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예레미야서 공부

예레미야서 5장 공부① : 신문 뒤의 판결

윤 베드로 2017. 5. 5. 07:40

신문 뒤의 판결(5,1-6)

 

*5장은 심판의 당위성이 진술되어 있다.

즉 유다의 심각한 범죄로 인하여 더 이상 심판의 유보가 불가능함이 강조된다.

이는 예레미야 두 번째 설교(3,6-6,30)의 주제이기도 하며,

         반복되는 범죄에 대한 공의로운 하느님의 보편적인 보상이기도 하다.

 

5,1-6 :

하느님은 유다를 향하여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1절)”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당시 유다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말해 주는 동시에

                 또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삶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를 통하여 예루살렘의 회복을 기대하시겠다는 의미도 된다.

예레미야는 유다에 대한 하느님의 정죄하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주님, 당신의 눈이 진실을 찾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5:3)”라고 말하며

             유다의 죄를 변명할 수 없음을 인정하였다.

하느님의 백성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바로 영적 무감각이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하나님의 비밀을 받은 자들이 깨닫지 못함에 대하여

              “그들은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마르4:12)”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은 보아야할 것을 볼 때 그리고 들어야 할 것을 들을 때

                비로소 하느님을 경외하게 되고 또한 은혜 가운데 살 수 있다.

유다는 이런 영적 민감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권고의 날에도 하느님께 돌이킬 수 없었다.

예언자는 이런 그들의 모습을 “그들의 얼굴을 바위보다 굳게 하여

                돌아오기를 거절하였다(5:3)”라는 말로 표현했고,

                이처럼 마음을 완고케 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진 그들을 보며

                 “저들은 가련하고 어리석기만 하다. 그들이 주님의 길을,

                   저희 하느님의 법을 알지 못한다.(5:4)”라고 탄식하였다.

 

예언자의 눈은 백성들의 부패한 모습으로부터 돌려 그들의 지도자에게로 향하였다(5절).

그가 이렇게 한 것은 그들은 하느님의 법을 아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지도자의 의무는 하느님의 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한다면 그곳에는 언제나 소망이 있다.

예언자의 눈이 지도자에게로 향한 것은 그들의 모습 가운데

                이와 같은 참된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언자는 그들은 본 후 더 큰 실망을 하였다.

그들은 하느님의 법을 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 법으로부터 떠나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 “그들 역시 멍에를 부러뜨리고 그 줄을 끊었다.(5:5)”라는 말은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말씀으로부터 떠나 있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그들은 마치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들에게

             멍에와 결박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그것을 끊어버렸던 것이다.

이처럼 지도자들이 부패했을 때 백성들이 부패에 빠지는 것은 당연하다.

지도자의 부패가 결국은 백성들의 부패를 가져왔고

                이로 인하여 유다는 총체적인 부패에 빠졌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義人 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5:1).

 

“그러므로 숲 속의 사자가 그들을 물어뜯고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찢어 죽일 것입니다.

또 표범이 그들의 성읍마다 노리니 거기에서 나오는 자는 누구나 갈갈이 찢길 것입니다.

그들의 반역이 잦고 그들의 배반이 크기 때문입니다.(5:6)”

사자, 이리, 표범은 범죄한 유다를 징계하기 위한 심판의 도구들을 말한다.

실제로 이것들은 유다를 둘러싼 열방들을 상징하고 있다.

이런 맹수들이 수풀에서도 나오고 사막에서도 나오고 어느 곳에서도 나온다.

그러므로 범죄한 유다가 이들로부터 오는 위험에서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느님의 백성에게 가장 안전한 길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임을 말해 준다.

 

풍기 문란(5,7-9)

 

하느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안전이 되어 주시기 때문에

                그를 경외하는 자들은 언제나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피신하는 저의 바위 저의 방패, 제 구원의 뿔, 저의 성채이십니다(시편18:2).”

돌이킬 줄 모르는 유다의 부패함으로 치닫는 유다의 모습은

             마치 살찌고 두루 다니는 수말과 같았다(5:8).

그러므로 하느님은 유다를 불쌍히 여기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이 부패한 유다를 용서해 주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하여 “내가 어찌 너를 용서하겠느냐(5:7)”

“내가 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이따위 민족에게

          내가 되갚아야 하지 않겠느냐?(5:9)”고 말씀하신 것이다.

 

온갖 궤변에 대한 주님의 응답(5,10-14)

 

이미 언급한 것처럼 유다는 총체적으로 부패했다.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받은 유다는 하느님의 존재조차 부인하기에 이르렀고,

             그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대언해야 할 예언자들도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하므로 그들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은 거짓뿐이었다.

이로 인하여 심판은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하느님은 심판 중에서도 그들에 대한 자애를 잊지 않으셨다.

그래서 “그들의 포도밭 두둑 사이로 올라가 파괴하여라.

그러나 끝장은 내지 말고 그 가지들만 잘라 내어라.

그것들은 주님에게 속해 있지 않다(5:10)”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예루살렘성의 격파를 허용하셨다.

그러나 가지만 꺾으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대적들이 하느님의 백성들을 칠지라도

            하느님께서 허용하신 것만을 칠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특별히 가지만 꺾으라는 것은 뿌리를 파손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뿌리가 남아 있는 한, 때가 이르면 그곳으로부터 싹이 나올 것이다.

싹이 나온다는 것은 곧 유다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주 만군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들이 이런 말을 했으니 이제, 내 말이 너의 입에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은 장작이 되게 하여 그 불이 그들을 삼키게 하리라.(5:14)”

여기 “너희가 이런 말을 했으니”란 유다가 하느님에 대하여 한 말

          즉 “주님께서는 계시지 아니하니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할 것이다…(5:12)”를 말한다.

유다가 이처럼 하느님을 부인했으므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스스로를 증명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불이 나무를 태우는 것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겠는가?

그들이 부인한 하느님은 불이 되고 그들은 나무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불 태워질 것이고 이로 인하여 하느님의 실존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