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욥기 공부

욥의 첫째 담론① (6,1-7,21)

윤 베드로 2017. 2. 16. 07:42

Ⅲ-2. 욥의 첫째 담론(6,1-7,21)

 

*엘리바스의 충고에 대한 욥의 반박이다.

욥은 어리석은 자처럼 탄식하지 말고 인내하라는 엘리바스의 말에

지금 자신이 당하는 고통은 바닷가의 모든 모래보다 무겁고,

하느님께 죽기를 청할 만큼 크고 깊은 것이라고 답변한다.

6장에서 7장까지는 엘리바스의 변론(4-5장)에 대한 욥의 첫 번째 반응이 기록되어 있다.

 

전능하신 분의 화살(6,1-7)

①나의 원통함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다(1-3절)

②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혀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다.

③욥이 불평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④엘리바스의 변론을 책망한다(6-7절).

 

⇒5,2절에서 엘리바스는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한다”고 함으로써

 욥을 은근히 질책한 바 있는데, 본문은 그것에 대한 욥의 반박이다.

즉 고통에 처한 자가 그 고통을 토로한다고 무조건 질책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그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참작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욥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因果應報的인 변론만을 전개한 엘리바스의 태도에 대한 욥의 반박이라 하겠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6,8-13) : 죽기를 청함

①욥은 자신의 죽음을 간구한다(8-9절)

②욥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다(10절)

③미래의 소망보다 죽기를 재차 바란다.

④욥은 정신력과 육체에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고 한다.

⑤구원의 가능성이 전무한 욥의 절망감을 토로한다(13절)

 

⇒본문은 3장에 이미 나타난 욥의 간구를 재확인하고 있다.

즉 3장에서 욥은 자신의 죽음을 강하게 나타낸 바 있는데

여기서 그것을 다시 반복하여 피력하고 있다.

즉, 그는 ①차라리 잉태되지 말았으면(3:3 -10),

②탄생하지 말았으면(3:3-10),

③탄생하였으되 일찍 죽었으면(3:11-19)하고 소망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러한 소망의 연장선상에서

④지금이라도 죽었으면 하고 갈구한다.

이처럼 욥은 죽음의 가능성을 여러 가지로 설정하고

그 가능성들이 한 가지씩 실패로 돌아가자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한다.

 

*못 믿을 친구들 :

욥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느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난 자로

동방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로 인정을 받은 자였다(1:3).

하느님이 사탄에게 자랑을 함으로, 사탄이 “무슨 말씀입니까?

어찌 까닭 없이 하느님을 경외하겠습니까?” 하였다.

욥은 재물, 종, 자식을 다 잃었지만, 그래도 하느님을 경배 한다.

두 번째로 사탄은 욥의 뼈와 살을 치면 욕을 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욥은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자기의 출생을 저주한다.

지금 욥은 죽음보다 더 큰 고통 중에 있다.

러한 욥을 향해 엘리바스는 “어리석은 자 같이 행동하지 말라”고

하면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라고 충고한다.

6장에 들어 와서 엘리바스 충고에 대하여 반박한다.

지금 나의 고통은 바닷가의 모래보다 무겁고

하느님께 죽기를 청할 만큼 크고 깊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느님이 그의 손을 들어 나를 끊어 버리실 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고 한다.

욥은 친구가 당하는 고통을 위로하기는커녕 충고만 일삼는 엘리바스의 태도에 일침을 가한다.

엘리바스와 친구들은 우기에 잠깐 범람했다가 급속히 말라버리는

개울 같아서 꼭 필요할 때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믿지 못할 자들이라고 한다.

 

쓸모없는 우정(6,14-21) ; 의지할 수 없는 자들 :

①낙심한 자가 비록 전능자를 경외하기를 저버릴지라도 친구로부터 동정을 받는다(14절)

②15절은 개울과 같은 존재(와디) 마른 강으로 비유하고,16-17절은 얼음으로 비유,

18절은 자신의 심경을 물을 찾는 여행자에 비유하고 있다.

③시냇물을 찾았으나 그것이 메말라 있다(19-20절)

④너희는 아무것도 아니로구나(21절)

 

⇒욥의 친구들은 처음에는 욥을 동정하려는 진정어린 忠情心에서 찾아왔다.

그리고 욥의 고난에 동참하는 행위를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2:12, 13).

그러나 욥에게 내려진 재앙의 참혹함과 그것이 조만간 회복되어질

가능성이 희박함을 깨닫고 난 다음부터는

두려워하며 넌지시 발뺌하고자 했을 것이다.

아마 그들은 욥의 재앙을 하느님의 형벌로 생각했다.

즉 욥은 죄인이고, 그 죄값으로 재앙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들은 본래의 태도에서(2:12-13) 후퇴하여,

욥에게 온후한 사랑과 동정의 행동(말)을 나타내 주기를주저하게 되었다.

 

내가 무엇을 잘못 하였나(6,22-30) ; 욥의 변론 :

①욥이 친구에게 기대했던 것을 밝히고(22-23절),

②욥은 친구들을 직접적으로 질책한다(24절)

③올바른 말이 어찌 그리 고통스럽고,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냐(25절)

④26절은 친구들에 대한 비난이다.

⑤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넘기는구나(27절)

⑥이제 원하건대 너희는 내게로 얼굴을 돌리고,行惡者가 되지 말라(28-29절)

⑦욥은 다시 한번 잘못이 없음을 강조한다(30절)

 

⇒욥의 현재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주어진

친구들의 변론은 욥의 감정만 자극시켰다.

따라서 욥은 여기서 그들에게 기존 입장에서 탈피하여

욥 자신의 위치에 서서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