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가 주님을 피하여 달아나다(1,1-16)
*요나서 1장은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영적 회복을 위하여
사용하시는 은혜의 수단들이 무엇인지 말해 주고 있다.
하느님은 자기 백성들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시련을 은혜의 수단으로 사용하신다.
하느님은 불순종한 요나를 회개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폭풍을 보내셨고,
또한 회개한 요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하여 물고기를 보내셨다.
여기 폭풍과 물고기, 즉 지으신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을
인도해 주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은혜의 수단들이다.
1,1-3 :
예언자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불순종하고 다르시스로 향하였다.
본문은 어째서 요나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거역했는지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다만 추측 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당시 니느웨를 수도로 하고 있는 앗시리아에 대하여
그리고 앗시리아와 이스라엘의 관계에 대하여 안다면
요나가 어째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거역하고 다르시스로 향하였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어느 정도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앗시리아는 근동의 어떤 나라보다도 잔인했다.
앗시리아는 정복한 나라의 민족성 자체를 없애기 위하여
정복한 나라 사람들을 서로 다른 나라에 이주시켜
통혼하게 하는 정책을 쓰고 있었다(열왕하17장).
예언자 요나는 당시 앗시리아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앗시리아가 이스라엘에게도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였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요나가 활동하기 이전에
이미 앗시리아는 이스라엘을 침략한 적이 있었다(B.C.853, 아합 때).
이런 정황들을 고려한다면 요나가 부르심을 거역하고 다르시스로 향한 것은
앗시리아가 자신이 선포한 메시지를 듣고 회개한다면
또 다시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째든 요나는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르시스로 향하고자 욥바로 내려갔다.
니느웨는 이스라엘로부터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지만
요나가 가고자 한 다르시스는 이스라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요나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요나는 주님을 피하려고 욥바에 내려갔을 때
마침 다르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다. 그래서 그는 배에 탔다(1:3).
이처럼 요나의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1, 4-10 :
요나가 다르시스로 향하고 있을 때 하느님은 그의 앞에 큰 폭풍을 보내셨다.
요나가 탄 배는 항해 중에 큰 폭풍을 만났다.
사공들은 폭풍으로부터 배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노력은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결국 배는 난파 직전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사공들은 폭풍 앞에서 자신들의 유한성을 깨닫고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신뢰하고 있는 신에게 구원을 요청한 것이다.
“뱃사람들이 겁에 질려 저마다 자기 신에게 부르짖으면서,
배를 가볍게 하려고 안에 있는 짐들을 바다로 내던졌다.(1:5)”
그러나 사공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신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구원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신이라면
모두 그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해 주기를 간청했다.
본문이 주는 교훈들 가운데 하나는 부르심을 받은 자가 불순종 할 때
자신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자가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말은 부르심을 받은 자가 순종 할 때 자신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의미와 동일하다.
즉 요나가 순종하였더라면 그 자신과 니느웨의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축복을 함께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그가 탄 배에 있는 모든 사람이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요나는 드러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1:5)”
요나는 폭풍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었을 때
배 밑층에 내려가서 자고 있었다.
요나의 이와 같은 행동은 하느님의 명령을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오는
양심의 고통으로부터 피하고자 함으로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요나는 자신의 양심을 무시할 수 있었지만 주님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선장은 현재의 재난이 신의 진노를 산 자가 배에 탔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그를 찾기 위하여 승선한 모든 사람들에게 제비뽑기에 참여할 것을 명했다.
이때 배 밑층에서 잠을 자고 있던 요나도 선장에게 발견되어
제비뽑기에 참여하게 되고,
요나는 제비뽑기에서 신의 진노를 산 자로 뽑혔다.
이로 인하여 요나는 심문을 받았고, 심문하는 자들이 묻는 말에 대하여
“자신은 히브리 사람이며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느님을 경외하는 자”임을 말하고, 이 재앙은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불순종했기 때문에 온 것임을 말하였다.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으로 모든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요나가 하느님께 불순종하고 피하여 도망가고 있는 것도 아셨다.
그래서 하느님은 제비뽑기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 가운데 요나를 뽑으신 것이다.
요나의 말을 들은 자들은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1:10)”라고 말하며 그를 책망했다.
1,11-17 :
폭풍의 위협은 요나에 대한 책망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폭풍은 점점 강도를 더해 갔다.
사공들은 요나를 해치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힘을 다하여 자신들의 힘으로 폭풍을 피해보고자 했다.
그러나 그들은 노력할수록 폭풍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일이란 제비뽑기를 통하여 “신의 진노를 가져온 자”로 뽑힌
요나를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이었다.
이처럼 무리로 하여금 요나를 바다에 던질 수밖에 없도록
환경을 섭리하신 분은 하느님이셨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환경을 섭리해 오신 것은
요나에 대한 특별한 뜻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요나에 대하여 가지신 뜻은
죄를 범한 요나를 바다에 던져 죽게 하는 것이었고
죽은 요나를 다시 살리시는 것이었다.
하느님은 이와 같은 뜻을 행하시기 위하여 요나와 함께 배에 탔던
무리들을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그들은 요나에게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바다가 잔잔해지겠소?(1:11)” 라고 물었고
요나는 그들에게 자신을 바다에 던지면 폭풍이 잔잔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공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폭풍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요나를 바다에 던졌다.
여기 중요한 교훈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이다.
즉 죄로 인하여 온 고통은 죽음으로서 속죄할 때만
그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의미다.
12절, 요나가 무리에게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한 것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 죄를 범한 자아를죽음에 넘긴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에게 진정한 회개란 어떤 것인지 말해 준다.
즉 진정한 회개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스스로를 죽음에 넘기는 것이다.
우리는 요나의 행동을 통하여 스스로를 죽음에 넘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실제로 요나가 불순종으로 인하여 하느님께 죄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함께 배에 탄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말했을 때, 그는 자신의 죄에 대하여
모든 책임을 지고 죽음으로서 그 죄에 대하여 속죄한 것이다.
그러므로 요나가 무리에게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말했을 때 이미 그는 죽은 것이다.
요나의 이와 같은 행동이야말로 스스로를 죽음에 넘기는 것이고 또한 진정한 회개다.
하느님은 죄를 범한 자기 백성들에게 이와 같은 회개를 원하신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내던지자, 성난 바다가 잔잔해졌다.(1,15)”
'구약성경 공부 > 소예언서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요나서 3장 : 요나가 니네베로 가다 (0) | 2017.07.13 |
---|---|
요나서 2장 : 요나가 회개하고 살아나다 (0) | 2017.07.12 |
요나서 입문 (0) | 2017.07.11 |
오바디야서 1장 : 새로운 이스라엘 (0) | 2017.07.11 |
오바디야서 입문 (0) | 2017.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