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사무엘기 공부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알고 슬퍼하다(18,19-19,9)

윤 베드로 2017. 2. 12. 07:40

Ⅵ-22.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을 알고 슬퍼하다(18,19-19,9)

 

19-23, 두 전령 :

①차독의 아들 아히마아츠가 빨리 임금에게 가서

하느님께서 원수 갚아 주신 소식을 전하겠다고 하자,

②요압은 그에게 왕의 아들이 죽었기에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하고,

에티오피아 사람을 불러, “네가 가서 임금님께 본 대로 알려 드려라.” 하고 일렀다(20-21절).

③아히마아츠가 다시 요압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으니

가게 해 달라” 고 청하자, 요압은 허락하였다(22-23절).

 

反亂의 주동이며 우두머리였던 압살롬의 죽음은

반란의 종결과 다윗군대의 승리를 의미한다.

틀림없이 기쁜 소식이긴 했지만 상황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 때문이다.

압살롬은 다윗에게 반란을 일으키고 다윗을 죽이려고 한

왕의 원수였지만 동시에 왕의 사랑하는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은 아들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다윗의 초조함과

왕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히마아츠의 조급함이 대조된다.

그래서 요압은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죽었기 때문에

아히마아츠가 다윗에게 勝戰 소식을 전하는 것을 말렸다.

왜냐하면 아히마아츠는 지금까지 좋은 소식만을 전달한

다윗의 심복이었으므로 이번에도 다윗은 그가 좋은 소식을 가져오는 줄로 착각할 것이기 때문이었다(27절).

따라서 요압은 압살롬의 죽음을 알리는 이번 일에는 아히마아츠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요압은 전쟁에서의 승리보다도 압살롬의 죽음이 다윗 왕에게는

더욱 큰 정신적인 충격을 안겨 줄 것이라고 내다보고

현재소식을 전하려 하는 아히마아츠를 자제시키고 있는 것이다.

 

24-30, 아히마아츠의 보고 :

①파수꾼이 바라보니, 어떤 사람이 혼자 달려오고 있어 임금에게 알리자,

②임금은 “혼자라면 기쁜 소식을 가져오는 자다.” 하고 말하였다.

③파수꾼이 본즉 한 사람이 또 달려온다고 전하자,

임금이 “그도 역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다.” 하였다(25-26절).

④파수꾼이 앞선 사람이 아히마아츠라고 하자,

그는 좋은 사람이니 좋은 소식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한다.

⑤아히마아츠가 승전보를 전한다(28절).

⑥임금이 “압살롬은 무사하냐?” 하고 묻자,

아히마아츠가 떠날 때에 큰 소동이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모른다고 대답한다.

 

⇒전쟁에서 아군이 패배할 경우에는 여러 명의 패잔병들이

도망쳐 올 것이지만, 승리하였을 경우에는 한 사람이

승리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달려올 것임은 기정사실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성으로 달려오고 있었으므로 다윗 왕은

승리의 소식을 알리는 연락병이 오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다윗왕은 아히마아츠에게 먼저 압살롬의 생존 여부부터 물었다.

즉 다윗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왕으로서 반란군의 진압 성공여부부터

먼저 물었어야 했는데도, 아버지로서의 강한 父性愛를 먼저 나타냈던 것이다.

즉 아히마아츠는 압살롬의 죽음이 다윗 왕에게 큰 충격이 될 줄 알고 있었으므로

여기서 확실한 대답을 회피하였던 것이다.

 

31-19,1,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

①그때 에티오피아 사람이 들어와 승리하였다는 소식을 전한다(31절)

②임금이 에티오피아 사람에게 “그 어린 압살롬은 무사하냐?” 하고 묻자,

에티오피아 사람이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의

원수들과 임금님을 해치려고 일어난 자들은

모두 그 젊은이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③임금의 마음이 심히 아파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다면하며 통곡한다.(19,1).

 

⇒죄의 代價는 빈틈없고 치밀하다.

충신 우리야의 죽음을 듣고 안심하던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訃告에는 통곡한다.

왕위는 보존되었지만 다윗의 마음은 비탄에 잠긴다.

다윗은 ‘그런 일로 걱정하지 말라’며 요압을 안심시켰는데, 그 요압이 다윗의 아들을 죽였다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킨다’(11:25)던 다윗의 말이 그 아들에게 이루어진다.

우리야의 戰死를 어쩔 수 없는 죽음으로 가장한 죄의 대가가

고스란히 뼈아픈 고통으로 찾아온다.

‘내가 범한 죄’가 ‘내가 당하는 죄’로 돌아올 수 있다.

 

19,2-5, 왕의 슬픔과 백성의 부끄러움 :

①“임금님께서 우시며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신다.”는 말이 요압에게 전해졌다.

②그리하여 모든 군사에게 그날의 승리는 슬픔으로 변하였다.

③군사들은 패자와 같이 부끄러운 모습으로 슬며시 城에 들어왔다.

④임금은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며 울부짖었다(5절).

 

다윗은 에티오피아 사람을 통해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 울며 통곡했으며 이 소식은 전쟁터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요압과 병사들에게도 전해졌다.

다윗의 병사들은 분명히 목숨 걸고 용감히 싸워 전투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이 슬퍼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난감하고 복잡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전투에서 패하고 돌아오는 패잔병처럼, 눈치를 보며 조용히 귀환한다.

다윗은 왕의 본분을 잊은 채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요압의 설득으로 왕의 직무에 복귀하지만,

백성들은 다윗을 다시 왕으로 추대하는 문제를 두고 논쟁한다.

 

6-9, 요압의 충고 :

①그때 요압이 임금의 거처로 들어가, 슬퍼하는 다윗에게

압살롬이 승리하였을 때의 상황을 들며 직언한다(5-6절).

②요압이 다윗 왕에게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당한 모든 禍보다 더욱 심하리라고 말한다(7-8절)

③그러자 임금이 일어나서 성문에 나와 앉자,

온 백성은 “임금님께서 성문에 나와 앉아 계시다.”는 말을 듣고 임금 앞으로 나아갔다.

 

⇒다윗을 향한 요압의 질책은 거침이 없다.

개인감정에 휩싸여 國政을 돌보지 않은 왕을 향한 압박이

조언을 넘어 위협의 수준에 이른다.

다윗은 극도의 슬픔 속에 있지만 요압의 말을 듣는다.

위로받아야 할 처지이지만 성문에 나타나 백성들을 위로한다.

요압의 말대로 만일 압살롬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왕과 그 가족 모두는 압살롬의 손에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요압의 사나운 비난은 오히려 다윗 왕으로 하여금

자기의 임무를 다시금 깨닫게 한 좋은 자극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