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자료/오늘복음 묵상

9/1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윤 베드로 2020. 9. 1. 08:06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31-37
그때에 3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32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33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34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35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37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다고 합니다.

더러운 영을 내쫓으신 예수님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그분의 권위를 언급합니다.

오늘 복음의 앞부분과 뒷부분에 연거푸 두 번 나타나는 예수님의 권위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더러운 영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만 예수님과는 거리를 두지요.

‘무슨 상관’이냐며 예수님을 멀리합니다.

더러운 영은 제 이익과 제 삶의 안위를 행여 잃어버릴까 노심초사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더러운 영은 자신의 삶이 다른 이와 어떻게 다른지 구별하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의 자리를 제 삶의 자리라고 우기는 것이 더러운 영입니다.

타인의 자리를 맴돌다 그것이 제 것인 양 여기며 기생하는 삶이 더러운 영의 삶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을 제대로 안다고 하여도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방해꾼일 뿐이며

         낯설고 불편한, 그야말로 ‘타인’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과 더러운 영을 구별하십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데서 시작됩니다.

아픈 이를 아픈 이로 보고, 슬픈 이를 슬픈 이로 보며

       순수한 눈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바라보는 데 예수님의 권위가 있습니다.

제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하지 못하여 본래의 모습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것에

           질서와 고유성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 예수님의 권위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사유하고 존중하며 기념하는 오늘, 더 많은 것을 보고 듣고 움켜쥐기보다,

       우리 각자의 눈에 틀어박힌 들보를 빼내고 제 삶의 자리가 어디인지,

       우리의 눈이 자기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타인의 모습을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지 되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예.’ 할 것은 ‘예.’라고만 할 수 있는 순수함과 순박함이 예수님의 참된 권위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