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욥기 공부

엘리후의 연설(32-37장)

윤 베드로 2017. 2. 24. 17:56

Ⅴ. 엘리후의 연설(32-37장)

 

*욥의 최후 변론에 대해 친구들이 대답하지 못하자

엘리후가 친구들을 대신해 논쟁에 참여한다.

젊은 지혜자 엘리후는 먼저 친구들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에

그가 욥과 논쟁할 능력도 준비되어있다고 말한다.

32장에서부터 37장까지는 욥의 마지막 변론 부분과

하느님의 顯現사이에서 교량 역할을 하는 전환부에 해당한다.

그중 32-33장은 네 차례에 걸친 엘리후의 긴 변론 중 첫 번째에 속한다.

 

1-5, 엘리후의 등장 :

①욥이 자신을 의인으로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이 말을 멈추었다.

②엘리후가 욥에게 화를 내었고, 세 친구에게도 화를 내었다(2-3절).

③엘리후가 갑자기 나타나 욥에게 말하는 이유(4절)

④엘리후는 세 사람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화를 낸다.

 

⇒엘리후의 이름과 함께 그 조상들의 이름이 소개되고 있는 것은,

엘리후가 다른 세 친구들보다 더 중요한 인물임을 암시하고 있다.

엘리후는 ‘그는 나의 하느님’이란 뜻이며,

또 아버지 바라겔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셨다’라는 의미다.

엘리후가 욥에 대하여 화를 낸 것은 욥이“하느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다.

세 친구들이 욥의 결백 주장에 더 말을 못 하고 침묵했던 것에 반해,

엘리후는 욥의 태도가 하느님의 성품과 尊位를 위태롭게 하는

불경건한 교만임을 알고, 하느님을 위해 변호하고자 나선 것이다.

엘리후가 세 친구들에게 화를 낸 것은 '그들이 욥의 죄과를 증명할

만한 아무런 답변도 마련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Ⅴ-1. 엘리후의 첫째 담론(32,6-33,33)

 

*여기서부터 엘리후의 본격적인 연설이 시작된다.

첫 번째 연설은 32,6절부터 33장 끝까지 진행되며,

고난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즉, 고난은 죄에 대한 형벌 -이 견해는 세 친구들에 의해서

줄기차게 주장된 전통적인 고난관이다- 외에도

하느님의 사랑의 원리에 근거를 둔 고난도 있다는 것이다.

엘리후는 고난에 의해서 정화되어야 할 욥의 죄를 '교만'이라고

지적함으로써(33:17) 욥의 고난의 의미를 해석하고 있다.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친구들은 현재의 어려움이 욥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전제하여 논쟁 해왔다(1-5절).

논쟁은 그쳤지만 생각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다.

욥은 친구들의 말로 인해서 상처를 입었고,

친구들은 욥에 대해서 마음을 닫아 버리게 되었다.

논쟁에서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 생각이 넓어지고 상대를 살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주장만 내세우며 고집하기보다

상대방의 주장을 들어주는 열린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엘리후는 지금까지 말을 삼가며 잠잠히 참고 있던 것은

나이든 사람의 지혜를 존중하기 때문이었다(6-10절).

엘리후는 비록 나이가 어리지만 자신도 하느님께 받은 지혜가 있다고 말한다.

욥의 말을 꺾지 못하자 친구들은 하느님이 추궁하실 것이라고 한다(11-16절).

이에 엘리후는 친구들의 말이 최선이 아니며

하느님을 들어 책임을 회피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이 욥의 말에 충분히 대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6-10, 연소한 사람의 지혜 :

①엘리후는 연소하므로 의견을 내놓지 못하였다(6절)

②엘리후는 연륜이 많은 자가 지혜롭다고 알고 있다(7절).

③그렇지만 사람 안에 있는 영이,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 사람을 깨우치는 것이더군요.

④어른이라고 지혜롭거나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의견을 말하겠다고 한다(9-10절)

 

⇒연소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연장자인 저들을 가르칠 수 있는

정당성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엘리후는 사람의 영혼 속에 하느님이 주시는 통찰력이,

인생의 연륜에서 얻어지는 일반적인 지혜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강조함과 아울러 그 자신의 진술이 하느님으로부터 영감된

신적 권위가 있는 것임을 주장한다.

 

11-16,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 :

①당신들의 말을 기다렸다.(11절)

②당신들 가운데는 욥을 꺾어 그의 말에 대답하는 자가 없었다.

③그를 추궁할 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를 물리치셔야지.“ 하고 말하지 마라.

④나도 당신들의 이론으로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리라(14절)

⑤그들은 당황하여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15절)

⑥내가 어찌 더 기다려야 하나?

 

⇒엘리후는 더 이상 친구들에게서 욥의 주장을 꺾어

하느님의 정의로움을 변호할 수 있는 능력을 기대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 친구들은 욥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반박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무능을

변명이라도 하듯 욥의 완고함을 핑계 삼아 하느님의 심판에다

떠맡기고자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엘리후는 바로 저들의 이런 속마음을 공박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엘리후의 말에 의하면 세 친구들은 자신들의 무지함을

인정하는 대신에 '어떤 사람이라도 할 수 없는 난감한 일'임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17-22, 할 말이 많은 엘리후 :

①엘리후가 자신의 의견을 보이겠다고 한다.

②내 속에는 말이 가득하니 영이 나를 압박한다(18절)

③내 배가 봉한 포도주통 같고 터지게 된 새 가죽 부대 같다(19절)

④입을 열어 시원하게 대답하리라(20절)

⑤어떤 사람의 편도 들지 않고 아첨도 하지 않으리라.

⑥엘리후는 자신의 행동 기준을 오직 하느님께 두려고 했다(22절).

