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논쟁 및 가르침(마르 12,35-44)
①다윗의 자손이시며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마르 12,35-37 ; 마태 22,41-46)
35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율법 학자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하느냐?
36다윗 자신이 성령의 도움으로 말하였다.
'주님께서 내 주님께 말씀하셨다. 내 오른쪽에 앉아라,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아래 잡아 놓을 때까지.'
37이렇듯 다윗 스스로 메시아를 주님이라고 말하는데,
어떻게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 되느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의 말씀을 기쁘게 들었다.
*Je은 :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라는
율사들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
⇒이것은 그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하면,
Ⅰ. 유대인들의 고정관념상 메시아는 어디까지나 다윗의 자손,
Je의 질문은 血統에 대한 것이 아니라
혈통을 초월하는 것에 관심 :
․인간적인 차원에서 볼 때
메시아는 혈통에 의해 다윗의 자손이 되지만,
․신적인 차원에서 볼 때
①예수님은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났으며
②신적인 사명을 지니신 주님이시다.(마태 22,41-46주석).
※유대인들의 고정관념 : 그리스도 = 다윗의 자손
예수님 ⇒ 인간적 차원 : 그리스도 = 다윗의 자손
신적인 차원 : 그리스도 = 다윗의 주님.
Ⅱ. ①본토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 예수님 = 다윗의 아들(자손)
⇒ 이승의 예수님을 가르키는 데는 적합,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르키는 데는 불충분하였기 때문에
"하느님의 아들" 이라고 했다.
②해외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구분) :
이승의 예수님 = 다윗의 아들(자손)
저승의 예수님 = 다윗의 주님.
⇔ 이를 뒷받침하는데 36절에 첨가된 시편 110편 1절을 인용.
②율법학자들을 조심하라
(마르 12,38-40 ; 마태23,1-36, 루가 20,45-47)
38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 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즐기고,
39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40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구체적으로 들추어내면서 비판.
①기다란 예복을 걸치고 다니며,
②장터에서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③공적인 예배터인 회당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④친교의 자리인 잔칫집에서도 윗자리에 앉으려 한다며
公的인 자리와 私的인 자리를 가리지 않고
특권과 신분을 드러내길 좋아한다고 비판.
⑤명예욕과 탐욕에 사로잡혀서 가난한 과부를 보호하기는커녕
그나마 있는 家産마저 등쳐먹으면서도 열심인 체
기도는 오래 한다고 그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판하시는 말씀.
⇒여기서 율법학자는 거짓 신앙인의 표본이고,
과부의 헌금 이야기에 나오는 과부는 참 신앙인의 표본.
*이스라엘 남자들은 :
①누구나 축일에 두루마기 비슷한 예복을 입었는데,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의 예복은 한결 더 길었던 것 같다.
②또한 남자들은 출애 13,1-16, 신명 6,4-9와 11,13-21을 적어
성냥갑 비슷한 것에 넣어(=성구갑)
그것을 이마와 왼팔 윗부분에 묶고 다녔다.
③겉옷 자락 네 곳에는 흰실과 푸른 실을 꼬아 만든
술(=옷단의 술)을 달고 다녔다.
④율사들과 바리사이들은 남들보다 성구갑도 더 크게 하고,
옷단의 술도 더 길게 만들었다.
③가난한 과부의 헌금(마르 12,41-44 ; 루가 21,1-4)
41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42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43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4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는
특별한 보살핌을 받아야 할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 생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여기 가난한 과부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Ɵ께 봉헌한다.
*당시에는 봉헌물을 봉헌자가 직접 헌금함에 넣지 않고
옆에 서 있는 제관에게 주면서 헌금액을 말하였기에,
주변 사람들은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가난한 과부는 : 당시 통용되는 화폐의
최소단위인 렙톤 두 닢을 헌금.
금전적 가치를 따질 수 없는 하찮은 금액.
(=우리 돈으로 십원 짜리 동전 두 개 정도).
*제자교육 : 과부는 비록 적은 돈을 헌금했지만
그것은 자신이 가진 것 모두를 하느님께 바친 것.
= Je는 액수의 많고 적음을 보신 것이 아니라
θ께 대한 사랑을 보신 것.
⇒그래서 예수님은 : 부자들이 많은 돈을
헌금궤에 넣는 것에는 관심×,
극히 적은 돈이지만,
가진 모든 것을 θ께 바친 가난한 과부에게 관심.
→가난한 과부를 아낌없이 칭찬.
*부자들은 : 가진 것의 ‘일부’를 내었고,
가난한 과부는 : 있는 것 ‘전부’를 바쳤다.
⇒ ‘일부’는 그 액수가 얼마든 ‘전부’보다 많을 수 없다.
계산방법을 달리하면 ‘값’이 다르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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