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환시 : 메뚜기 떼(7,1-3)
*7장에서는 아모스가 본 세 가지 환상이(1-3절, 4-6절, 7-17절)
모두 아시리아의 침략을 예고한 것인데,
처음 두 환상은 아모스의 중재기도로 모면되었으나
세 번째 환상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7,1-3 :
본문은 세 가지 환상 가운데 첫째로 메뚜기 환상이다.
“그분께서는 두 번째 그루 곡식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에
메뚜기 떼를 빚고 계셨다.“에서
두 번째란 “이미 하느님의 심판을 받은 후”가 될 것이다.
따라서 다음의 표현 “그루 곡식이 올라오기 시작할 무렵”이라는 말은
심판의 고통으로부터 회복되는 시기를 말할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때에 하느님께서 “메뚜기를 지으셨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허용하지 않으신다는 의미다.
메뚜기들로 하여금 그 싹들을 먹어버리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첫 번째 환상은 하느님의 심판이 계속되어
결국 이스라엘이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러나 예언자의 중재기도로 주님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두 번째 환시 : 불(7,4-6)
두 번째 환상은 불에 의한 심판이다.
첫 번째 환상이 죄를 끝까지 추적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면,
두 번째 환상은 심판의 위력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징벌하시기 위하여 보내신 불은
큰 바다와 육지를 삼킬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첫 번째 환상과 두 번째 환상은 강조점이 서로 다를지라도
어떤 사람도 하느님의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는 동일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
그래서 아모스는 이런 두려운 심판에 대한 환상을 본 후
하느님께 이스라엘을 위하여 중재기도를 했던 것이다.
하느님은 아모스의 기도를 들으시고, 주님께서 뜻을 돌이키셨다.
그리고 “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세 번째 환시 : 다림줄(7,7-9)
아모스가 본 세 번째 환상은 다림줄에 대한 환상이다.
여기 다림줄이란 담을 쌓을 때 수직으로 올바르게 쌓았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건축 용구다.
그러므로 본문에 언급된 다림줄이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사용하신 판단 기준을 말한다.
9절의 “산당”과 “성소”는 우상숭배와 관련된 것들을 상징하는 말이고
“여로보암의 집”은 우상숭배를 장려하고
백성들을 학대하는 자들을 상징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말들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도덕적 부패를 심판하셨다는 것을 말해 준다.
즉 하느님의 손에 들려 있는 다림줄이란 이스라엘의 의로움과 불의를
판단하시기 위하여 주신 율법들을 말한다.
“내가 지금 내 백성 이스라엘 한가운데에 다림줄을 드리우려고 한다.
나는 더 이상 그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겠다.
이사악의 산당들은 황폐해지고 이스라엘의 성소들은 폐허가 되리라.
내가 칼을 들고 예로보암 집안을 거슬러 일어나리라.”(8-9절)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율법에 따라 이스라엘을 판단하고
그들이 죄를 지었을 때에는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의미다.
특별히 세 번째 환상에서는 다른 환상에서 볼 수 있는
아모스의 이스라엘을 위한 중재 기도를 찾아 볼 수 없는데
이것은 문맥으로 볼 때 이스라엘이 회개치 않는다면
중재기도도 그들의 죄에 대한 심판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함일 것이다.
아모스가 베텔에서 쫓겨나다(7,10-17)
벧엘의 제사장 아마츠야가 아모스에게 예언을 금한 내용이다.
벧엘의 제사장은 송아지 우상이 있는 성소의 제사장이다.
벧엘의 성소는 여로보암 1세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금하기 위하여 세운 성전이다.
그는 그곳에 송아지 우상을 세웠다(열왕상12:25-33).
그러므로 벧엘 성소 자체가 불법이고 또한 제사장 자체가 불법이다.
왜냐하면 벧엘의 제사장은 레위족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에 의하여 세움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북쪽)의 제사장은 여로보암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봉사하는 자였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아모스를 대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한편으로는 아모스를 여로보암(2세)에게 고발하였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모스에게 벧엘을 떠나
유다로 돌아가라고 위협했던 것이다.
아모스는 아마샤에게 어째서 자신이 벧엘에 와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지 밝혔다(7:14-17).
그가 자신은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아들도 아니고
다만 목자이며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라고 말한 것은
자신이 벧엘에 와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오직 하느님의 강권하심으로 인한 것이지
다른 목적이 아님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모스는 벧엘의 제사장처럼 직업적으로 예언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모스가 이처럼 말한 것은 자신이 선포하는 말씀이
바로 하느님께로부터 온 말씀이기 때문에
누구도 금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벧엘의 제사장이 듣지 않았을 때
아모스는 그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씀을 선포하는 것 자체를 금한 것에 대하여
하느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말했다.
하느님의 심판은 제사장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과 그의 나라(이스라엘)에게까지 미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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