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강의/복음 묵상

부활 : 새 생명의 원리 1

윤 베드로 2015. 2. 21. 13:26

●부활 : 새 생명의 원리 1

 

"예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겠고,

        또 살아서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마르타는 '예, 주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요한 11, 25-27).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축하드리기 위해

           부활절에 함께 모여 기뻐하며 기도한다.

이천 년 전, '하느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던 분이 사람들의 몰이해로

       감히 '하느님의 아들'인 체한다는 죄목으로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분은 죽으신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진정 '하느님의 아들'임을 증명하셨다.

바로 부활절은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날이며, 우리는 그 날을 기념한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1. 예수 부활의 의미

 

주님의 부활은, 만물이 새 생명으로 약동하는 새봄같이

           우리의 굳은 마음을 녹여 주고, 새 마음의 싹을 트게 하여 준다.

인간의 삶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은

          사실 믿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살고 있다는 현실은 그 현실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죽음보다는 좋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살기를 원하며 자기 존재의 보존과 자기 자신의 삶의 상태를 원한다.

자연의 이치를 생각해 볼 때 특히 나무들이 겨울에 나뭇잎을 다 떨어뜨린 채로

           죽음의 상태를 지내고 새봄을 맞아 잎을 내고 꽃을 피우듯이,

           예수님이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보여 주신 대로

           우리 인간들도 일단은 한번 죽음의 문을 통과한 후 새로운 삶을 맞이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본질이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도저히 믿기 힘들어 한다.

그러나 한번 잘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가공적인

          혹은 전설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분은 우리 인간과 똑같은 구체적인 한 인간이었다.

2000년 전에 이 세상에 지금도 그 나라가 존재하는 이스라엘 땅에 오셔서

           그 당시 사람들과 함께 인생을 살고 가신 분이다.

또 그분은 실제적으로 이 세상에 한 인간으로 태어나 오셨고

              삶을 구체적으로 사셨다.

그리고 그분이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신 말씀도 있고,

           그분이 행하신 기적과 그분에 대한 증언들도 함께 존재한다.

그런데 만일 그분이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그 당시 사람들에 의해 그분이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한결같은 증언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2. 예수 부활의 증인들

 

요한 복음 20장에 보면, 예수께서 돌아가신 지 3일째 되는 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 무덤에 가 보았더니

        굳게 닫혀 있던 무덤 입구의 큰 돌이 치워져 있고,

        "빈 무덤"을 발견했다고 나온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8장에 보면, 같은 날 새벽에 여자들이

          무덤가에서 예수님을 찾고 있는데

          천사가 발현하여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전에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마르코 복음 16장과 루가 복음 24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동일한 부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사도 10, 41) 하는

           구체적인 증언도 있다.

사도들은 만나지도 않았던 예수님을 만났다고 할 위인들이 아니다.

제자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 중에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예수라는 죄인과 연루되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했던 겁 많은 사람이었다.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모두 도망 친 사람들이다.

그들은 안식일 아침, 여자들이 들려주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 있다."는 말을 듣고

           달려가 확인하고서도 그 일을 이상히 여기고 돌아갔던 사람들이다.

이러한 그들이 만일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함께 식사를 했다고 증언하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즉 사도 행전에서 보듯이 예수 부활을 힘 있게 증언하고,

           그로 말미암아 당국의 감시와 박해를 받으며,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며 "부활하신 예수의 이름 때문에

            매를 맞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였다."(사도 5, 41)라고 말할 수 있었겠는가?

 

사도들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체험하였기에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메시아, 구세주,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언하다가 순교를 한,

              말하자면 예수 부활의 목격 증인들이다.

 

3. 예수 부활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바탕

 

우리는 바로 이 사도들의 증언에 우리의 믿음과 전 생애의 소망을 걸고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모든 이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당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그들의 증언이 바로 우리의 신앙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의 2000년 역사 중 그리스도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갖게 한 원동력은

          바로 예수 부활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으며,

          그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께서는 그리스도가 되셨다.

그리스도교 초창기 로마 제국 시대에 제국 안에서 그리스도교가 아직 공인되지 않았을 때도

       그리스도인들은 300년 동안 지하 무덤, 카타콤바라고 하는 땅속 무덤 에 숨어 살면서

       그들의 신앙을 지키며,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였다.

그런 신앙의 원동력은 예수 부활 신앙에서 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에서도 200여 년 전 천주교가 들어오자마자 100년간 박해를 받았는데

       그 때 우리 초대 신자들 2만 명가량이 순교를 하였다.

그들이 생명을 바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느님을 굳게 믿고,

           하느님의 존재(하느님이 계시다는 것),

           강생 구속(예수님이 사람이 되어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고 부활하셨다는 것),

           삼위 일체, 상선 벌악(착한 이에게 상을 주고 악한 이에게 벌을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위해 죽으면 죽어서도 다시 살아나고

          상을 받고 영생을 누린다는 굳은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존재성을 의심하고

          그리스도교를 하나의 종교,

          말하자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큰 종교들, 불교, 유교, 이슬람교와 같은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에도 이러한 종교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들이 있으니

           사람은 아무 종교나 열심히 믿고 착하게 살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에 가끔 젖게 된다.

그리고 종교를 믿지 않아도 인간주의로서 형제를 사랑하고

           인류를 위한 좋은 일을 하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을 갖는 이들도 있다.

바로 이러한 생각들이 오늘날 여러 가지 사상 체계를 갖추고,

        종교에 대한 해석과 비판을 시도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그들의 이론적, 합리적 설명에 쉽게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것은 근대주의 사상으로서 하느님 존재에 대한 회의론,

        불가지론, 혹은 신이 죽었다고 하는 무신론,

        눈에 보이는 것만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실증주의,

        혹은 과학 만능주의의 사상으로 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교 내에서 일고 있는

            탈신화화 작업과 세속화의 현상이다.

그리스도교 내의 신화적이며 전설적인 이야기를 벗겨 내고

                  사실적인 것만 믿어 보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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