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는 삶
‘감사하라’는 말은 어떤 때 들으면 짜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도대체 감사할 일이 없는데 무엇을 감사하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그런데도 성당에서는 감사의 영성을 가르칩니다.
왜냐? 감사의 기도는 우리가 삶에 대하여 실망하고 자칫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마지막 처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겐 삶에 대하여 갖는 기대가 있습니다.
‘나는 적어도 이 정도는 살아야한다’ 는 기대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는 쉽게 자기 삶을 버리고 방치해두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 때 내가 감사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를 살피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가정도 사람도 모두 잃어버리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늘 감사하며 사는 것이 어려운가?’
그것은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을 계속해서 가지고 살지 못할 뿐 아니라
감사한 일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내가 섭섭한 것만 잘 기억하는 고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요즈음 불경기에 비즈니스로 모두가 힘들어합니다.
비즈니스할 때 ‘적당한 장소에 그저 손해안 보고 그저 먹고 살 수만 있게 해 주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비즈니스를 하다가 자신의 부주의와 욕심으로 문제가 생기면
‘왜 나한테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하게 합니까?’ 하고 불만을 이야기합니다.
이와 비슷한 일은 일상생활에서 아마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마치 덜 성숙한 아이 같아서 사탕을 처음 받았을 때와 사탕을 실컷 먹고 난 후의 마음이 다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마음은 저절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약한 사람은 늘 주위사람들을 피곤하게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역으로 늘 불만투성이란 말이기 때문입니다.
시골길을 우마차로 가는데 한 사람은 ‘시골공기 맡아서 좋다’ 고하고,
한 사람은 ‘시골길이 왜 이리 형편없어’ 하고 불평하면서 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불평을 해서 시골길이 바뀔 수 있다면 괜찮은데 아무리 불평을 해도 길이 그대로일 때는
불평하는 자신의 힘이 빠질 뿐만 아니라 같이 길가는 사람들까지 피곤하게 만듭니다.
가끔 할머니들이 물 한 잔을 드실 때도 성호를 그으시고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시는 모습을 봅니다.
작은 기도이지만 참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감사기도입니다.
이런 모습이 사람의 눈에도 좋아 보이는데 하느님의 눈에는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지만 갖지 못한 사람은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란 말씀이
감사에 대한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것 입니다.
영적지도: 조옥진(베드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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