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소예언서 공부

스바니야서 3장 : 예루살렘을 단죄하다

윤 베드로 2017. 7. 19. 08:51

예루살렘을 단죄하다(3,1-8)

 

*3장은 유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과 관련하여

다시 한 번 예루살렘의 죄악(1-4절)과

이에 대한 하느님의 공의(5-8절)가 증거되고 있다.

9-20까지는 주님의 날에 임할 구원을 계시해 주고 있다.

 

3,1-8 :

하느님은 예루살렘성에 대하여 “반항하고 더러운 곳”

“포악한 성읍”이라고 말씀하셨다(3:1).

본래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 임재해 계시는 성전이 있는 곳으로서

거룩한 곳이며 평화가 있는 곳이었다.

어째서 이런 성이 이처럼 반항하고 더러운 곳이 되었는가?

이 물음에 대하여 2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고,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는구나.”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불순종으로 인하여 이처럼 반항하고

더러운 곳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이와 같은 불행한 일은 예루살렘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일어나고 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 공동체일지라도 말씀에 따라 살지 않는다면

세속화되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없고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된다.

예루살렘이 이처럼 반항하고 더러운 곳이 된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지도자의 부패에서 찾을 수 있다.

유다의 대신들은 부르짖는 사자와 같았고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두는 일이 없는 저녁 이리와 같았고

예언자는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하여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하느님의 말씀을 왜곡하여 전했고 제사장들을 성전을 더럽혔고 율법을 짓밟았다.(3:3-4).

이처럼 유다와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모두 탐욕에 이끌려

자신의 본분을 지키지 못하였다.

 

하느님은 열국을 모아 그들로 하여금 유다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유다에게 심판에 대한

경고의 메지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죄를 더함으로(3:7),

그래서 하느님은 유다에게 너희가 심판의 날까지

지금처럼 계속 죄를 더할 수는 있지만

너희 죄에 대한 심판의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의 회개(3,9-13)

 

하느님은 이들에게 회복의 은혜를 주기를 원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불신앙과 불순종은 하느님의 은혜를 차단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들 가운데 회복의 은혜를 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들 가운데 있는 죄를 제거하셔야 했다.

하느님은 심판을 통하여 권고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을 제거하심으로

이들 가운데 죄를 제거해 주셨고 또한 끝까지 하느님을 경외하는 일에

충성한 남은 자들에게 회복의 은혜를 주셨다.

여기 “그 때” “그 날에” 등은 모두 하느님께서 남은 자들에게

회복의 은혜를 주실 날을 말한다.

그 날에 하느님은 흩어진 자들(남은 자)을 모을 것이고

그들은 온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경외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 가운데 평화를 누릴 것이다.

 

예루살렘의 재건(3,14-20)

 

3,14-17 :

하느님께서 유다에게 회복의 은혜를 주셨을 때 유다는 다시 기뻐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유다에게

“딸 시온아, 환성을 올려라. 이스라엘아, 크게 소리쳐라.

딸 예루살렘아,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고 외치게 하신 것이다.

여기 놀라운 사실은 은혜 가운데 사는 하느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노래할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언제나 노래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시기 때문이다(3,17).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백성들이 기뻐하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임재하심을 기쁨의 원천으로 알지 못하고

다른 것에서 기쁨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 외에 다른 것들은 우리로 하여금 언제 어디서나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의 원천이 되지 못한다.

 

3,18-20 :

“축제의 날인 양 그렇게 하시리라.”

여기 “축제의 날”이란 하느님께서 남은 자들을 모으시고

그들에게 회복의 은혜를 주실 때를 말한다.

그 날에 그들은 즐거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그 날에 그들의 대적들을 벌하실 것이고

그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실 것이고 그들의 수치를 없애주시고

명성을 회복시켜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