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37장 공부 ; 히즈키야가 이사야에게 문의하다

윤 베드로 2017. 4. 10. 06:54

히즈키야가 이사야에게 문의하다(37,1-8)

 

유다왕 히스기야는 앗시리아의 침략을 받았을 때 그들에게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칠 것을 제안함으로 앗시리아의 침략의 위협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그는 한편으로는 성전에 올라가 하느님께 기도했고(37:1,14-20),

         다른 한 편으로는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를 이사야에게 보내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해 주도록 부탁했다.

때로는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실패가 하느님께 나가는 삶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히스기야에게 실패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는 앗시리아의 침략을 스스로 해결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위협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실패는 그로 하여금 자신의 무기력함을 보게 해 주었고

            자신을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느님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히스기야는 자신이 원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결과의 보고를 들었기 때문에

                  “옷을 찢고 자루옷을 입고” 주님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궁내 대신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자루옷을 입었다.

여기 “옷을 찟었다” 또는 “자루옷을 입었다”는 것은 슬픔을 나타나는 표현들이다.

그리고 “주님의 집으로 갔다”는 것은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하여

              하느님께 구원을 청하기 위하여 하느님께 나갔다는 것을 말한다.

히스기야는 이처럼 스스로 성전에 올라가서

                    하느님께 예루살렘의 구원을 탄원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엘리야김과 셉나를 예언자 이사야에게 보내

                     하느님께 나가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하여 간구해 주도록 청하였다.

히스기야는 먼저 이사야에게 지금의 유다와 예루살렘이 처한 위기를 말했다.

“이날은 환난과 징벌과 굴욕의 날이오.

              아이들이 태어나려고 하는데 낳을 힘이 없구려.(37:3)”

이것은 유다와 예루살렘을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밖에 없다는 고백이다.

히스기야는 계속하여 예언자에게 하느님께 구원을 탄원해야할 당위성을 이렇게 말했다.

“주 그대의 하느님께서 랍 사케의 말을 들으셨기를 바라오.

        그는 살아 계신 하느님을 조롱하려고 자기 주군인 아시리아 임금이 보낸 자요.

         주 그대의 하느님께서 들으신 그 말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오.

         그대도 아직 살아남아 있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오.(37:4)”

즉 히스기야가 하느님께 구원을 탄원하는 것은

                        다만 위기에처럼 자신들의 구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앗시리아로부터 하느님의 이름이 훼방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로부터 받은 하느님의 훼방은 하느님께서 그들과 싸워 이기심으로만 회복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예언자에게 하느님께 나가 예루살렘을 구원해 주시고

                앗시리아를 멸해 주심으로 스스로의 영광을 나타내 주시기를 간구하도록 요청한 것이다.

하느님은 이와 같은 히스기야의 간구를 들으시고,예언자를 통하여 6-7절과 같이 응답하셨다.

 

하느님은 히스기야에게 앗시리아로 인하여 두려워 말 것을 말씀하셨다.

당시 앗시리아는 스스로가 말한 것처럼 열방 중에 가장 강한 나라였다.

그래서 아무도 앗시리아의 대적이 되지 못했다.

하느님은 이런 앗시리아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것은 지상에서 가장 강한 앗시리아조차 하느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예루살렘에 대한 산헤립의 새로운 위협(37,9-13)

 

앗시리아왕이 라기스를 떠났다.

본문은 그가 어째서 라기스를 떠났는지 말하고 있지 않다.

라기스는 앗시리아 왕이 라기스를 떠났다는 말을 듣고 그도 왕을 쫓았다.

그러나 그때 산헤립은 립나를 치고 있었다.

그곳에서 산헤립은 구스왕 디르하가가 자신과 싸우려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처럼 앗시리아 왕은 동시에 여러 나라와 싸워야 했기 때문에

             대단히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 먼저 유다로부터 항복을 받음으로 그들과의 전쟁을 끝마치려 했다.

그래서 그는 립나에서 유다에게 항복토록 권고하는 문서를 보냈다(10-13).

그러나 그때 그들은 예루살렘을 위협하며 항복하기만을 강요했다.

