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28장① 공부 ; 사마리아에 대한 경고

윤 베드로 2017. 4. 6. 07:59

사마리아에 대한 경고(28,1-6)

 

*예언자는 24-27장까지를 통하여 마지막 날에 임할 심판과

                 남은 자들에 대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 후, 새로운 메시지를 선포하였다.

이 메시지들은 28-33장에 기록 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예루살렘과 주변 나라들에게 주는 메시지다.

메시지 형식은 “불행하여라”로 시작하며,

            이런 형식으로 28-33장을 통하여 6개의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다.

우리는 이 메시지들을 통하여 세상에(특별히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불행을 가져오는 일들이 무엇인지 살필 수 있을 것이다.

 

28,1-6 :

예언자는 28장에서 첫 번째 불행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이 불행은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느님의 백성이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부패해졌을 때 오는 불행이다.

하느님은 북쪽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에브라임과

                 남쪽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유다가 부르심을 망각하고

                 세속화 된 상태를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는 모습으로 묘사하셨다.

하느님은 세속화된 에브라임의 모습에 대하여

                “에프라임 주정꾼들의 거만한 화관! 그 화려한 아름다움을 잃고

                 시들어 버린 꽃! 술에 빠진 자들의 머리 위에,

                 기름진 골짜기 위에 자리 잡은 것!(28:1)" 이라고 말씀 하셨다.

여기 “술 취한 자, 술에 빠진 자”란 하느님의 백성이 세상에 취했을 때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언어들은

           이스라엘이 세속화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실제로 하느님의 백성들이 세속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외적 모습은

             마치 술 취한 자와 같아서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모습이다.

즉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가야할 길을 분별해 가지 못하고

                     세상과 하느님, 義와 不義 사이를 방황한다.

또한 세속화된 자의 내면은 교만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서 말하는 교만이란 하느님 없이도 스스로의 힘으로 굳게 설 수 있다는 정신을 말한다.

 

예언자는 세속화에 빠져버린 에브라임에 대하여 “불행하여라”고 말했다.

이 말은 세상에 취해버린 에브라임이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넘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에브라임은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에 세운 성이었지만

                     세속화로 인하여 쇠잔해 가는 꽃과 같이 될 것이다.

하느님은 이방의 한 나라를 택하여 술에 취한 에브라임을 심판하실 것이다.

여기 “강하고 힘 있는 자”란 하느님께서 에브라임을 심판하시기 위하여

          도구로 택하실 나라를 의미하는데 그 나라는 앗시리아다.

본문에서 언급한 자연의 위대한 힘들은 앗시리아의 힘을 묘사한 표현들이다.

 인간이 이와 같은 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 속수무책인 것처럼

              이스라엘도 하느님의 심판 앞에서 속수무책이 될 것이다.

즉 하느님께서 그들의 면류관(교만)을 땅에 던지시고 그것을 발로 밟으실 때

                         그들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예언자는 또 다른 비유로 심판으로 인하여 황폐해질 이스라엘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

“기름진 골짜기 위에 자리 잡은, 그 화려한 아름다움을 잃고

               시들어 버린 꽃은 수확 때가 되기도 전에 익어 버린 무화과 같으리니

                누구든 그것을 보게 되면 손에 잡히는 대로 삼켜 버리리라(28:4).”

여기 “기름진 골짜기”란 이스라엘에게 약속으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말한다.

그러므로 축복이 약속 된 이 땅에는 항상 풍성한 열매들로 가득해야 하는데,

                 지금 어디에도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 기름진 땅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나무 꼭대기에 있는 겨우 몇 개의 열매뿐이다.

5-6절에서처럼 에브라임이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넘어질 때에도

         하느님은 그들 가운데 있는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이다.

여기 남은 자들이란 끝까지 하느님을 신뢰하며 산 자들을 말한다.

하느님은 친히 이들에게 영화로운 면류관과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재판을 받을 때에는 이들을 위하여 판결의 신이 되시며,

            이들이 싸울 때에는 대적을 물리치는 힘이 되어 주실 것이다.

 

그릇된 사제들과 예언자들(28,7-13)

 

예언자는 에브라임의 술 취함에 대하여 계속 말하고 있다.

예언자는 특별히 제사장과 예언자들의 취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제사장과 예언자들은 백성들 사이에 시비가 생겼을 때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는 자들이며

                또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환상을 백성들에게 전해 줌으로

                  그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도록 인도해 주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세속화될 때 백성들은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사야는 제사장과 예언자들의 세속화로 인하여 오게 되는 해악에 대하여

                “환시를 잘못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고,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다(28,7-8)”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 “환시를 잘못 풀며”라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사욕에 따라

          그릇 해석하고 전함으로 백성들이 하느님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인하여 에브라임은 지도자와 백성들 모두가 부패하게 되었다.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다” 라는 것은

          당시 에브라임의 총체적인 부패함에 대한 예언자의 묘사다.

10절, “저자는 ‘차우 라차우 차우 라차우, 카우 라카우 카우 라카우

            즈에르 삼 즈에르 삼’이라고 말해 댄다”는 말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는 말이다.

지각이 없는 하느님의 백성들을 책망한 말씀이다.

하느님은 자기 백성을 인도하실 때 말씀을 통하여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을 주심으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원한다면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세속화로 인하여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지각을 상실했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어린 아이들”이 지각없이 행동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일에 지각없는 자들이 되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교훈의 말씀을 주셔도 그들은 들을 수 없고

               경계의 말씀을 주셔도 들을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지각이 없어 하느님께서 친밀하게 말씀하실지라도

                    그 말씀을 마치 생소한 입술로 다른 방언처럼 들었다.

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말이 되어야 할 하느님의 말씀이 이처럼 낯설다면

                어떻게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바랄 수 있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를 신뢰하는 백성에게 안식이 되며 상쾌함이 된다.

그러나 지각이 없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낯선 것이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들을 수 없었고, 하느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없었다.

이로 인하여 그들이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