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시편 공부

제109편 善을 惡으로 갚다(5절)

윤 베드로 2022. 10. 14. 07:31

109: 개인 탄원시편,

저자는 악한 계교로 그를 대적하는 원수들에게 주님이 보복해주시기를 기도하고,

            또 악인에 대한 저주를 퍼붓는다.

첫째부분과 셋째 부분은 많은 원수들에게 모욕을 당하고

                   또 비방을 당하는 한 사람의 탄원기도로 되어 있고(1-5, 20-31).

중간부분은 어느 개인에 대한 일련의 강렬한 비난이다(6-19).

 

1. 기만적인 원수에 대한 한탄

1 [지휘자에게. 다윗. 시편]

2 제 찬양의 하느님, 잠잠히 계시지 마소서.

    그들이 저를 거슬러 사악한 입과 음험한 입을 벌려 거짓된 혀로 제게 말합니다.

3 미움의 말로 저를 에워싸고 까닭 없이 저를 공격하며

4 제 사랑의 대가로 저를 적대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직 기도드릴 뿐.

5 그들은 제게 선을 악으로, 제 사랑을 미움으로 갚습니다.

 

2. 악인에 대한 저주

6 그를 거슬러 악인을 세우소서. 고발자가 그의 오른쪽에 서게 하소서.

7 그가 재판받으면 죄인으로 나오고 그의 기도는 죄가 되며

8 그의 살날들은 줄어들고 그의 직책은 남이 넘겨받게 하소서.

9 그의 자식들은 고아가,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소서.

10 그의 자식들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빌어먹고 자기네 폐허에서 쫓겨나게 하소서.

11 빚쟁이가 그의 것을 모조리 잡아채고 남들이 그의 벌이를 빼앗으며

12 그에게 자애를 품는 이 없고 그의 고아들을 불쌍히 여기는 이 없으며

13 그의 후손은 끊어지고 다음 세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

14 그 조상들의 죄악이 주님께 기억되고 그 어미의 죄가 지워지지 않게 하소서.

15 그것들이 늘 주님 앞에 있어 그들에 대한 기억마저 땅에서 없어지게 하소서.

16 그가 자애를 베풀 생각은 않고 가련한 이와 불쌍한 이,

              마음이 꺾인 이를 죽이려 뒤쫓기 때문입니다.

17 그가 저주를 사랑하였으니 저주가 그에게 내리고

              축복을 좋아하지 않았으니 축복이 그에게서 멀어지게 하소서.

18 그가 저주를 겉옷처럼 입었으니 저주가 물처럼 그의 몸속으로,

              기름처럼 그의 뼛속으로 스며들고

19 그를 덮고 있는 옷처럼, 그가 늘 매고 있는 허리띠처럼 되게 하소서.

20 이것이 저를 적대하는 자들이, 저를 거슬러 악한 것을 말하는 자들이

                 주님에게서 받는 대가가 되게 하소서.

 

3. 탄원 기도

21 그러나 하느님, 당신은 저의 주님. 당신 이름을 생각하시고

      저를 위하여 행하소서. 당신의 자애가 선하시니 저를 구하소서.

22 저는 가련하고 불쌍하며 제 마음은 속에서 구멍이 뚫렸습니다.

23 저는 기우는 그림자처럼 스러져 가고 메뚜기처럼 쫓겨납니다.

24 저의 무릎은 단식으로 후들거리고 저의 살은 기름기 없이 말라 갑니다.

25 진정 저는 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저를 보는 자들은 머리를 흔듭니다.

26 저를 도우소서, 주 저의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구원하소서.

27 그래서 그들이 깨닫게 하소서, 그것이 당신의 손임을,

                  주님, 당신께서 이를 행하셨음을.

28 그들은 저주하지만 당신께서는 복을 내리시고

                 저의 적들은 창피를 당하지만 당신 종은 기뻐하게 하소서.

29 저를 적대하는 자들은 수치로 옷 입고 창피를 덧옷처럼 덮게 하소서.

30 나는 주님을 내 입으로 한껏 찬송하고 많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찬양하리니

31 불쌍한 이의 오른쪽에 서시어 그를 판관들에게서 구원하시기 때문일세.

 

109:

시인은 지금 자신이 원수들로부터 곤경을 받고 있다고 하느님께 호소하고 있다.

말은 우리의 신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일생을 축복으로 이끌어 주기도 하고 저주로 이끌어 주기도 한다.

시인은 매일 대적들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저주의 말들을 들었을 때

            자신의 아픔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가

하느님께 쏟아놓았다. “제 찬양의 하느님, 잠잠히 계시지 마소서(109,2).”

이 말은 온전히 신뢰하는 하느님께 자신을 의탁하는 기도다.

시인을 저주하는 대적들은 사랑을 배반으로 갚는 자들이었고

            선을 미움으로 갚는 자들이었다(5-6).

 

시인은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 가운데 특별히 한 사람을 정하여

            그를 향하여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고 있다(109,7-20).

어떤 학자들은 여기 한 사람이 에돔 사람 도엑 일 것이라고도 한다(1사무21-22).

본문은 바른 이해를 위하여 우리에게 개인감정과 거룩한 분노를 분별할 것을 요청한다.

이것을 분별하지 못할 때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거룩한 분노란 하느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분노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개인의 감정과는 다르다.

 

시인은 거룩한 분노로 인한 격한 감정을 진정시키고

             다시 하느님의 자비와 자애하심을 구한다(109,20-31).

그는 현재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주님께서 살펴 주시기를 원했다(109,23-27).

여기 시인이 자신에 대하여 표현한 하나하나는

         현재 그가 얼마나 큰 고통 가운데 있는지 말해 준다.

실제로 현재 그에게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가난하고 궁핍한 가운데 지쳐 있었고 여전히 원수들의 비방거리가 되고 있었다.

시인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석양의 그림자와 바람에 쓸려가는 메뚜기에 비유하였다.

따라서 그의 현재 환경은 영혼의 어두운 밤에 해당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역사는 영혼의 어두운 밤에 시작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의 소망이 끊어진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께서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인이 시련 가운데 하느님의 자비와 자애를 구하는 순간부터

             그는 소망의 빛을 보기 시작했다(109,28-31).

여기 놀라운 사실은 우리에게 그토록 문제가 되던 것들이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

         그 분을 뵙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인은 은혜의 왕좌 앞에서 이처럼 문제로부터 자유로움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영적 삶도 회복되었다.

그는 고난으로 인하여 잃어버렸던 감사와 찬송을 되찾았고

         또한 하느님께서 시련 가운에 있는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다.

이처럼 하느님은 이 시편을 통하여 우리가 삶의 여정에서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은혜의 왕좌 앞에 나간다면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회복의 은혜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