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욥기 공부

욥의 둘째 담론(9,1-10,22)

윤 베드로 2017. 2. 16. 08:07

Ⅲ-4. 욥의 둘째 담론(9,1-10,22)

 

*욥의 둘째 담론 :

신랄하게 자신을 정죄하는 빌딧에 대해 욥이 반론을 제기하는 이 본문에는

주권적인 하느님에 대한 욥의 부족한 믿음처럼 여전히 하느님의 완전한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만을 토로하는 그의 한계성이 잘 드러나고 있다.

끝까지 하느님께 모든 문제를 의지하며 믿는 그의 신앙적 자세는(32-34절)

고난의 문제가 범람했을 시 우리가 취할 신앙적 뜻과 자세에 좋은 모범이 된다고 하겠다.

이 본문에서는 결코 욥이 완전한 신앙적인 인격자임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고, 고통의 순간에 점차 하느님의 섭리를 깨달아 가는

성숙하는 신앙인의 과정을 보여주려는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말씀은 빌닷의 충고에 대한 욥이 반론이다.

욥은 인간이 하느님의 지혜와 능력에 대적하거나,

변론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이런 불행을 당할 만큼 죄를 짓지 않았음을 주장하며,

하느님의 법정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어 한다.

 

하느님의 독단(9,1-13)

 

1-4, 하느님과 변론할 수 없는 인생 :

①인간이 어찌 하느님 앞에 의로우랴(1-2절)

②하느님은 사람과 변론의 대상이 아니다(3절)

③하느님은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다(4절)

 

5-13, 하느님을 깨닫지 못하는 인생 :

①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지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5절).

②그가 땅을 움직이시니 그 기둥들이 흔들리도다(6절)

③그가 해를 명령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가두시도다(7절)

④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8절)

⑤큰곰자리와 오리온자리, 묘성과 남녘의 별자리들을 만드셨으며,

⑥측량할 수 없는 큰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네.

⑦그가 내 앞으로 지나가셔도 나는 보지 못하네.

⑧하느님이 빼앗으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누가 물을 수 있으랴(12절)

⑨하느님은 모든 악의 세력도 굴복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13절).

 

하느님은 우리 힘과 지혜로 감당할 수 없는 크고 위대하신 분이다.

하느님은 온 세상을 만드시고 창조 질서를 세우셨을 뿐 아니라,

때로는 혼란케 하시며 창조의 질서를 역행하시기도 하신다.

욥은, 땅의 기초를 안전하게 놓으시고

태양과 별들이 빛을 비추도록 하신 하느님께서

창조 질서를 역행하여 땅을 흔드시고 해가 뜨지 못하게 하시고

별들을 묶으셔서 무질서를 초래하는 분으로 말한다.

하느님의 일하심은 때론 너무나 크고 기이해서 우리가 이해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다.

또한 어느 누구도 하느님의 일하심을 예측하거나 막을 수 없다.

 

가장 강하신 분의 행동(9,14-24)

 

14-16, 하느님을 막을 수 없는 인생 :

①그 앞에서 무슨 말을 택하랴(14절)

②가령 내가 의로울지라도 대답하지 못하겠고(15절)

③내 음성을 들으셨다고는 내가 믿지 아니하리라(16절)

 

⇒하느님은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지닌 완전한 분이다(1-4,12-16절).

하느님은 인간과 질적으로 다른 완벽한 존재이시기에

어느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고 주장할 수 없다.

인간은 지혜로나 힘으로 도저히 하느님의 상대가 되지 못하기에

언제나 결론은 하느님이 옳고 의로우시다는 것으로 끝나게 된다.

그래서 욥은 하느님께 자신의 의로움을 인정받을 방법이 없다고

절망하면서도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다.

 

17-24, 의로운 욥을 치신 하느님 :

①그분께서는 나를 폭풍으로 치시고 까닭 없이 나에게 상처를 더하신다.

②나를 숨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을 내게 채우시는구나.

③힘으로 말하면 그가 강하시고 심판으로 말하면 누가 그를 소환하겠느냐

④내가 의롭다 하여도 내 입이 나를 단죄하고 내가 흠 없다 하여도 나를 그릇되다 할 것이네.

⑤나는 흠이 없네! 나는 내 목숨에 관심 없고 내 생명을 멸시한다네(21절).

⑥재앙이 갑작스레 죽음을 불러일으켜도 그분께서는 무죄한 이들의 절망을 비웃으신다네.

 

⇒욥은 자신의 고난을 까닭 없는 하느님의 공격으로 표현하며 혼란스러워 한다.

친구들의 말처럼 세상이 인과법칙으로 다스려진다면,

욥은 결코 악인으로 정죄받지 않을 것이라며 애타게 이 고난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다.

22절에서 욥은 이 세상의 공의와 질서가 왜곡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23절에서는 의인의 고난을 기뻐하시는 하느님,

곧 냉소적이며 무자비한 분으로서의 하느님을 보았다.

이와 같은 선상에서 욥은 본문에서 더욱더 신랄하게 하느님께 대한 불평을 털어놓고 있다.

 

냉엄하신 하느님(9,25-35)

 

25-31, 의로움을 입증할 수 없음 :

①저의 날들은 파발꾼보다 빨리 지나가고 행복을 보지도 못한 채 달아난다.

②갈대배처럼 흘러가고 먹이를 덮치는 독수리처럼 날아간다.

