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강의/복음 묵상

[스크랩] 2018년 11월 24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윤 베드로 2018. 11. 24. 18:31
2018년 11월 24일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제1독서 묵시 11,4-12

나 요한에게 이런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여기 나의 두 증인이 있다.”
4 그들은 땅의 주님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 나무이며 두 등잔대입니다. 5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원수들을 삼켜 버립니다. 누가 그들을 해치려고 하면, 그는 반드시 이렇게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 6 그들은 자기들이 예언하는 동안 비가 내리지 않게 하늘을 닫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원할 때마다 온갖 재앙으로 이 땅을 치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7 그러나 그들이 증언을 끝내면, 지하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싸워 이기고서는 그들을 죽일 것입니다. 8 그들의 주검은 그 큰 도성의 한길에 내버려질 것입니다. 그 도성은 영적으로 소돔이라고도 하고 이집트라고도 하는데, 그곳에서 그들의 주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9 모든 백성과 종족과 언어와 민족에 속한 사람들이 사흘 반 동안 그들의 주검을 바라보면서, 무덤에 묻히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10 땅의 주민들은 죽은 그들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선물을 보낼 것입니다. 그 두 예언자가 땅의 주민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11 그러나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느님에게서 생명의 숨이 나와 그들에게 들어가니, 그들이 제 발로 일어섰습니다. 그들을 쳐다본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12 그 두 예언자는 하늘에서부터, “이리 올라오너라.” 하고 외치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수들이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복음 루카 20,27-40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인터넷에 다음과 같은 여행상품이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1) 공짜 경품 이벤트: 제주도 2박3일 숙박권과 렌터카 48시간이 공짜! 단, 제세공과금(99,000원 별도).

2) 9만 9천 원 초저가 상품: 제주도 2박3일 숙박권과 렌터카 48시간(추가요금 없음).

눈치가 빠른 분은 아시겠지만, 사실은 똑같은 가격입니다. 그러나 첫 번째 상품에는 ‘공짜’라는 말이 들어 있었고, 두 번째 상품에는 ‘초저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액수이지만 대부분 첫 번째 상품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공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긴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이야기도 있듯이, 공짜는 어떤 상황이든 쉽게 사람들의 관심을 끕니다. 그런데 진짜 공짜가 있을까요?

유일한 공짜가 있기는 합니다.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입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주님의 마음에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절대로 변하지도 않고 또 포기하지도 않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을 의심하고 오해하는 경우가 우리의 삶 안에서는 참으로 많이 이루어집니다. 바로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특히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시지 않는다면서, 얼마나 많은 불평불만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이 주님의 사랑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사랑은 먼 훗날에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과거에 일회적으로 주어졌던 것도 아닙니다. 과거에도 주어졌지만 지금 이 순간에 주어지는 것이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주어질 사랑입니다.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파 몇 사람이 와서 예수님께 질문을 던지지요.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자식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해서 자식을 낳아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곱 형제 모두가 그 형수를 아내로 맞이했지만 자식 하나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부활했을 때, 이 일곱 형제 중에서 누가 형수의 남편이 되느냐는 질문이지요. 그 누구와도 부부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부활 역시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모세의 율법은 당시 과부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시동생이 보살펴야 한다는 규정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주님의 사랑이 묻어나는 율법이었습니다. 이 주님의 사랑은 보지 않고 오로지 율법의 글자만을 바라보고 있으니 편협한 생각 속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편협하고 닫혀 있는 생각들에서 과감하게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대신 주님의 사랑이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금을 잘 사는 방법입니다.
삶을 사랑하라. 그러면 삶도 당신을 사랑해주리라(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어제 강의를 했던 대전교구 예산성당입니다.


죽음에 대해서...

삶은 죽음이라는 엔딩이 있을 때에만 의미가 있다는 것을 철학자들은 ‘메멘토 모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으로 착각 속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100세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영원히 살 수는 없습니다.

어느 날 바라본 석양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왜 일까요? 바로 매일 그러한 아름다운 석양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운 한 여름에 쏟아지는 소나기에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것 역시 마찬가지지요. 이처럼 반복되지 않는 것들에 우리는 감사하고 또 기쁨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절대로 반복되지 않는 유일한 체험이라 할 수 있는 죽음도 그렇지 않을까요? 그 너머에 하느님 나라 안에서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기에 우리는 이 죽음을 잘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너머의 삶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산성당.


출처 : 성서100주간
글쓴이 : 지혜댁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