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욥기 공부

차라리 죽었더라면(3,11-19)

윤 베드로 2017. 2. 14. 10:23

Ⅱ-2. 차라리 죽었더라면(3,11-19)

 

11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숨지지 않았던가?

12 어째서 무릎은 나를 받아 냈던가? 젖은 왜 있어서 내가 빨았던가?

13 나 지금 누워 쉬고 있을 터인데. 잠들어 안식을 누리고 있을 터인데. 14 임금들과 나라의 고관들,

폐허를 제집으로 지은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15 또 금을 소유한 제후들, 제집을 은으로 가득 채운 자들과 함께 있을 터인데.

16 파묻힌 유산아처럼, 빛을 보지 못한 아기들처럼 나 지금 있지 않을 터인데.

17 그곳은 악인들이 소란을 멈추는 곳. 힘 다한 이들이 안식을 누리는 곳.

18 포로들이 함께 평온히 지내며 감독관의 호령도 들리지 않는 곳.

19 낮은 이나 높은 이나 똑같고 종은 제 주인에게서 풀려나는 곳.

 

11-19, 安息에 대한 갈망 :

①落胎와 早産死를 바라는 욥의 절규(11절)

②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③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인데(13절)

④사회적 특권 계층과 함께 있을 터인데(14-15절),

⑤욥은 낙태를 들고 나온다(16절)

⑥17-18절은 사회적 소외 계층을 이야기하고,

⑦상반된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동시에 언급되고 있다(19절).

 

⇒죽음의 상태에 대한 욥의 최초의 묘사가 나오는 구절이다.

다만 그는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고난과 하느님의 섭리에 대한

회의의 반작용으로서 죽음을 그리워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한계 상황에 처한 욥이 최종적으로 찾은 돌파구가

곧 자신의 삶에 대한 저주요, 죽음에의 希求였던 것이다.

요컨대 욥은 현재 자신이 당하는 고난이 종결되고,

새로운 차원 속에서 생명이 지속되는 곳으로 死後의 세계를 믿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