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자료/오늘복음 묵상

9/4 그들도 신랑을 빼앗기면 단식할 것이다.

윤 베드로 2020. 9. 4. 07:44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9
그때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33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오늘의 묵상

유다 사회는 단식과 더불어 자선과 기도를 통하여 일상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준비를 하였지요.

늘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도 하느님을 만나 뵙고자 하는 마음은

          새로움으로 가득 찼던 것이 유다 사회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 사회는 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데 그렇게 완고하고 폐쇄적이었을까요?

누구보다 하느님을 갈망하면서, 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데는

            그렇게나 더딘 모습을 보여 주었을까요?

유다 사회를 떠나 가만히 우리네 삶으로 시선을 옮겨 와 봅니다.

습관이 되어 편한 하루하루의 삶, 굳이 바꾸지 않아도 무리 없는 삶의 방식들,

         애써 찾지 않아도 배부를 수 있는 여유. 이 모든 것에 익숙해져 있는,

         어쩌면 더 이상 세상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자기중심적 사고와 실천들.

         그 속에서 바라고 기다리는 새로움은 실은 묵고 묵은, 더 이상 낡을 수 없을 만큼

         닳고 닳아 버린 골동품이 된 것이겠지요.

하느님을 기다린다지만, 실은 케케묵은 제 욕망의 민낯을 기다리는 것이겠지요.

새 포도주와 새 부대의 만남은 헌 것을 버리고 무조건 새로워져야 한다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새 것과 헌 것이 만나지 말며, 새 것은 새 것과 만날 수 있도록 식별하고 적절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문제지요.

제 삶이 새롭지 않은데, 새 것을 기다린다는 모순을 깨닫는 것,

           삶은 파도의 물결처럼 출렁이고 번잡한 욕망으로 가득한데,

           제 삶의 고요를 바라는 황당함에서 깨어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새 것에서든 헌 것에서든, 태초부터 여태껏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분께서 계시는 곳은, 솔직한 모습으로 기쁘게 한잔하는 축제의 장이어야 합니다.

괜스레 저만을 위한 축제를 기다리면서 제 욕망에 젖어 혼자서만 배시시 웃는 철부지는 되지 말아야겠지요.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