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17장 공부 ; 다마스쿠스와 이스라엘의 멸망

윤 베드로 2017. 3. 31. 07:46

 

다마스쿠스와 이스라엘의 멸망(17,1-6)

 

17,1-3 :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다마스쿠스와 에브라임의 멸망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주셨다.

예언자는 다마스쿠스의 멸망에 대하여 예언하고(17:1),

               이어서 에브라임의 멸망에 대하여 예언했다(17:2).

그리고 이들의 멸망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줌으로

             그들이 멸망하게 될 것을 확증해 주었다(17:3).

1,2절은 두 나라의 중심이 되는 성읍들이 폐허가 될 것을 말하였고

              3절에서는 그들이 의지하고 있던 요새들이 무너질 것을 말하고 있다.

한 나라에서 성읍과 요새는 생존을 위한 초석이고, 영광의 숨결이 있는 곳이고

                    또한 그들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성읍과 요새들이 무너져 폐허가 된다는 것은

               그들이 생존을 위하여 의지하고 있던 모든 것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나라의 성읍과 요새가 황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그 나라가 멸망할 것이라는 말이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다마스쿠스의 멸망에 대한 말씀과 더불어

                   에브라임의 심판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것은

                   이들 두 나라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브라임(분열왕국 이후 북이스라엘은 에브라임이라고도 불렸는데,

               이것은 에브라임이 열 지파 중에서 지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과

              또는 당시 에브라임 성읍이 이스라엘에서 중심이 되는 성읍이었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유다와 형제로서 서로 형제애를 나누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마스쿠스와 연합하여 유다를 쳤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다마스쿠스를 심판하실 때 그와 동맹한 에브라임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17,4-6 :

여기 “그날”이란 하느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을 말한다.

그날에 에브라임(야곱으로도 말함)은 황폐할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브라임이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하여 심판 중에서도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예언자는 이들을 곡식을 벤 밭에 떨어진 이삭으로 묘사했고,

               또한 올리브나무에서 열매를 추수한 후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 남아 있는 몇 개의 열매들로 묘사했다.

이 열매들은 너무 높은 가지에 열려 있었기 때문에 추수하는 자의 손이

                     미치지 못하여 남은 것들이다.

여기 남은 자들로 묘사된 이들은 끝까지 하느님을 신뢰한 자들이다.

하느님은 야곱의 집을 심판하실 때에도 이들을 잊지 않으셨다.

그리고 하느님은 장차 이들을 통하여 야곱의 집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이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실 것이라는 말이다.

 

우상 숭배와 멸망(17,7-11)

 

그날 즉 심판의 날에 에브라임 가운데 두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나는 하느님의 백성들 중에 경외하는 자들 가운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에브라임을 황폐케 하는 하느님의 심판이 진행 될 것이다.

본문에서 남은 자들 가운데 일어난 회개의 모습은 두 대립적인 단어들을 통하여

               보여 주고 있다. 즉 “바라보고”와 “바라보지 않고”이다.

이것은 참된 회개는 마땅히 바라보아야 할 것은 바라보고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은 바라보지 않는 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하느님의 백성이 마땅히 바라보아야 할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시고

                결코 바라보아서는 안 될 것은 우상이다. 이것이 회개다.

 

그러나 동일한 심판의 날이 임할지라도 심판을 은혜의 기회로 삼지 못하고

            오히려 멸망의 날로 맞는 자들도 있다.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심판의 날에 멸망할 것이다.

특별히 하느님의 심판은 하느님의 백성들로부터 은혜를 취하여 가심으로

            그들의 모든 수도를 무효케 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10-11절).

이처럼 하느님께서 우리로부터 은혜를 취하여 가시면 우리의 모든 수고는 헛되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침략자들의 멸망(17,12-14)

 

다마스쿠스에 관한 경고는 앗시리아의 멸망을 예언함으로 마친다.

본문의 내용은 일차적으로 앗시리아의 멸망을 예언한 것이지만,

              또한 이것은 세상의 종말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이 말씀은 이중적인 예언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복음서에서 주님은 마지막 때에 나라가 나라를 민족이 민족을

             대항하여 싸우는 것을 예언하셨다(마태24장).

이때의 전쟁은 마치 성난 파도처럼 일어나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나라와 나라 또는 민족과 민족이 싸울 것이지만

             인간의 힘과 지혜로는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전쟁은 특별히 앗시리아의 강성함을 말해 주는 것일 것이다.

그들은 마치 성난 파도처럼 무서운 힘으로 여러 나라들을 정복하기 위하여

            전쟁을 일으키지만 그들을 제어할 나라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강함도 영원할 수는 없다. 하느님의 심판이 임할 때

             그들은 오히려 쫓기는 자들이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앗시리아를 심판하실 때 그토록 강하게 보였던 그들은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을 뿐이었고,

                    폭풍 앞에 떠도는 티끌에 불과 했다(17,13-14).

그래서 그들은 역사 속에서 흔적조차 찾기 어려워졌다.

우리가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일생 동안 하느님을 능력의 원천으로 믿고

             그를 신뢰하며 사는 삶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