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시편 공부

제50편 하느님께 대한 참 예배

윤 베드로 2020. 5. 13. 08:02

50편 하느님께 대한 참 예배

 

50: 예언적 훈계,

본 시편은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진정한 예배와 거룩한 생활의 회복을 요청하고 있다.

즉 하느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행해지고 있는 형식화 된 예배와

                 율법에서 떠난 그들의 생활에 대해 Ɵ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Ɵ께서 받으시는 신령한 예배와 Ɵ의 백성들이 살아야할

                  거룩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 교훈해 주고 있다.

이런 목적에 따라 이 시는 먼저 심판자로서 하느님의 위엄을 계시하고(1-6),

        다음으로 참된 예배를 상실한 백성을 책망하고

         하느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어떤 예배인지 말씀해 주고 있다(7-15).

다음으로 율법에서 떠난 이스라엘을 책망하고(16-21),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경고와 약속을 주신다(22-23).


1. 심판하시는 주님의 모습

1 [시편. 아삽] 하느님,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며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땅을 부르시네.

2 더없이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느님께서 광채와 함께 나타나시네.

3 우리 하느님께서는 잠잠히 아니 오시니 그분 앞에 불이 삼킬 듯 타오르고

그분 둘레에는 엄청난 폭풍이 이네.

4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심판하시려 저 위 하늘과 땅을 부르시네.

5?나에게 모여라, 내게 충실한 자들아 제사로 나와 계약을 맺은 자들아!?

6 하늘이 그분의 의로움을 알리네, 하느님, 그분께서 심판자이심을. 셀라

 

2. 형식주의에 대한 주님의 기소 ; 잘못된 희생 제사를 책망

7 ?내 백성아, 들어라. 내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아, 나 너를 거슬러 증언하노라. 나는 하느님, 너의 하느님이다.

8 너의 제사 때문에 너를 벌하려는 것이 아니니

너의 번제야 늘 내 앞에 있다.

9 나는 네 집에 있는 수소도, 네 우리에 있는 숫염소도 받지 않는다.

10 숲 속의 모든 동물이며 수천 산들의 짐승이 내 것이기 때문이다.

11 나는 산의 새들을 모두 안다.

들에서 움직이는 생물들도 내게 속한 것들이다.

12 나 비록 배고프다 하여도 네게 말하지 않으리니

누리와 그를 채운 것들이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13 내가 황소의 고기를 먹고 숫염소의 피를 마시기라도 한단 말이냐?

14 하느님에게 찬양 제물을 바치고

지극히 높으신 분에게 네 서원을 채워 드려라.

15 그리고 불행의 날에 나를 불러라.

나 너를 구하여 주고 너는 나를 공경하리라.?

 

3. 위선에 대한 주님의 고발

16 악인에게는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너는 어찌하여

내 계명들을 늘어놓으며 내 계약을 네 입에 올리느냐?

17 훈계를 싫어하고 내 말을 뒤로 팽개치는 너이거늘.

18 너는 도둑을 보면 함께 뛰고 간음하는 자들과 한패가 된다.

19 너는 입을 놀려 악행을 저지르고 네 입술은 간계를 엮는다.

20 너는 앉아서 네 형제를 거슬러 말하고

네 어머니의 아들에게 모욕을 준다.

21 네가 이런 짓들을 해 왔어도 잠잠히 있었더니

내가 너와 똑같은 줄로 여기는구나.

나 너를 벌하리라. 네 눈앞에 네 행실을 펼쳐 놓으리라.

22 이를 알아들어라, 하느님을 잊은 자들아.

그러지 않으면 내가 잡아 찢어도 구해 줄 자 없으리라.

23 찬양 제물을 바치는 이가 나를 공경하는 사람이니

올바른 길을 걷는 이에게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 주리라.?

 

 

 

50:

본문에서 묘사하고 있는 하느님의 임재에 대한 모습(1-3)

              마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수여하시기 위하여

              시나이 산에 임재하셨을 때의 모습과도 같다(탈출19).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말씀을 수여하실 때는 먼저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왜냐하면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 때

              하느님의 말씀을 권위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하느님의 위엄을 드러내기 위하여 하느님을 심판자로 나타내고 있다.

하느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심판자시다.

하느님은 사람을 판단하실 때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삼으심으로

                자신의 심판이 공의로우심을 보장하신다.

 

시편 저자는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위엄을 말한 후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는 먼저 제사에 대하여 말하였다(50,7-15).

그가 이렇게 한 것은 하느님께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예배의 의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제사로 나와 계약한 이들이라고 부르셨다(50,5).

이것은 이스라엘을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자로 부르셨음을 말해 준다.

너의 제사 때문에 너를 벌하려는 것이 아니니 너의 번제야 늘 내 앞에 있다(50,8).”

이 말씀은 이스라엘은 성실히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하느님은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릴 때 그 제사를 받으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의 숫소나 숫염소를 취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감사가 결여된 제물, 즉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는 의미다.

하느님은 형식적인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형식적인 예배란 예배 대상을 잃어버린 예배다.

예배자가 예배의 대상되시는 하느님의 임재를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 예배는 하나의 종교적 형식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이런 예배는 Ɵ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예배자에게도 유익을 주지 못한다.

또한 형식적인 예배는 감동을 잃어버린 예배다.

그리고 이런 예배는 예배자에게 어떤 기대감도 주지 못한다.

안타까운 것은 예배자들 대부분은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Ɵ은 우리가 감사함으로 예배드릴 때 그 예배를 받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엘리야가 갈멜산에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번제물을 올려놓고

               신령과 진정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을 때

               하느님께서 받으시고 제단 위에 응답의 불이 내리셨다.

이로 인하여 그곳에 있던 이스라엘 사람 모두는

        이스라엘의 하느님만이 참 하느님 되신다는 것을 고백하였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응답이 있다.

 

저자는 형식적인 예배에 대하여 하느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말한 후

           다음으로 율법에서 떠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말했다.(50:,16-21).

여기 하느님께서 악인이라고 칭한 사람은 율법을 말하고 가르치지만

       그것을 지켜 행하지 않는 자를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도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서 말씀에 따라 행하지 아니하면

       하느님은 우리를 악인이라고 부르실 것이다.

하느님은 이런 자를 책망하실 것을 말씀하셨고

              반드시 그 죄를 물으실 것을 말씀하셨다(50,21).

우리가 말씀을 말하기도하고 가르치기도 하지만 그 말씀에 따라 살지 않는 것은

           말씀에 대하여 진지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참으로 우리가 말씀에 대한 진지성을 가지고 말씀하옵소서 우리가 듣겠나이다라는

           태도로 말씀을 듣는다면 말씀을 주실 때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고

           또한 그 말씀에 따라 살 것이다.

따라서 우리 가운데 말씀의 진지성을 회복하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권위를 인정해야하고 또한 그 말씀이 우리에게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된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우리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원한다면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역사하실 수 있도록 기회를 드려야한다.

이 기회야말로 묵상의 시간이 될 것이다.

묵상이 없다면 우리 속에 뿌려진 말씀의 씨를 싹트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묵상의 시간을 통하여 들었던 말씀을 끊임없이

               삶 가운데 적용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으로부터 믿음이 흘러나오게 해야 하며 

               또한 그 말씀에 따라 살고 있는지에 대하여 항상 스스로의 모습을 확인하여야한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지금까지 교훈 해 주신 말씀을

          경고와 약속의 말씀으로 결론지어 주고 있다(50,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