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스라엘과 南 유다 <열왕기1서> 1. 北 이스라엘 北 왕국은 : ①약 2세기동안(기원전930-722년) 지속되었으나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했다. ②19명의 왕 중에서 7명이 암살당했으며, 반란이 7번이나 일어났다. ③또 유다와 아람, 시리아와 전쟁을 벌여 승리를 하기도 했지만, 혹독한 패배를 맛보기도 했다. ④불안한 시기가 계속되자 이스라엘 민족은 우상숭배에 현혹되어, 자신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되는 새로운 신들을 찾아 섬겼다. ⇒이들은 주로 가나안의 신들과 여신들을 많이 섬겼다. 그 신상들이 땅과 양떼, 사람의 풍요로움을 보장해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다. ⑤또 활발한 무역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의 횡포로 가난한 사람들이 점차 많아졌다. 北 이스라엘의 패망 : ①19대 호세아 왕까지 이어졌지만, 대부분의 왕은 하느님께 반역하고 부도덕과 惡政을 되풀이한다. ②BC 74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아시리아 제국은 : 大軍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공격해 온다. ③이때 호세아왕은 : 순종하며 공물을 바쳐 나라의 멸망을 겨우 면하지만 아시리아에 배반하여 이집트에 지원을 요청한다. ④이를 안 아시리아제국 왕은 : 호세아왕을 잡고 Is을 포위했으나 Is은 3년 간 완강하게 저항한다. ⇒그로부터 3년 후인 BC722년, 아시리아 제국은 : 다시 쳐들어와 수도 사마리아를 함락시키고,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을 포로로 끌고 간다. 결국 北이스라엘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된다. 2. 南 유다 왕국 南유다는 : ①北이스라엘보다 면적이 작고 인구도 적었으며 가난했다. ⇒北Is의 인구가 80만 명이었던 것에 비해 南유다는 30만 명 정도. 남유다의 땅은 메말라서 사막과 같았다. ②그러나 南유다는 동쪽에 위치한 큰 왕국들의 위협을 적게 받았다. 그래서 왕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었고, 왕권도 안정되어 있었다. ③유다 왕국이 성립된 기원전 930년부터 기원전 587년 느부갓네살 왕이 정복할 때까지 단 한 번의 반란도 일어나지 않았다(345년간 지속). 그래서 솔로몬의 성전이 큰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④남 유다도 북Is과 마찬가지로 不義가 만연했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몇몇 사람들은 부자가 되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희생당했다. ⑤왕들 가운데도 타락하고 신앙심이 없으며, 잔인한 행동이나 우상숭배를 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⑥때때로 예언자들이 일깨워 준 대로 힘을 얻어 개혁을 하는 왕들도 있었다. ⇒그런 개혁자들 중에서 요시야 왕이 가장 유명하다. 요시야(기원전 640-609년) 왕은 가나안의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제거하고 불의에 맞서 싸웠다. ⑦기원전 8세기부터 아시리아에 뒤이어 바빌로니아의 위협이 거세졌다. 점차 불안해지기 시작한 유다의 왕들은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와 차례로 동맹을 맺었다. ⇒南유다왕국의 패망과 성전파괴 : 北이스라엘과 南유다의 패망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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