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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13> 역사서를 왜 읽을까?

윤 베드로 2018. 12. 12. 07:50

 


▲ 성경의 역사서들은 사실 기록으로 그치지 않고 인간 역사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 사진은 '사해문서' 사본이 발결된 쿰란 유적지.



12월 초에 구약 시대의 역사를 훑어 보았지만, 많이 잊어버리셨을 것입니다. 그 역사는 몇 번 반복하지 않으면 머리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들여다볼수록 분명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들도 많고, 등장 인물도 많고, 갈수록 태산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을까요?

역사서를 읽는 첫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이 역사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계시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예를 탈출기에서 보았습니다.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되리라”고 말씀하셨고, 그다음에는 교리를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역사를 겪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역사를 통하여 하느님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신앙 고백은, 말하자면 “하느님은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시고…”라는 식의 추상적인 개념들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조상들이 체험한 역사를,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그 역사를 후손들에게 들려주고 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야기로 들려주던 것이 나중에는 문서로 기록되고, 그렇게 해서 역사서들이 시작됩니다. 그 책을 통해서 후손들이,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됩니다.

역사서를 읽는 두 번째 이유는, 역사서들이 사실 기록으로 그치지 않고 인간 역사에 대한 이해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역사서들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역사 기록은, 진공 상태처럼 중립적인 사실들의 열거일 수 없습니다.

 

일간 신문을 쓴다 해도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은 일들을 기록할 수는 없고, 따라서 선택이 필요합니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 가운데 어떤 일들을 더 중요한 것으로 보느냐, 여기에는 이미 역사 해석의 문제가 연관됩니다.

질문. 역사책을 읽을 때에 기록자의 해석이나 판단은 배제하고 객관적인 사실들만을 찾아내려고 해야 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어느 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유다 왕국이 바빌론에 멸망한 것이 기원전 587년인지 586년인지 열심히 토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가 그저 그 사실을 알아서 무엇합니까?

 

오히려 우리는 그 사건이 지금의 우리를 위해서 무엇을 말해주는지를 찾아야 하고, 역사 기록자는 그 작업을 도와줍니다. 우리보다 앞서 그가 그 사건들을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서가 작성된 시기라는 문제는 역대기를 읽을 때에 다시 생각하게 되겠지만, 지금부터 역사서들을 읽을 때 늘 염두에 둘 부분입니다.

 

예를 들어 탈출기를 읽는다면, 이집트 탈출 시대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탈출기가 기록된 시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상 이스라엘의 역사 기록은 대개 국가적 위기를 겪을 때에 작성되었습니다. 위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과거를 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기원전 722년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했을 때, 기원전 6세기 남 왕국 유다가 멸망하고 바빌론 유배를 겪게 되었을 때, 기원전 2세기 마카베오 시대와 같은 어려운 시기에 이스라엘은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그렇게 기록된 역사서들은, 위기에 이르게 된 이스라엘 역사의 모든 사건들이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이런저런 인간적 요인들만으로 역사의 흐름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역사의 주인은 하느님이심을 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시편 77,20-21에서는 “당신의 길이 바다를, 당신의 행로가 큰물을 가로질렀지만 당신의 발자국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당신 백성을 양 떼처럼 이끄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끄셨다고, 이끄셨을 것이라고 믿지만, 물속을 걸어가셨으니 발자국이 남지 않지요. 그냥 맨눈으로 역사를 보아서는 하느님께서 지나가신 흔적을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역사서들은 그 발자국을 짚어 줍니다. 여기, 이렇게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 들어오셨다고 가리켜 보여 주는 것입니다.

 

특히 역사 안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신 하느님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 그렇게 가리켜 보여 주는 역사서들이 필요했습니다.

앞으로 읽을 역사서들의 분류에 대해서만 미리 언급해 두겠습니다.

먼저 형성된 것은 신명기계 역사서입니다. 여기에는 여호수아기,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가 속합니다.

 

이 책들은 특히 남 왕국 유다가 멸망했을 때, 그 멸망을 배경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신명기 다음에 이어지는 이 책들은, 신명기의 가르침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이미 신명기계 역사서가 있었는데 그보다 훨씬 더 늦은 시기에 다시 작성된 역사서가 역대 기계 역사서들입니다. 역대기, 에즈라기, 느헤미야기를 보통 역대기계 역사서라고 부릅니다. 이 책들은 유배에서 돌아온 후에 작성되었습니다.

그 밖의 역사서들은 “기타 역사서”라고 하는 룻기, 토빗기, 유딧기, 에스테르기, 마카베오기 상하권입니다. 마카베오기는 그래도 다른 역사서들과 비슷한 역사서이지만, 다른 책 네 권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의미의 역사서는 아닙니다. 교훈적인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좋습니다.

역사서들을 읽으면서, 물속에 새겨져 있는 하느님의 발자국들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저희 귀로 들었습니다.

저희 조상들이 저희에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들 시대에 당신께서 업적을 이루셨습니다”(시편 44,2).

출처 : 평화와 착함
글쓴이 : 착한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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