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예레미야서 공부

예레미야서 6장 공부① : 예루살렘에 대한 공격 개시

윤 베드로 2017. 5. 6. 07:34

예루살렘에 대한 공격 개시(6,1-8)

 

*6장에서 예레미야는 유다로 하여금 심판을 면하게 하려고

       온 백성 중에서 진리와 공정을 추구하는 한 사람을 구했지만(5,1), 끝내 구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성읍이 훼손되며 가지가 꺽이는 심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5,10).

본장에서는 이 심판의 확실성이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즉 앞서 4-5장에서 언급된 바 있는 세 가지 주제들을 제시한다.

     ①바빌론 침략에 대한 예언(1-8절),

     ②유다의 죄에 대한 하느님의 탄핵(9-21절),

     ③심판 날의 참상에 대한 예고(22-30절).

 

6,1-8 :

하느님은 베냐민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했으므로

               그곳을 피하라고 말씀하셨다.

본문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4장 5-6절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 구절들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유다의 각 성읍들 가운데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전하시며

     유다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으로 피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유다의 성읍들이 바빌론에 의하여 하나하나가 정복당할 것을 말씀해 주고 있다.

이처럼 유다의 성읍들이 바빌론에 의하여 점령당할 때 예루살렘은 그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유다에게 예루살렘으로 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예루살렘 성으로 피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지금은 유다에게 마지막 피난처가 되고 있는 예루살렘조차

            바빌론에 점령당할 위기에 있기 때문에 하느님은 또 다시 예언자를 통하여 예루살렘으로

            피난해 온 자들에게 그 성을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 “트코아에서 나팔을 불고 벳 케렘 위에 봉화를 올려라.(6:1)”는 말은

          예루살렘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느님께서 유다의 성읍들에 살고 있는 자들에게 예루살렘성으로 피하라고

                   말씀하신 때부터(4:5-6) 그 성을 떠나라고 말씀하시기 전까지(6:1)

           예루살렘은 하느님께 심판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

예루살렘성은 성전이 있는 곳으로서 이스라엘의 신앙의 중심지였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유다의 모든 성읍들보다 이곳을 마지막까지 남겨 두신 것이다.

왜냐하면 유다의 성읍들 가운데 신앙의 중심지인 이곳에서

                백성들이 회개할 가능성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은 유다 성읍들 가운데 예루살렘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회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다.

그래서 하느님은 예루살렘을 파멸시키기로 작정하셨다(2절).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은

         마치 목자들이 기름진 풀밭을 발견하고 서둘러서 자기 양떼들을

         이끌고 그리로 모여드는 것과 같이 재촉되었고(6:3),

또한 전쟁의 시기를 정해놓은 군사들이 날이 저물어

          시간을 재촉하는 것처럼 가까이 이르렀다(6:5).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는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샘이 물을 솟쳐 내는 것같이 계속 악을 솟구쳐 내고 있었다(6: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또 다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루살렘아, 교훈을 받아들여라.

               그러지 않으면 내가 너와 갈라서고 내가 너를 폐허로 만들어 인적 없는 땅이

                되게 하리라.(6:8)”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셨다.

 

마음이 굳은 자들에 대한 징벌(6,9-15)

 

예루살렘이 끝까지 회개치 않을 때 그들에게 두려운 심판이 임할 것이다.

하느님은 바빌론 군대에게 “이삭 줍는 자”처럼 포도원(유다)에서

                남은 포도송이를 모두 따라고 말씀하셨다(9절).

이 말은 이삭줍는 자가 지나간 포도원에서 열매를 찾을 수 없는 것처럼

             예루살렘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그들 모두 바빌론에 사로잡혀

             그 땅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예언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대언해도 예루살렘에는 그 말씀을 듣는 자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귀가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할례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하신 신앙의 의식으로서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에게 행하였으며,

            계약의 자손임을 나타내는 표식이었다(창17;9-14).

그러므로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한다(10절)”라는 말은

                그 귀가 하느님과 단절되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권고의 말씀을 주실지라도

             그들은 오히려 그 복된 말씀을 욕으로 여기고 즐거워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하느님의 진노가 그들 모두에게 내린 것이다.

그래서 유다 모든 사람, 아이들과 청년들과 지아비와 지어미와

            노인과 늙은이가 다 잡힐 것이고(6:11)

             또한 그들의 집과 전답과 아내가 모두 다른 이들에게 넘어 갈 것이다(6:12).

이와 같은 사실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가장 큰 불행은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13-15절의 말씀은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유다가 얼마나 부패하게 되었는지 말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