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자료/카톨릭 교리

한국 천주 교회사

윤 베드로 2015. 7. 27. 21:42

☆한국 천주 교회사

 

전 세계 천주교 선교 역사 중 가장 빛나고 자랑스러운 교회가

            바로 우리 한국 천주교회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교회는

              예외 없이 다른 나라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으로 전파되었지만

             오직 우리나라만 외국 선교사들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인 것이다.

             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인가?

 

18세기 말, 우리 조선사회는 온갖 당파싸움과 정치싸움으로

                아주 혼란스러웠다.

그러한 정치파동으로 모처럼 권세를 잡았던 세력도

           반대파에 의해 역적으로 몰려 참혹한 화난(사화)을

           당하는 일이 계속되기도 하였다.

 

그러한 와중에 1년에 3-4회 중국에 사신단으로 파견되었던

         외교 사절들을 통해 들어오게 된 “천주실의”, “칠극” 등의

         천주교 교리서를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당시 주자학파의 독선적 행위와 당파싸움에 불만을 품고 있던

         쟁쟁한 신진학자들인 실학파와 남인계 학자들에게 애독되어

         큰 호평을 받아 연구 검토되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은 이벽, 정약종, 정약전, 정약용,

                권일신, 권철신, 이승훈 등이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학문적 호기심으로 연구되던 이 천주학이

              급기야 신앙적 실천운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때 이벽이 주동이 되어 동지사 사절단 일원이었던

       이승훈을 중국에 보내 천주교를 좀 더 세세하게 알아보도록 했는데,

      이승훈은 1784년 2월에 북경 천주교회 그라몬 신부로부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성경 등 많은 교리서와 성물을 가지고 귀국했다.

하느님의 진리를 목말라하던 이들이 이 책들을 연구하며 몰두하여 읽고

              마침내는 세례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

 

한 가지 우습고 재미있는 사실이 있었는데,

①외국인 선교사들의 지도와 도움이 없이 천주교회를 받아들였기에

             교계제도를 전혀 모르던 신자들이 너무 앞서고 지나친 열성 때문에

            스스로 교회를 세우고 세례를 베풀었다.

②여기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신자들이 계속 증가하다보니

          교회를 보다 질서있게 이끌어 나가기위해 일반신자들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네끼리 주교, 신부를 뽑아서 고해성사를 주는 등

        평신도로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했다.(假聖職制度)

  나중에 북경 천주교회에서 이 사실을 알고 금할 때까지 그렇게 했던 것이다.

③또 한 가지 감동스럽고 아름다운 일은, 양반들이 그들의 하인들을

         천주교 신자로 만든 후 그 종들을 더 이상 차별대우하지 않고

           같은 친구처럼 대하면서 함께 기도하며 생활했다고 하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④그뿐 아니라 남존여비 사상도 타파하고 은연중 평등사상이 퍼지면서

          새로운 서구사상과 문명을 보급시키는데 있어서도

          선구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교회 초창기 때에 학자와 양반들이

①한편으로는 열심히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며 기도생활에 앞장섰고

②또 한편으로는 부지런히 예수님의 복음말씀을 전하면서

             나름대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③그러나 이러한 기쁨과 행복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남인 학자들과 중인 계급 사이에서 쟁쟁한 분들이 계속 영세하여

           천주교를 믿으니 사상계에 충격을 주게 되었던 것이다.

원래 우리나라는 조상대대로 불교와 유교를 생활신조로 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특히 보수적이고 배타적인 유교출신 관헌들이

        놀라고 서양 종교인 천주학을 이질시하고

        사악한 종교라고 단정함으로써 불행하게도 천주학,

        즉 천주교를 반대하고 박해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1785년 봄, 현재의 서울 명동성당 자리인 명례방에서

           천주학에 관한 집회를 갖고 있던 교회 지도자들이

          관헌에 발각됨으로써 마침내 첫 번째 박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①처음 나라에서는 천주학을 암적인 존재로 여기고 이를 근절시키려고 했다.

②그래서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몇몇 신도들에게만

             참수형 등 가혹한 형벌을 가함으로써 끝을 맺으려 했다.

③그러나 형벌을 가하면 가할수록 더욷 더 신자수가 늘어나므로

              마침내 박해는 전국에 파급되었을 뿐 아니라

  1886년 한불수호조약이 체결되어 종교의 자유를 얻을 때까지

             100여 년간 계속되었다.

④안 믿겠다고 한 마디만 하면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음에도

       그 한마디를 하지 않고 순교의 칼을 기쁘게 받았던 것이다.

⑤그리하여 마침내는 전국적으로 만 명씩이나 되는 천주교 신자들이

              목숨을 잃고 순교자가 되었다.

1886년 한불 수호조약 이후 그처럼 지겹고 참혹했던 박해도 끝이 나고

           비로소 천주교회 내에 신앙 자유의 물결이 흐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최초 박해 장소였던 서울 명례방 자리에

           명동 주교좌 성당이 건립되어 한국천주교회의 주축이 되었다.

또 이어서 전국 각지에 천주교회가 건립되고

               신학교, 수도회, 학교, 병원 등이 설립되었다.

 

<주인배 신부/지극히 존귀한 당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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