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시편 공부

제130편 용서를 간절히 기다림

윤 베드로 2022. 12. 21. 07:53

130: 개인 탄원시편인 여섯 번째 참회의 시편,

교회에서는 죽은 형제들을 위한 기도, 이를테면 연도에 이 시편을 인용한다.

작가는 깊은 슬픔에 젖어 하느님께 부르짖으며 죄의 용서를 간청한다(1-4).

작가 자신이 하느님의 자비를 굳게 믿고 있듯이(5-6),

이스라엘은 희망을 가지고 θ의 구원을 기다려야만 한다(7-8).

 

1. 죄의 용서 간청

1 [순례의 노래] 주님, 깊은 곳에서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2 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 제가 애원하는 소리에 당신의 귀를 기울이소서.

3 주님, 당신께서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님,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4 그러나 당신께는 용서가 있으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

 

2. 주님 안에서의 소망

5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6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기보다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기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네.

7 이스라엘아, 주님을 고대하여라,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으니.

8 바로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

 

130:

우리가 배워야 할 기도의 언어들 중 하나는

                “주님, 깊은 곳에서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

                  제가 애원하는 소리에 당신의 귀를 기울이소서(시편130,1-2)”이다.

이 기도는 우리가 어떤 처지에 있든지 바로 그곳을 소망으로 바꾸어 줄 것이다.

어째서 이 기도가 우리를 이처럼 소망으로 인도해 줄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이와 같은 기도를 하고 있는 시인의 처지를 생각해 보고

     또 이와 같은 기도를 했을 때 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살펴봄으로 얻을 수 있다.

시인은 지금 극한 고난 가운데 있다.

여기 깊은 곳에서라는 말이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해 준다.

이 말의 원뜻은 깊은 바다속을 의미하며, 이것은 지금 시인이 깊은 물에 빠져 있듯이

             내 외적 고통 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요나를 통하여 시인이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요나가 물고기에게 삼켜 깊은 바다에 갇혀 있었을 때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 주님, 깊은 곳에서 당신께 부르짖습니다.라고 부르짖는 시인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절대절망의 환경 가운데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모두는 이와 같은 환경 가운데서도 하느님께 기도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기도언어 중 다른 하나는 주님, 당신께서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님,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당신께는 용서가 있으니

                사람들이 당신을 경외하리이다(130,3-4)”이다.

이 기도는 우리의 心靈이 지금 어떤 상태에 있든지

                 바로 그 심령을 은혜 가운데로 인도해 줄 것이다.

우리가 은혜 가운데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은혜가 무엇인지 알아야한다.

은혜를 아는 길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처지가 어떠한지 알고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주님, 당신께서 죄악을 살피신다면 주님, 누가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 고백은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므로

                 자신의 의를 가지고는 거룩하신 하느님 앞에 결코 나갈 수 없다는 의미다.

 

우리가 배워야 할 기도의 언어들 가운데 또 다른 언어는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130,5)”이다.

이 기도는 우리를 확신 가운데로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여기 내 영혼이라는 말은 시인의 전 인격을 말한다.

그러므로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라는 말은 시인이 온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그가 얼마나 간절히 하느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다음의 고백이 말해 주고 있다.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기보다 파수꾼들이 아침을 기다리기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네(130,6).”

여기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린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확실한 것을 기다린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시간이 속히 오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다.

 

이스라엘아, 주님을 고대하여라,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으니.

                     바로 그분께서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리라(130,7-8).”

이 고백은 시인의 관심이 자신으로부터 이스라엘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적용한 이 영적 원리들이 하느님의 백성 모두가 적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임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들이 시인이 사용한 세 가지 기도언어를 배워서

               그것을 사용한다면 세상에서 어떤 사람도 어떤 환경도

                그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반드시 믿음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언어는 창조하는 능력이 있다. 마찬가지로 기도의 언어도 능력이 있다.

하느님은 시편을 통하여 우리에게 삶을 승리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세 가지 기도의 언어를 가르쳐 주셨다.

주님, 깊은 곳에서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주님, 제 소리를 들으소서.”

당신께는 용서가 있으니,”

나 주님께 바라네. 내 영혼이 주님께 바라며 그분 말씀에 희망을 두네.”

우리가 이와 같은 기도의 언어를 사용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느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