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녀의 명예(3,1-5)
예언자는 유다에게 타인이 된 이혼한 여인이 前 남편에게 돌아온다고 할 때
그 남편이 그 여인을 받아주겠느냐라고 묻고, 동일한 질문을 유다에게 했다.
예언자는 유다를 신부로 그리고 하느님을 그들의 남편으로 비유하고
유다의 우상 숭배 행위를 不倫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유다가 불륜한 것을 남편이신 하느님과 이혼한 것으로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유다가 다시 하느님께 돌아온다고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그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렇게 말씀하신 후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유다가 얼마나 큰 죄를 범하였는지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있었다.
예언자는 유다에게 “네 눈을 들어 헐벗은 언덕들을 보라(3:2)”라고 말했다.
여기 헐벗은 언덕은 그들이 우상숭배 하던 곳이다.
그러므로 헐벗은 언덕은 유다가 지금까지 행한 음행의 흔적들(우상숭배의 흔적)이
모두 남아 있는 곳이다.
따라서 유다는 그 언덕을 바라볼 때, 자신들이 범한 죄를 부인할 수 없었다(3:1-5).
그들은 불륜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자들이었고
또한 입으로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구하면서도계속 악을 행하는 자들이었다.
이스라엘의 배반과 유다의 배신(3,6-10)
예언자는 이 말씀을 유다 왕 요시야 때에 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유다 역사 가운데 요시야 왕 때는 종교개혁이 일어난 시기다.
유다 왕 요시야는 유다 지역에 있는 모든 우상을 파괴하였고
성전을 정화했으며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침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께 돌아오도록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종교 개혁은 可視적인 변화를 가져왔지만
백성들의 마음까지 돌이키지는 못했다.
그들은 왕권에 의하여 우상으로부터 떠나 하느님께 돌아가도록
강요받았기 때문에 외적으로는 경건한 모습을 지닐 수 있었지만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이방의 우상들과 풍습을 쫓고 있었다.
하느님은 예언자에게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다(3:7)”라고 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로 인하여 패망한 것을 보았느냐”라는 의미다.
하느님은 이 물음을 통하여 죄는 반드시 하느님의 진노하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말씀 해 주시고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유다가 이스라엘이 걸었던
동일한 죄의 길을 걸어가고 있음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유다가 이스라엘보다 더 부패하였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8-10절은 “그 반역한 자매 유다는 그것을 보았다”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비유하시며
이스라엘이 우상숭배에 빠진 것을 간음이라고 말씀하셨다.
성실하신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회개시키시리라(3,11-18)
하느님은 유다의 배반이 이스라엘의 배반보다 더 못하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유다보다 더 의롭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의 행위가 유다보다 더 옳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모두 자신들의 작은 산과 큰 산들을 우상으로 더럽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義가 유다 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것은
유다는 우상숭배로 인하여 멸망한 이스라엘을 보고도 교훈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예언자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향하여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오도록 말씀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셨다(3,12).
그러나 하느님의 자애는 죄를 범하고도 돌이키고자 하는
마음조차 없는 자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범한 죄는 하느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한 것과 불순종한 것이었다.
하느님은 그들이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올 때 그들을 위하여
자비를 베푸실 것을 말씀하셨다(3:14-15).
3,16-18절은 회개한 자들에게 축복해 주실 것을 약속하신 말씀이다.
여기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실 때
그곳에는 언제나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말해 준다.
14절에서 이스라엘 중에서 회개하고 돌아올 자들을 말씀하실 때
하나 혹은 둘이라고 말씀하시므로 “소수 일지라도”라고 전제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그들이 번성하여 많아질 것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은 수의 많고 적음과 관계없이
하느님께서 축복해 주실 때 번성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탕자의 회개(3,19-4,2)
3,19-25 :
하느님께서 심중에 이스라엘에 대하여 가지신 생각을 말씀하고 있다.
하느님의 마음에는 이스라엘을 축복해 주시기 원하시는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자녀를 허락해 주시고 아름다운 상속재산을 주시고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시고자 하셨다.
자녀와 아름다운 땅을 소유하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신앙을 소유하는 것은
이스라엘에게 가장 이상적은 삶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이와 같은 축복을 주시기 원하셨다.
하느님은 이처럼 우리를 복된 삶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선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무지로 인하여 이와 같은 하느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지금 이곳에서 우리의 뜻과 反하는 듯한 일이 일어나면 하느님이 어디 계신가?”
“하느님이 선하신가?”라고 말하며 불신앙에 빠진다.
20-22절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복된 계획들을 가지고 계셨지만
그 때 이스라엘은 오히려 하느님을 배반했다.
그들의 배반은 마치 아내가 남편을 속이고 떠남같이 하느님을 떠났다.
이것이야 말로 하느님의 백성에게 가장 슬픈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였다(3:21).
여기 “벌거벗은 언덕”은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하던 곳을 말한다(3:2).
그러므로 그들이 벌거벗은 언덕에서 애원하며 간구했다는 것은
스스로 지은 죄를 돌아보며 회개했다는 의미다.
하느님은 이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이들을 고쳐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3,22).
그래서 그들은 구원의 하느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숭배한 것을
수치로 알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자신들이 당한 모든 재난들이
바로 하느님을 멀리함으로 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3:24-25).
4,1-2 :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은 하느님 앞에서 가증한 일을 했다.
물론 그들이 하느님 앞에서 행한 “가증한 일”이란 우상숭배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그들이 하느님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우상숭배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그들이 우상숭배를 하는 것 자체가 주님을 떠난 행위이기 때문에
그것을 버리지 않고는 결코 하느님께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말해준다.
진정한 회개란 말로 하는 회개가 아니고
그릇된 것으로부터 돌이키는 행위로 하는 회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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