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자료/카톨릭 교리

황사영 백서

윤 베드로 2015. 7. 5. 19:12

황사영 백서, 어떻게 볼 것인가

 

<왕조 부정이 아닌 신앙의 자유 추구>

 

▨황사영 백서란?

 

'황사영 백서'는 한국 가톨릭 교회 초기 지도자였던 황사영(알렉시오)이

           동료 황심(토마스) 등의 이름으로 중국 북경교구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려고 했던 명주에 쓴 비밀 서한을 말한다.

 

황사영이 백서를 작성하게 된 동기는 :

①첫째, 1790년이래 조선 신자들이 북경으로 밀사를 파견해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하고,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선교사와 함께 서양 선박의 파견을 요청

             '대박청래'(大舶請來) 사실에 있다.

②두 번째는 직접적인 배경으로 1801년 신유박해가 발생해

                  주문모 신부를 비롯해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자

               박해 상황을 북경교구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황사영 백서는 가로 62㎝, 세로 38㎝ 크기의 하얀 명주에

                     세필로 쓴 122행 1만3384자가 기록돼 있다.

 

내용 구성은 :

①구베아 주교에 대한 인사말

②신유박해 진행 과정과 순교자 열전

③교회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위한 5가지 방안

④관면 요청과 끝인사로 돼 있다.

 

황사영이 백서에서 제시한 교회 재건 방안은 :

①서양 국가들의 재정 원조

②북경교구와의 연락방안

③교황을 통해 청나라 황제에게 외교적 압력을 청하는 방안 등

                                              3가지이다.

 

또 신앙 자유 획득을 위해

①조선감호책(청황제가 조선을 보호 감독하기위해 조선 왕을 부마로 삼을 것)

②대박청래책(서양의 선박과 군사 무기들을 얻어 와서

         조선에 출정한 뒤 국왕에게 글을 보내 위협하여

         선교사를 받아들이도록 할 것) 등 2가지를 제안했다.

 

당시 조선 조정은 백서 내용 중 청나라 종주권 발동, 조선감호책,

       대백청래건을 3흉으로 지목하고

       황사영을 대역 부도죄로 능지처참형에 처했다.

 

▨황사영 백서, 어떻게 볼 것인가?

 

△ 황사영 자신의 변론

 

황사영의 공초 기록이 수록돼 있는「추안급국안」에는

              백서에 제시된 5가지 제안에 대한 황사영 자신의

             상세한 변론을 접할 수 있다.

청나라 종주권 발동에 대해 그는 당시 사대 관계에 있던

           조 청간의 관계를 이용한 방안이며,

          '조선 감호책'을 통해 중국과 조선이 서로 통하게 됨으로써

           신부의 왕래가 쉽고 교우들도 중국에 들어가

           세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증언했다.

또 조선 감호책이 시행되면 '간사한 신하들이 힘을 잃고

            국왕권이 회복될 것'이며 '왕권 회복은 국익에 도움이 되고

            천주교의 자유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말했다.

           '대박청래'에 대해 그는 "이 계획은 다만 전교를 받아들이게 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나아가 백성들에게 해가 되지 않고,

            재물도 빼앗지 않는 인과 정의의 극치로서

            오히려 뛰어난 표양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공초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황사영의 의도는

        왕조의 부정이나 국가의 전복에 있었던 것이 아니며,

        당시 정치적인 모순을 해결함으로써 신앙의 자유를 얻으려는 입장이었다.

또 주목할 것은 황사영은 백서의 5가지 제안을 시행함에 있어서

                신중함과 융통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사학자들의 평가

 

이원순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황사영이 백서를 쓰게 된 것은

           어디까지 정치적인 것에 앞서서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안전하게 할 수 있느냐'는 신앙적인 관점에서

           출발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백서의 5가지 조항에 대해 파생적인 문제와 본질적인 문제를

       혼유할 때 잘못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거시적인 안목'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백서에는 당시 황사영이 가지고 있었던

        세계 인식의 한계성 내지는 서양 인식의 한계성이

        내포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교회도 그것이 위험한 착상이

        될수 있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오히려 백서가 지니는 역사적인 의의는 무엇인가를

        규명해야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양업교회사연구소 차기진 박사는 황사영 백서를 비롯한

       18-19세기 조선 천주교회에 대한 입장은

       당 시대의 역사적인 과제를 고려해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면서

      특히 위정자들의 정치적 입장과 의중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는

      문초 기록을 비평 없이 받아들여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차기진 박사는 "초기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대박청래'를 계획한 목적은

          ①신부의 안전과 선교의 자유를 보장받고

          ②마음대로 천주당을 건립할 수 있을 정도로

                           신앙의 자유를 얻는데 있었고,

          ③당시 조선교회 지도자들은 '서양선박=선교사=신앙의 자유'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면서

                   황사영 백서 내용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1. 8.19 평화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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