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복음 (마태오 11,25-30) 묵상 ◐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열 처녀의 비유는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를 일깨워 주는 복음입니다.
우리가 맞이할 신랑은 이 세상을 마치고 만나 뵙게 될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그 시
간과 그 때를 알지 못하기에 우리는 늘 깨어 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신랑 때문에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 당황하는 어리석은 처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의학의 발전으로 말미암아 장수의 세상에 들어섰습니다.
그렇다고 오래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지혜서는 “의인은 때 이르게 죽더
라도 안식을 얻는다.” 고 말하고, “영예로운 나이는 장수로 결정되지 않고 살아온
햇수로 셈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래 살면서 추하게 늙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악에 타협하고 살아 이성이 변질되면 “좋은 것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솟구치는 욕
망은 순수한 정신을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려면 먹고 살아야 할 물질적인 필요는 채워져야 합니다.그
러나 가난하다고 불행한 것은 아니며, 병들고 외로운 사람이 실패한 인생이 되라
는 법은 없습니다. 심리학자들은 행복이란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일상의 작은 기
쁨이 누적되어 찾아오는 만족감이라고 말합니다. 한마디의 위로, 작은 물질적 나
눔, 환한 미소와 따뜻한 손길, 희망의 복음이 세상 너머의 희망의 표지가 됩니다.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부활한 사람들입
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죽음은 인생의 마지막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시편 저자의
노래처럼, 주님께서 나의 목자이시기에, 세상살이가 각박해도 아쉬울 것이 없습
니다. 이제 그 행복을 찾아 나갑시다.
- 송 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묵상 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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