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강의/복음 묵상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

윤 베드로 2015. 3. 10. 11:57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

 

"하느님은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시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다"(루가 20, 38).

 

1. 삶과 죽음

낙엽이 하나둘 떨어지는 늦가을이 되면 우리 신자들은

           인생의 황혼과 죽음을 생각하며 11월 위령 성월을 지낸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이 죽은 후

       하느님의 전능으로 육신이 부활할 것을 믿는다.

인간의 중요한 문제에 대해 불교에서도 生老病死라는 말이 있다.

          즉 인간이 태어나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이다.

이러한 과정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윤회라고 하며

           이러한 윤회의 과정에서 벗어나 극락 세계에 가는 것을

           해탈(니르바나, Nirvana)이라고 한다.

과연 인간은 이 세상에 왜 태어났는가, 그리고 왜 늙어 가며,

       왜 살면서 병에 걸려 괴로워하는가,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는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중요하게 다루는 종교적 문제이며

           나름대로 그 이유를 해석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윤회설의 숙명론적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이러한 人生四苦에서 해방되는 길은 八正道의 길을 걷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참된 깨달음으로 부처(Buddha)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유교에서는 인간이 태어남은 부모와 조상의 은혜이며

          죽고 사는 일은 하늘의 뜻에 있다(人命在天)고 믿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인간이 새로 태어남은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이며,

       부모는 하느님 창조 사업의 협력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인류의 첫 조상 원조들의 범죄,

           즉 원죄의 결과로 해석한다.

원죄는 인간이 하느님께 순명치 않아 자초된 불행이었다.

불순명은 죄를 낳고 죄는 악을 낳고 악은 고통을 낳으며,

              고통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非구원의 상황 속에 빠지게 된 것은

           원죄의 상황에 있는 인간의 운명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지은 죄의 대가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벌에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을 고통과 죽음에서

           건져 내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그것은 곧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로서 하느님께 대한

          불순명과 교만에서 순명과 겸손의 길을 보여 주신 것이다.

욕심과 이기적인 길에서 헌신과 利他的인 길,

           그리고 불신앙과 경쟁보다는 믿음과 사랑의 길,

           그리고 절망과 어려움 속에서도 변치 않는

           희망과 인내의 길을 보여 주신 것이다.

 

2. 죽음 이후의 부활

루가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비유(한 여자와 일곱 형제의 결혼 생활)를 통한 질문에 대해,

       부활의 실재성과 진실성을 가르쳐 주셨다(루가 20, 27-40).

그리고 마카베오서 하권에서는 그리스화된 에집트 지역에서

           유다인을 박해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왕 치하의

           유다인들이 용감하게 부활에 대한 신앙으로 율법을 지키다가

            죽어 가는 장면이 나온다(2마카 7, 1-42).

 

참으로 그 한 어머니와 일곱 형제는 모두 한 사람씩 왕 앞에서

          온갖 육신적인 형벌, 즉 혀를 잘리고 손발이 잘리는 등

          온갖 고문으로 고통을 받고 자신들도 결국엔 죽음을 당하는

          형제들과 아들같이 그러한 잔인한 방법으로 죽어 가게 될 것을

         알면서도 의연하게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고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였다.

그 용기는 바로 부활에 대한 강렬한 희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부활이 없고 저승에서의 정의와 심판이 없다면

        이 세상은 힘과 무력으로 그리고 권모 술수와 사기로 정권을 잡고,

        도적질로 재산을 모은 이들이 행복하고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행운아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죽은 뒤의 부활이 있고 공정한 심판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억울하게 당한 이들의 한이 풀어질 것이며,

          선과 정의를 실천하고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았다 해도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악을 일삼는 자들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행복 선언의 정신이며,

           마태오 복음 25장 16절-41절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의 광경이기도 하다.

 

3.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

하느님은 살아 있는 자들의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인간이 죽더라도 다시 살리셔서 선과 악을 만민이 보는 앞에서 심판하시고(公審判),

              선을 행한 자에게는 상을 주시고 악을 행한 자에게는 벌을 주실 분이시다.

인간이 죽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실에 따른 상을 받기 위해 다시 살아나고

           또 벌을 받기 위해 다시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의 인생,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삶에

           준엄한 책임을 지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하느님은 영원히 살아 계시며,

             생명을 받은 모든 존재는 죽음의 과정을 겪는다 하더라도

             하느님 앞에 영원히 살아 있게 된다.

다만 살아 존재하는 모습이 자신의 이 지상 삶의 태도 행실에 따라

        영원한 행복과 축복의 상태로 살아 있느냐,

        아니면 자신의 악행의 벌로 영원한 불행과 벌을 받는 상태로 살아 있느냐가 다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인간을 하느님께로 인도하고 영원한 축복을 주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그분이 제시하신 길을 성실히 걸어갈 때

           참된 행복과 영원한 생명과 축복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한다.

 

"하느님은 죽은 자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시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살아 있는 것이다"(루가 20,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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