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소예언서 공부

호세아서 2장 : 배신한 이스라엘을 고발하여라

윤 베드로 2017. 6. 21. 08:42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행복한 날이 온다(2,1-3)

 

호세아는 풍요와 번영을 축복으로 착각하고

부정과 불의를 일삼는 배역한 이스라엘을 향해 심판을 선언한다.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고 그 이름을 통하여 예언한다.

첫째, ‘이스르엘’인데, '이스르엘'은 '하느님께서 흩으신다'란 뜻으로

이스라엘의 멸망을 암시한다.

둘째, ‘로루하마’(딸)인데, '동정을 받지 못하다'라는 뜻이다.

셋째, ‘로암미’인데, 너는 내 백성이 아니다란 뜻이다.

이제 하느님은 그 백성을 흩으시고(이스르엘),

더 이상 동정을 베풀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로루하마),

아예 포기하시고 버리신다는 것이다(로암미).

이렇게 호세아의 삶과 가정을 통하여 음란한 시대를 향한 심판을

예언하지만 2,1-2절에서 회복의 미래를 약속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바다의 모래처럼 불어나 헤아릴 수도 셀 수도 없으리라.

그들에게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하던 그곳에서

‘너희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하리라.

유다 자손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이 함께 모여

우두머리 하나를 내세우고 이 땅에서 크게 일어나리라.

이즈르엘의 날이 큰 날이 되리라.”

르호보암 때 분열된 두 왕국이 한 나라로 다시 통일 될 것을 시사하고 있다.

 

배신한 이스라엘을 고발하여라(2,4-15)

 

2,4-9 :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것을 권고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듣지 않는다면 신생아처럼 발가벗은 상태로

광야에 버려져 그곳에서 목말라 죽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 즉 이스라엘의 다음 세대까지 동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

4절에서 “어미”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상징하고 “너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 어미를 고발하라”는 말은

이스라엘에 속한 각 사람들에게 그들의 공동체가 범한 죄를

드러내고 그 죄를 인정하라는 뜻이다.

이렇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해 주시기 위함이었다.

 

공동체에 고발하는 사람이 없을 때, 어떻게 되는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지 않으면 태어나던 날처럼 그 여자를 발가벗겨

밖에 내세우리라. 그 여자를 광야처럼 만들고

메마른 땅처럼 되게 하여 목이 타 죽게 하리라(5절)”.

이 말은 회개하지 않으면 하느님께서 아이가 태어날 때처럼

발가벗긴 상태로 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이다.

신생아는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버림을 당한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공동체가 죄의 늪에 빠져 들어가고 있지만

아무도 죄에 대하여 슬퍼하며 회개할 것을 촉구하지 않는다면

결국 이 공동체는 광야에 버려진 아이처럼 멸망할 것이다.

7절 말씀은 하느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회마저 거절한 이스라엘의 완악한 모습을 말해 주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회개의 기회까지 잃어버린 것은

물질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떠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필요를 세상이 채워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떡과 물, 양털, 삼, 기름,

술을 얻기 위해서는 세상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8-9절 말씀은 회개를 거절하고 계속 세속화의 늪에 빠져 가는

하느님의 백성들을 하느님께서 어떻게 다루시는지 말해 주고 있다.

하느님은 세속의 길로 행하는 이스라엘 앞에 가시로 담을 쌓아 놓아

그들로 하여금 그 길로 가지 못하도록 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가시로 그 길을 막으셨음에도 그 길로 간다면

그것은 고통을 자초하는 것이 될 것이다.

 

2,10-19 :

본문은 이스라엘이 하느님께서 허락해 주신 축복을 바알에게 가져다주는

이스라엘의 악한 행위에 대하여 말해 주고 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어리석은 길로 행한 것은 자신들의 필요가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삶을 영위해 가기 위해 떡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떡을 줄 수 있는 곳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들을 바알에게 제물로 제공하는 행위는

바로 이와 같은 관심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스라엘은 지금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또한 모든 소유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인하여 얻는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하여

현재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하느님의 축복)들을 바알에게 제물로 바친 것이다.

 

하느님은 자신이 허락해 주신 축복들을바알에게 제물로 가져다 준 이스라엘로부터

그 축복들을 도로 찾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2:11-15).

또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로부터 은혜를 취하여 가실 때

그들은 열방 중에서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로부터 은혜를 취하여 가실 때 그들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들이 황폐할 때 그것들이 서 있던 곳이 수풀이 되어

들짐승들이 사는 곳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황폐하게 될 것이다(14절).

이처럼 이스라엘은 보다 더 풍요함을 누리가 위하여

하느님을 떠나 풍요의 신인 바알을 숭배했지만

그 결과는 이미 가지고 있던 것조차 모두 잃어버리고

결국 삶 자체까지 황폐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느님께서 다시 일치를 이루어 주시리라(2,16-25)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회개할 것을 그토록 권고했지만 그들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로부터 모든 은혜를 취하여 가셨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하심은 그들이 고통 중에서 넘어진 자신들을 진정으로

일으켜 주실 분이 누구인지 스스로 깨닫도록 하려 하심이었다.

17-19절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믿음을 회복할 것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본문은 회복의 날에 이스라엘 가운데 임할 축복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하느님은 회복의 날에 이스라엘 가운데 모든 저주를 없애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근동에서 여기에 언급된 들짐승, 공중의 새, 곤충들은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들이다.

특별히 구약에서 죄로 인하여 황폐한 성읍을 묘사할 때

“들짐승의 居處되었다”는 표현을 쓰고 있으며,

농작물 등에 내린 재앙 등을 묘사할 때는 곤충의 하나인 메뚜기 재앙을 말하고 있다.

 

회복의 날에 하느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들짐승, 공중의 새, 그리고 곤충으로부터 오는 재난은

자연을 통해 오는 재난이라고 한다면 활과 칼을 통하여 오는 재난은

인간으로부터 오는 재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날에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한다는 것은

사람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저주들을 제거해 주신다는 의미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저주들을 제거해 주실 때

비로소 우리는 평안히 눕게 되는 것이다.

회복의 날에 하느님은 죄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모든 것을 회복 시켜 주실 것이다(2:23-25).

이스라엘이 죄로 인하여 받게 된 심판은 호세아와 고멜을 통하여

낳은 자식들의 이름, 이스르엘, 로루하마, 로임미를 통하여 말해 주고 있다.

하느님은 회복의 날에 이스르엘은 본래 그 이름이 의미하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씨를 뿌리는 곳이 되어 이스라엘에게

풍성함을 가져다주는 곳이 되게 해 주실 것이고

동정을 받지 못하던 이스라엘(로루하마)은 동정을 받는 자(루하마)가 될 것이고,

내 백성이 아니라고 일컬음을 받던 이스라엘은

내 백성이라고 일컬음을 받게 해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