 

⇒엘리후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욥과 친구들의 오랜 논쟁을 지켜보면서 하고 싶던 말을 이제 쏟아내려는 것이다.

‘내 속에 말이 가득하다’,

‘내 배는 봉한 포도주 통 같다’고 말한다.

 

*엘리후의 변론(33,1-33) :

 

본문은 ①욥이 불평한 많은 말을 책망하는 부분과(1-12절),

②하느님의 섭리와 은혜를 설명하는 부분으로(13-33절) 구성되어 있는데,

이를 볼 때 엘리후는 세 친구보다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통찰력이 있으나

그 태도에 있어서는 세 친구와 마찬가지로 욥을 위로하기보다는

욥의 잘못만을 지적하려는 경향이 짙게 나타난다.

즉 욥이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고 생각하는 그 교만 때문에

하느님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주장하며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위해 항상 가르치시며

책망을 통해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고 가르쳐 준다(13-22절).

이러한 맥락 속에서 그는 고난을 단련과 연관시켜 욥이 회개하면,

하느님의 축복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엘리후는 욥이 자신의 의로움을 입증하기 위해 요청한 재판에

중재자와 변호사를 자처하면서 욥과 직접 논쟁한다.

엘리후는 욥에게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면서

하느님께 재판(변론)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의롭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1-7, 욥을 논쟁에 초대하는 엘리후 :

①엘리후는 욥에게 자기 말에 귀를 기울여 들으라고 한다(1절)

②내 혀가 입에서 말하는 구나(2절)

③엘리후는 자신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하다는 것이다.

④하느님의 영이 저를 만드시고 전능하신 분의 입김이 제게 생명을 주셨다.

⑤그대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

⑥엘리후와 욥은 하느님 앞에서 동일하다(6-7절).

 

⇒엘리후는 스스로 정직하고, 진실하게 생각하며,

하느님이 주시는 지혜와 영으로 말할 것이라고 공언한다.

만약 엘리후 자신의 말이 그릇된 진술이라면

욥은 아무런 두려움이나 마음에 부담을 갖지 않게 될 것이지만,

결코 자신은 인간적인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하느님의 영감에 의지하여 말할 것임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느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인 것이다(6절).

 

8-12, 욥의 진술에 대한 반박 :

①그대는 내가 듣는 데서 말하였고 나는 그대의 말소리를 들었느니라(8절).

②엘리후는 들은 말을 다시 언급한다(9-11절).

③하느님께서는 사람보다 위대하시다.

 

⇒엘리후는 자신이나 욥이 모두 하느님의 동일한 피조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람보다 크고 위대하신 분이기에

하느님께 도전하고, 논쟁하려 드는 것은잘못된 일이라고 말한다.

엘리후의 말 또한 욥에게 적절하지 않았지만 세 친구들과는 달리

고난에 대해 더 긍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엘리후는 욥의 두 가지 답변에 대하여 답변을 시도한다.

첫째는, 인과보응 법칙을 주장하는 친구들에게 나는 죄가 없다.

그러므로 현재의 고난은 죄의 대가가 아니다.

둘째는, 그러므로 하느님이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셨다.

엘리후는 하느님께 대한 욥의 태도에 분개 한다.단순한 화냄이 아니다.

엘리후는 욥이 죄가 있기 때문에 고난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보이고 있는 욥의 태도이다.

 

13-18, 말씀하시는 하느님 :

①하느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하여 어찌 하느님과 논쟁하겠느냐?(13절)

②하느님은 계속 말씀하셔도 다만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③환상을 통하여 귀를 열게 하시고 두렵게 하신다(15-16절).

④하느님은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시고,사람의 혼과 생명을 구하신다(17-18절).

 

⇒엘리후는 하느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는 욥의 불평에,

하느님은 말씀하시지만 사람이 듣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엘리후는 하느님께서 꿈과 질병과 고통을 통해 사람에게 경고하시고,

훈계하시며 회복하신다고 말한다.

 

19-22, 파리한 인생 :

①하느님께서는 인간을 교훈하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19절)

②육체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모든 즐거움을 앗아가 버린다(20절).

③육체의 질병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21절)

④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른다(22절).

 

⇒건강한 몸은 식욕을 일으키지만

육체의 질병은 식물에 대해 오히려 메스꺼움을 야기시켜

병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본문은 하느님의 징계를 깨닫고 회개하지 않으면

끝내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23절은 이러한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다.

 

23-30, 회복의 과정 :

①그 사람의 중개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인다.

②그를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24절)

③고난에서 자유롭게 된 자의 기쁨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25절).

④하느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3중적 회복을 나타낸다(26절).

⑤고난에서 벗어난 자의 3중적 고백이다(27절)

⑥내 생명이 빛을 보게 된다(28절).

⑦하느님은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신다(29-30절).

 

⇒엘리후는 단지 ①육체의 회복뿐만 아니라 ②지위와 명예

③그리고 영적인 상태의 회복까지도 언급하고 있다.

26절에서는 하느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3중적 회복이 언급되었거니와,

27절에서는 고난에서 벗어난 자의 3중적 고백이 나타난다.

그것은 곧 ①과거의 범죄에 대한 것과,

②의를 왜곡시켰던 사실에 대한 고백,

③그것들이 무익했다는 깨달음 등이다.

 

31-33, 그대를 가르치리라 :

①욥이여 내 말을 귀담아 들으라(31절)

②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고(32절),

③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33절).

 

⇒여기서 엘리후는 욥에게 다시 한 번 고난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상기시키며,

욥으로 하여금 자신의 무지와 교만을 회개하고

하느님의 교훈을 겸허히 수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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