 그토록 선한 길로 인도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온갖 불법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그들의 행위를 이해 할 수 없으셨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에게 “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슨 일로 너를 괴롭혔느냐”고 물으신 것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로부터 이끌어 내시고
그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고
또한 모압왕 발락과 거짓 예언자 발람의 계략으로부터 보호해 주셨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물으심에 대하여 대답하기를 원한다면
싯딤으로부터 길갈까지를 기억하면 될 것이다.
여기 싯딤은 여호수아가 요르단을 건너기전 예리고성에 정탐군을 보낸 곳이다.
그러므로 싯딤은 약속의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첫 걸음을 옮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후 요르단을 건넜고 길갈에 이르러 그곳에 진을 치고
하느님의 명하심에 따라 광야에서 태어나
할례를 받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할례를 행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출애굽 여정 가운데 이 짧은 여정만을 회고해 볼지라도
하느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인도해 주셨는지,
베풀어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은
이처럼 이스라엘 자신이 증인이 될 뿐만 아니라 산과 땅이 증인이다.
이 확실한 증인들 앞에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물으심에 대답해야 했다.
참다운 경신례(6,6-8)
예언자 미가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변론 하시는 것을 듣고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
즉 미가의 고백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높으신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은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드리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님께서 보여 주신 대로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느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다.
여기 하느님과 함께 행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사는 것이 바로 높으신 하느님을 경배하는 삶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은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의 진정한 의미다.
즉 하느님께서 이런 것들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은
마음이 떠난 형식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물까지 원치 않으신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마음이 담긴 예물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불의와 징벌(6,9-16)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완전한 지혜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자임을
말씀하신 후 다시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해 주시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지혜란 진리 또는 복된 길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여기 하느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함으로
그의 말씀에 따라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은 至福에 이르기 위하여 하느님을 경외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스스로 죄의 길을 택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여전히 “거짓 저울추”가 사용되고 있었고
또한 부자들의 횡포가 행해지고 있었다(6:11-12).
그러므로 이스라엘 가운데 “거짓 저울추”와 “부자들의 횡포”가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떠나 죄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3-16절에서 하느님은 불의한 이스라엘에게 죄로 인하여
받게 될 심판에 대하여 말씀 해 주셨다.
죄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은 먹어도 배부르지 않을 것이고
씨를 뿌려도 추수하지 못할 것이고
또한 올리브를 짜도 기름을 얻지 못하고 포도를 밟아도 술을 마시지 못할 것이다.
죄를 범한 이스라엘은 탐욕으로 인하여 많은 것을 소유할지라도
그것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들은 일평생 재물을 모으는 일에 힘쓸지라도 오히려 그 재물은 그들에게 다툼의 씨앗이 되어
결국은 소유하지 못한 것보다 더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사실은 사람이 주어진 환경에서 주어진 것을 누리며 사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이런 복은 하느님께서 경외하는 자들에게 허락해 주시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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