이로 인하여 히스기야는 “구원은 오직 하느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성전에 나가 하느님께 구원을 탄원했다.

하느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심으로 앗시리아로 인하여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앗시리아를 멸하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하심이다.

 

히즈키야의 기도(37,14-20)

 

산헤립은 자신의 사자를 통하여 히스기야에게 글을 보냈다.

산헤립은 이 글을 통하여 히스기야에게 자신에게 항복할 것을 권고했다.

히스기야는 이글을 받아보고 주님의 집에 올라갔다.

이것은 히스기야의 변화된 모습니다.

그는 처음 앗시리아가 침략해 왔을 때 하느님의 집으로 올라가기 보다는

         스스로 앗시리아의 침략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는 이로 인하여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실패를 경험한 후에야 그는 문제가 있을 때

                 먼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주님의 집에 올라가서 주님 앞에 산헤립이 자신에게 보낸 글을 펴놓고 기도하였다.

 

히스기야는 신헤립이 하느님을 훼방하였음을 고하였고

                   또한 앗시리아가 실제로 열국 중에 강하여

                    아무도 그를 대적하여 이기지 못했음을 아뢰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께서 능히 앗시리아를 멸하실 것을 믿었다.(37:20)

히스기야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자신의 직무가 나라를 지키며

                   백성들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직무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하느님께서 유다를 구원해 주심으로

                친히 만국의 주님인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산헤립에게 내린 말씀(37,21-29)

 

기도할수록 구체적인 응답을 받는다.

히스기야가 처음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했을 때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앗시리아로 인하여 두려워말 것과

                   산헤립이 고국에 돌아가서 죽임을 당할 것을 말씀해 주셨다(37:7).

히스기야가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또 다시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했을 때

                   이번에도 이사야를 통하여 응답의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그 응답의 내용은 동일하지만 보다 더 구체적인 말씀을 주셨다.

하느님은 히스기야에게 산헤립의 교만과 하느님에 대하여

                 훼방하는 소리를 들으셨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앗시리아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네가 누구를 조롱하고 모욕하였느냐? 네가 누구에게 큰소리를 치고 눈을 치켜들었느냐?

바로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다.(37:23)”

앗시리아의 교만은 하느님의 백성인 유다를 능욕했다.

그러나 그들이 유다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능욕했다면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훼방이며 능욕이 된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유다와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은

             곧 유다가 의뢰하는 하느님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앗시리아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다면

           이처럼 유다를 능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유다가 연약하여 열국에게 패할지라도

         그것은 하느님이 그들을 구원해 주실 수 없기 때문이 아니고

          그들을 징계하시거나 아니면 특별한 목적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앗시리아는 스스로의 강함만 보고 하느님의 능하심을 생각지 않았기 때문에

                    교만에 빠졌고 그들의 교만은 결국 하느님을 훼방하고

                     능욕하는 죄를 범하게 했다(37:26-29).

 

히즈키야에게 내린 표징(37,30-35)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실 것을 말씀하시고 또 표징을 말씀해 주셨다.

표징들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께서 앗시리아로부터 유다를 구원해 주심으로

             유다가 평화가운데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耕作에 비유했다.

즉 전쟁에 직면한 올해는 밭에서 스스로 난 것을 먹을 것이지만

                이듬해부터는 경작해서 먹을 것이고 또한 점점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것이다.

표징들 가운데 다른 하나는 앗시리아왕은 유다에 대하여 어떤 해도 가할 수 없을 것이고

            다만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것이다.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주신 이 예언의 말씀은 성취 되었다.

 

산헤립의 말로(37,36-38)

 

야훼의 사자가 그 밤에 앗시리아의 군대를 치심으로

              하루 밤사이에 십팔만 오천 명이 죽임을 당했고,

             또한 앗시리아 왕 산혜립은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로 도망가서

              그들의 신전에 들어가 제사할 때,

              아드람멜렉과 사례셀에 의하여 살해되었다(37:36-38).

이처럼 하느님께서 유다에게 주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보증으로서 표징으로 주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대적들의 위협 중에서도 구원의 하느님을 바라보도록 하심이었지만

            또한 말씀이 성취되었을 때 그 일을 이루신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알도록 하려 하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