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19장 공부 ; 이집트의 멸망

윤 베드로 2017. 4. 1. 08:05

이집트의 멸망(19,1-15)

 

*19장은 이집트에 대한 심판(19:1-17)과 회복에 대한 약속(19:18-22),

              그리고 장차 이집트와 앗시리아, 그리고 이스라엘이 함께

              하느님을 경외할 날이 올 것(19:23-25)이라는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19,1-4 :

이집트에 대한 경고는 하느님께서 이집트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 “주님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이집트로 가신다”라는 말은

          그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속히 임하실 것이라는 말이다.

그때 이집트의 우상들은 떨 것이고 이집트 사람들의 마음은 녹을 것인데

         이것은 하느님의 심판의 엄중함을 말해 주는 표현들이다.

하느님께서 이집트를 심판하실 때 그 심판은 정치적 혼란과 폭정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오는 재난으로 나타날 것이다.

2절, 이집트인이 이집트인을 치고 각기 형제를 치고 이웃을 치고

        성읍이 성읍을 친다는 것은 내란이나 또는 정치적 혼란을 의미한다.

이처럼 하느님의 심판이 정치적 혼란으로 묘사 되고 있다.

4절, “내가 이집트인들을 냉혹한 군주의 손에 넘겨”라는 것은

         하느님의 심판이 폭정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말해 준다.

백성들 가운데 의를 행하는 지도자가 세워지는 것은 하느님의 은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백성들 가운데 은혜를 취하여 가실 때

                 잔인한 군주가 세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군주의 통치 아래 있는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심판이다.

 

19,5-10 :

또한 애굽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은 자연 재해로 나타날 것이다.

하느님께서 애굽을 심판하실 때 애굽의 바다, 강, 시냇물들이 마르게 되어

                    초장과 밭이 마르고 나일강의 어부들이 탄식하게 될 것이다.

애굽의 나일 강은 애굽의 축복이었다.

해마다 강의 범람으로 인하여 강가에 쌓인 퇴적물들은 땅을 기름지게 하여 애굽을 풍요롭게 했고,

             또한 풍부한 수자원들은 어부들을 기쁘게 하였다. 그러므로 강이 마른다는 것은

             애굽의 풍요를 가져다주는 원천이 말라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곳 애굽의 빈곤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심판이 있을 때 이처럼 축복의 근원이 말라버리는 것이다.

 

19,11-15 :

또한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때 애굽의 지혜자들의 지혜가 사라질 것이다.

나일 강이 환경적으로 애굽에 풍요로움을 가져다주는 축복의 근원이었다면,

          지혜는 그들을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하는 축복의 원천이었다.

하느님의 심판은 나일강을 마르게 하실 뿐만 아니라,

                애굽의 지도자들을 어리석게 하실 것이다.

여기 초안의 제후, 파라오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 놉의 제후들은

         모두 애굽을 떠받혀주고 있는 기둥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우둔하게 되었고 어리석은 자가 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느님께서 우리로부터 은혜를 거두어 가시면,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느님은 지혜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혜는 하느님으로부터 흘러들어온 것일 뿐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지혜의 원천 되신 하느님께서 지혜를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14-15절은 하느님께서 애굽의 지혜자들을 어리석게 하셨을 때 애굽의 모습을 말해 준다.

애굽의 머리나 꼬리 또는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와 같은 표현들은

             애굽의 상하 계급 모두를 말한다.

“되는 일이 없으리라”는 애굽의 모든 백성이 우둔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를 위하여 어떠한 유익한 일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개인이나 지도자들을 어리석게 했을 때

            그들 모두는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집트의 미래(19,16-25)

 

19.16-17 :

이 단락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두려워 떠는 애굽인들의 모습을 말해 주고 있다.

“그 날”이란 심판의 날을 말한다.

하느님께서 심판하시기로 정하신 날, 정하신 뜻대로 애굽을 심판하실 것인데(19:17),

           그 심판은 마치 하느님의 흔드시는 손이 그들을 흔드는 것과 같아서 애굽인들은

            그 심판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확실하게할 것이다(19:16).

“유다 땅은 이집트인에게 공포가 되어”란 애굽인들이 그 심판으로 인하여

                  자신들을 심판하시는 하느님 즉 유다가 믿고 있는 하느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심판은 때로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는 수단으로 사용하시기도 한다.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 있던 자들이 평탄할 때는 어떤 권고의 말씀을 전해도 듣지 않지만

                   하느님께서 심판을 통하여 그들이 의뢰하던 모든 것을

                   황폐케 할 때 비로소 그들은 하느님만이 참된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자신들이 의뢰하던 우상들이

             얼마나 무력한지 깨닫게 되고 심판을 행하시는 하느님께서 얼마나 능하신지 깨닫게 되어

             결국은 하느님만이 구원의 하느님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19,18 :

“그날에 이집트 땅에는 가나안 말을 하고

             만군의 주님께 충성을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생길 터인데,

              그 가운데 하나는 ‘태양의 도시’라 불릴 것이다.

예언자는 애굽의 심판으로 인하여 애굽의 성읍들 가운데

                다섯 성읍이 주님께 돌아와서 주님을 경외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날에 이집트 땅에는 가나안 말을 하고”라는 말은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이 사용하는 말로

             주님을 경외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여기 다섯 성읍은 애굽의 수많은 성읍들 가운데 지극히 적은 수이다.

그러나 이처럼 자신들이 숭배하는 우상들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왔다는 것은 그 수가 적을지라도

            애굽인들 가운데 참된 주님을 아는 자들이 일어났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실 자체가 고무적인 일이고 또한 애굽의 장래에 서광을 비취는 일이다.

예언자는 이 다섯 성읍 중에 특별히 한 성읍 “태양의 도시”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19,19-22 :

특별히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라는 말은

              오니아스4세가 애굽에 주님의 성전을 건축하려고

               프톨레마에우스 필로메톨의 허락을 구하여 헬리오폴리스의 도시에

               한 성전을 세웠는데 그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19절의 말씀은 장차 애굽이 주님을 경외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애굽이 주님을 경외하게 된 것은 주님께서 심판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 해 주셨기 때문이고,

또한 주님께서 애굽 사람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보내 주셨기 때문이다.

여기 한 구원자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 분명한 것은 애굽에서 70인역이 번역 되었고,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그 땅에 수도원을 짓고 신앙을 지켰다는 것이다.

 

19,23-25 :

하느님은 만유의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애굽에 대하여“나의 백성”이라고 부르실 수 있고,

               앗시리아를 “나의 손으로 지은 앗시리아야”라고 부르실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만유의 주님이신 하느님께서 장차 구원의 은총을 이스라엘을 넘어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미치게 해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이와 같은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날에

                  애굽에서 앗시리아로 통하는 大路가 열려 사람들이 왕래할 것이다.

 

애굽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보며 애굽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애굽은 이스라엘과 이웃하고 있으며 오랜 역사 동안 관계를 가져왔다.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하여 애굽에 내려간 적이 있고,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애굽에서 노예로 살다가 후에 애굽의 총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야곱과 그의 가족 모두 애굽으로 내려가서

             그곳에 정착하여 430년을 살았다.

이처럼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이스라엘은 때로는 애굽으로부터

            보호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학대를 받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이르러 그곳에 독립국을 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애굽과 끊임없이 외교 관계를 맺어왔다.

애굽은 어떤 때는 정복자로서 이스라엘을 지배하기도 하였지만 어떤 때는 동맹자가 되기도 했다.

특별히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와 전쟁할 때에 애굽은 그들에게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