③탄식을 잊고 슬픈 얼굴을 지울지라도당신께서 저를 죄 없다 않으실 것이다(27-28절).

④저는 어차피 단죄 받을 몸, 어찌 공연히 고생해야 한단 말입니까?

⑤눈으로 제 몸을 씻고 잿물로 제 손을 깨끗이 한다 해도

당신께서는 저를 시궁창에 빠뜨리신다(30-31절).

 

⇒욥은 육지(파발꾼, 25절). 바다(갈대배 ; 빠른 배), 공중(독수리) 등에서

빠르다고 생각되는 것을 일일이 열거함으로써

보잘것없고 짧은 자신의 삶을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편 본문에서 욥은 단순히 세월의 빠름을 나타내려 하기 보다는

자신의 고통이 멈출 날을 기대하면서 병고 가운데 보내는 참혹한 시일들이

빨리 흘러가기를 소망하고 있다(34절).

 

32-35, 하느님께서 떠나시기를 바라는 욥 :

욥은 인생이 너무나 짧고 빠르게 지나 자신의 의로움을 입증하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25-35절).

욥은 자신이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하느님은 자신을 정죄하기로

작정하셨다며 자신의 고난이 이를 증명한다고 말한다.

욥은 절망에 빠져 무죄를 입증하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면서도

마지막으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공정하게 재판을 다뤄줄 강력한 ‘판결자’를 요청한다.

 

당신의 작품을 멸시하시는 하느님(10,1-12)

*인과응보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는 욥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신에게 다가온 고통에 대해 주 하느님을 향해 항의와 호소를 한다.

①고통스러움의 이유를 물어보는 욥(1-7절),

②하느님의 선하심을 상기시키는 욥(8-12절),

③하느님을 탓하는 욥(13-22절).

특히 여기서는 욥이 무죄한 자신에게 임한 이러한 고난이 너무도 답답하여

선하신 주님께서 왜 이런 고난을 주시느냐고 심하게 항의하면서도

주님의 자비하심을 기다리는 모습이 역설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욥이 고난 속에서 주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주님께 최후의 소망을 두고 그것을 결코 버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1-2, 욥의 불평 :

①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1절)

②저를 단죄하지 마시고, 왜 저와 다투시는지 알려 주십시오.

 

하느님과 변론하기를 포기한 욥은

이제 하느님께 왜 이처럼 자신을 다루시는지 억울함과 괴로움을 쏟아낸다.

이 같은 욥의 불평과 호소는 법정에서의 합법적인 불평으로서

먼저 자신이 지은 죄를 상세히 설명해달라는 요청이다.

 

3-7, 의인을 학대하고 악인에게 빛을 비추시는 하느님 :

①학대하시는 것이 당신께는 좋습니까? 악인들의 책략에는 빛을 주시면서.

②나의 허물과 죄를 들추어내십니까?(5-6절)

③당신께서는 저에게 죄가 없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하느님의 심문 방식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한 6절에 이어

7절에서 욥은 하느님 앞에서 흠 없이 살았다는 것을 자신 있게 주장하고 있다.

욥은 나름대로 하느님 앞에서 누구보다도 최선의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기에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8-12, 욥을 창조하신 하느님 :

①당신께서는 저를 빚어 만드시고서는 이제 저를 파멸시키려 하십니다.

②주님께서 내 몸을 지으셨다(9절)

③당신께서 저를 우유처럼 부으시어 굳히시고,

④살갗과 살로 저를 입히시고 뼈와 힘줄로 저를 엮으셨다.

⑤생명과 자애를 내게 주시고 저를 보살펴 주셨다.

 

⇒욥은 자신을 정성스럽게 지으시고 생명과 은혜를 주신 하느님께서

왜 이제는 자신을 사냥감과 대적으로 삼아 공격하시며 멸하려 하시는지 질문한다.

이스라엘 지혜자들은 태아가 자라는 것을 가장 위대한 신비로 보았는데,

욥 또한 신비로운 수태의 과정을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하느님의 주권적인 섭리를 의도적으로 묘사했다.

 

매정하신 하느님(10,13-22)

 

13-17, 욥을 혹독하게 다루시는 하느님 :

①당신께서는 이런 것들을 마음에 숨기셨다.

②제가 죄를 지으면 그 죄에서 풀어 주지 않으실 것이고,

③제가 유죄라면 저에게는 불행이고 무죄라 해도 머리를 들 수 없을 것이다.

④당신께서는 증인들을 새로 세우시고, 당신의 원한을 키우시며 저를 칠 군대를 계속 바꾸어 가며 보내신다.

 

18-22, 죽음 전 잠시라도 평안을 구하는 욥 :

①어찌하여 저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셨습니까?

②제가 죽어 버렸다면 바로 무덤으로 옮겨졌을 것을!

③이제 살날이 조금밖에 없지 않습니까? 제가 조금이나마 생기를 되찾게 저를 놓아주십시오.

④20-22절은 死後의 세계를 묘사.

 

⇒끝없는 고난의 연속에 직면한 욥은 살 소망을 잃고야 말았다.

그래서 모든 문제의 근원이 자기의 태어난 것 때문이라고 비관한다.

한편 여기서도 욥은 자신의 출생은 물론이고

현재 당하고 있는 참담한 상황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욥은 자신의 출생, 혹은 수태가 곧 죽음으로 직결되었기를 바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