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16장 공부 ; 모압에 대한 애도

윤 베드로 2017. 3. 31. 07:40

유다에게 한 모압의 호소(16,1-5)

 

*예언자는 15장에 이어 계속 모압에 대하여 경고의 말씀을 전해 주고 있다.

특별히 1-5절은 모압이 하느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말해 주고,

            6-14절은 스스로 교만하여 권고의 말씀을 듣지 않는 모압이

            결국 멸망할 것이라고 말해 주고 있다.

 

16,1-5 :

모압이 장차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멸망할 것임을 말해 주고 있다.

여인들이 “퍼덕이며 달아나는 새들처럼, 둥지에서 쫓겨난 어린 새들처럼”의

                표현들은 모압이 장차 전쟁으로 인하여 패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든지 전쟁에서 패할 때 가장 큰 피해를 당하는 것은 여인들이다.

전쟁으로 인하여 남편들이 죽임을 당하기 때문이고

                또한 이로 인하여 보호자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을 둥지에서 흩어진 새 새끼로 비유한 것이다.

하느님은 모압을 심판하시기 전에 그들로 하여금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을 말씀해 주셨다.

그 길은 유다를 가까이 하여 그의 보호 가운데 있으라는 것이었다.

이를 위하여 모압에게 요청 되는 두 가지 일이 있었다.

하나는 그들이 다른 나라에 바치고 있는 조공을 유다에 바치라는 것이고(16:1),

모압이 유다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요청 되었던 또 다른 하나는 유다가 시련을 당하여

             모압으로 피할 때 그들을 잘 보호해 주라는 것이었다(16:3-4).

실제로 유다는 앗시리아의 침략으로 인하여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모압을 피난처로 삼았다.

이처럼 유다가 시련을 피하기 위하여 모압으로 이주할 때에

            그들을 핍박하지 말고 오히려 보호해 주라는 것이다.

 

모압에 대한 애도(16,6-14)

 

16,6-12 :

그들은 어째서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

그들은 예언자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모압이 보아야 했던 것은 지금의 연약한 유다의 모습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장차 그들을 세우실 때의 그 모습이었다.

만일 모압이 이와 같은 모습을 보았다면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압은 다만 지금 연약한 유다만을 보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순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모압에 대하여 경고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도도한 모압의 교만에 대하여 들었다.

             그의 거만과 교만과 방자함 그의 허풍에 대하여 들었다.(16:6)”

이처럼 사람이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교만이다.

모압은 이와 같은 교만으로 인하여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신 구원의 길로

            행하지 못하고 스스로 멸망의 길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특별히 하느님은 모압의 교만에 대한 심판을 추수의 기쁨을 상실한

            농부의 모습과 신전에 올라가 헛된 기도를 드리는

           우상숭배자로 표현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16:7-10).

본문에서 “건포도 과자(16:7)” “포도줄기(16:8)” “포도원(16,10)”등과 같이 포도와 관련된

                언어들이 나오는데 이것은 모압이 포도 생산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10절에서 “밭”은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양식을 가져다주는 축복의 원천을 말한다.

그러므로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다는 것은

                축복의 원천을 상실했다는 의미다.

이처럼 하느님의 심판은 우리로 하여금 축복의 원천을 상실하게 한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심판 아래 있는 사람은 즐거움과 기쁨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모압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받게 된 고통을 피하기 위하여

             그들이 숭배하는 우상의 신전으로 올라가서

구원을 위하여 기도했지만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은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도 없고 응답해 줄 수도 없는 우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숭배하는 우상은 처음부터 응답해 줄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에

            이들이 행한 모든 수고는 다만 헛될 뿐이었다.

이와 같은 헛됨에 대하여 본문은 “모압이 산당으로 올라가 애를 쓰더라도

        자기 성소로 가 기도를 드리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12절).” 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수고들 가운데 가장 헛된 수고는 응답할 수 없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이고,

            또한 우리가 세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절망 가운데 가장 큰 절망은

            응답할 수 없는 신으로 인하여 갖게 되는 절망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16,13-14 :

모압은 날품팔이의 정한 해와 같이 삼년 내에 황폐해 질 것이다.

그들의 영광은 땅에 떨어지고, 큰 무리는 아주 적은 수가 될 것이다.

그들이 이처럼 황폐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