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29장① 공부 ; 예루살렘의 곤경과 구원

윤 베드로 2017. 4. 7. 07:30

예루살렘의 곤경과 구원(29,1-8)

 

29,1-4 :

29장은 “불행하여라. 아리엘아”라는 말로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다.

여기 “아리엘”은 문자적으로는 “하느님의 사자”지만,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하느님은 아리엘을 괴롭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이로 인하여

                 아리엘 가운데 슬픔과 哀哭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9:1-2).

그러므로 29장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을 예언한 말씀이다.

3-4절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대적으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치게 하심으로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예언자를 통하여 주신 하느님의 말씀조차 무시하며 당당하게 말하던

                예루살렘은 이제 그 당당함을 모두 상실했다.

그들의 말은 나직해졌고, 땅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고, 신접한 자의 소리처럼 지껄이는 소리였다.

이런 표현들은 예루살렘의 교만이 심판에 의하여 꺾였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29,5-8 :

5절, “그러나”란 현재의 예루살렘의 현실, 즉 대적은 강하여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이는

            이와 같은 현실일지라도 하느님은 자신이 정하실 때

            일순간에 그들의 대적들을 세미한 티끌과 겨 같게 하실 것이다.

세미한 티끌과 겨는 약한 바람에도 날려간다.

그토록 강했던 대적들이 하느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이처럼 연약한 존재가 될 것이다.

여기 대적들을 치시는 하느님의 능하심을 “천둥과 지진과 큰 소리와

          폭풍과 맹렬한 불꽃”으로 묘사했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능하신 손으로 대적들을 징벌하실 때

                   그들은 세미한 티끌과 겨와 같이 날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예루살렘을 치려는 계획은 마치 꿈 같이, 밤의 환상 같이 될 것이다.

그래서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기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이 시온 산을 치는 열방의 무리의 모든 수고는 헛될 것이다.

 

분별없는 백성(29,9-14)

 

29,9-12 :

예루살렘은 이처럼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신앙 가운데 행하였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로부터 말씀을 탈취하심으로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게 하셨다.

본문은 이처럼 하느님의 인도하심으로부터 떠나 세상에 취하여 방황하는

            예루살렘의 모습을 “술 취한 자”로 묘사하고 있다.

9절, “너희는 깜짝 놀라서 어리둥절해 하리라.”

하느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놀랄만한 일은 말씀에 대하여 소경이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백성들을 인도하실 때 말씀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들이 말씀에 대하여 소경이 된다면

                더 이상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하느님의 인도하심의 방식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게도 동일하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스라엘(공동체)을 인도해 주시고자 하실 때

             먼저 그들 가운데 말씀을 전해 줄 예언자들을 세우시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언자나 선견자는 하느님 백성들의 공동체에서

         “눈” 혹은 “머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너희 위로 깊은 잠의 영을 부으시고 너희 예언자들의

                     눈을 감기시며 너희 선견자들의 머리를 덮어 버리셨다.(29:10)”

하느님은 예루살렘과 그들의 눈과 머리가 되어야 할 예언자들이 함께 세속화 되어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말씀을 빼앗아 가셨다.

여기 하느님은 그들에게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부어 주심으로 그들의 눈을 감기게 하신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들로부터 말씀을 취하여 가셨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느님께서 말씀을 취하여 가실 때, 백성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

                   하나는 그들 가운데 아무도 하느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라는 말은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해 준다.

하느님의 감동으로 된 계시의 말씀은 인간적인 지혜로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내적으로 조명해 주시지 않는다면

                인간적인 지식의 유무와 관계없이 아무도 그 뜻을 알 수 없는 것이다.

 

29,13-14 :

형식적인 신앙은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여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라는

          말은 형식적인 신앙을 말한다.

즉 예배 형식은 지킬 줄 알지만 진정한 경외심을 상실한 것이 바로 형식적인 신앙이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세상의 일에 집착할수록 하느님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하게 되는데 이런 불행한 일이 계속 되면

                 하느님의 임재 의식조차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이 형식적인 신앙에 빠질 때 그들 가운데 일어나는

                기이한 일들 가운데 하나는 지혜와 총명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지혜는 지혜의 근본이신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하느님과 교통하는 사람은 지혜와 총명을 얻을 수 있지만

             하느님과 교통이 단절된 자들에게는 그것들이 가려지는 것이다.

이처럼 지혜의 원천되시는 하느님을 신뢰하며 사는 하느님의 백성들 가운데

              오히려 지혜와 총명이 가려진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이런 일은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으로부터 떠날 때만 오는 일인데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