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시편 공부

제22편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2절).

윤 베드로 2020. 5. 4. 13:02

22편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2).

 

22: 가장 중요한 메시아적인 개인 탄원시편 중의 하나.

그리스도 자신도 십자가에 달려서 이 첫째 줄을 되풀이 하셨고,

             나머지 몇 개의 절은 신약성서에 직접 인용되거나 암시되면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고통에 관한 이 감동적인 묘사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직결되고 있다.

따라서 이 22편은 전통적으로 가톨릭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전반부(1-22)에서 작가는 메시아의 버림받음과 불명예,

         그리고 육체적인 고통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대한

          자신의 흔들림 없는 신뢰감을 묘사하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하고 있다.

후반부(23-32)에서는 메시아의 구원의 결실을 설명하면서,

         구원받은 이들이 바치는 감사의 찬가와 이방인들의 회개,

         그리고 θθ의 사랑하는 아들의 영광을 묘사하고 있다.

 

1. 버림받은 자의 기도

1 [지휘자에게.?새벽 암사슴?가락으로. 시편. 다윗]

2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

3 저의 하느님, 온종일 외치건만 당신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니

저는 밤에도 잠자코 있을 수 없습니다.

4 그러나 당신은 거룩하신 분 이스라엘의 찬양 위에 좌정하신 분.

5 저희 선조들은 당신을 신뢰하였습니다.

신뢰하였기에 당신께서 그들을 구하셨습니다.

6 당신께 부르짖어 구원을 받고 당신을 신뢰하여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7 그러나 저는 인간이 아닌 구더기,

사람들의 우셋거리, 백성의 조롱거리.

8 저를 보는 자마다 저를 비웃고 입술을 비쭉거리며

머리를 흔들어 댑니다.

9 ?주님께 맡겼으니 그분께서 그자를 구하시겠지.

그분 마음에 드니 그분께서 구해 내시겠지.?

10 그러나 당신은 저를 어머니 배속에서 이끌어 내신 분

어머니 젖가슴에 저를 평화로이 안겨 주신 분.

11 저는 모태에서부터 당신께 맡겨졌고

제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당신은 저의 하느님이십니다.

 

2. 고난당하는 왕의 탄식

12 제게서 멀리 계시지 마소서. 환난이 다가오는데 도와줄 이 없습니다.

13 수많은 수소들이 저를 에워싸고

바산의 황소들이 저를 둘러싸 14 약탈하고

포효하는 사자처럼 저를 향하여 입을 벌립니다.

15 저는 물처럼 엎질러지고 제 뼈는 다 어그러졌으며

제 마음은 밀초같이 되어 속에서 녹아내립니다.

16 저의 힘은 옹기 조각처럼 마르고 저의 혀는 입속에 들러붙었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죽음의 흙에 앉히셨습니다.

17 개들이 저를 에워싸고 악당의 무리가 저를 둘러싸

제 손과 발을 묶었습니다.

18 제 뼈는 낱낱이 셀 수 있게 되었는데 그들은 저를 보며 좋아라 합니다.

19 제 옷을 저희끼리 나누어 가지고 제 속옷을 놓고서는 제비를 뽑습니다.

 

3. 구원을 간청

20 그러나 주님, 당신께서는 멀리 계시지 마소서.

저의 힘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21 저의 생명을 칼에서, 저의 목숨을 개들의 발에서 구하소서.

22 사자의 입에서, 들소들의 뿔에서 저를 살려 내소서.

당신께서는 저에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4. 찬양과 격려

23 저는 당신 이름을 제 형제들에게 전하고

모임 한가운데에서 당신을 찬양하오리다.

24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야곱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께 영광드려라.

이스라엘의 모든 후손들아, 주님을 두려워하여라.

25 그분께서는 가련한 이의 가엾음을 업신여기지도 싫어하지도 않으시고

그에게서 당신 얼굴을 감추지도 않으시며

그가 당신께 도움 청할 때 들어 주신다.

26 큰 모임에서 드리는 나의 찬양도 그분에게서 오는 것이니

그분을 경외하는 이들 앞에서 나의 서원을 채우리라.

27 가난한 이들은 배불리 먹고 그분을 찾는 이들은 주님을 찬양하리라.

너희 마음 길이 살리라!

28 세상 끝이 모두 생각을 돌이켜 주님께 돌아오고

민족들의 모든 가문이 그분 앞에 경배하리니

29 주님께 왕권이 있고 민족들의 지배자시기 때문이다.

30 세상의 모든 권세가들이 오직 그분께 경배하고

흙으로 내려가는 모든 이들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내 영혼은 그분을 위하여 살고

31 후손은 그분을 섬기리라. 장차 올 세대에게 주님의 이야기가 전해져

32 그들은 태어날 백성에게 그분의 의로움을 알리리니

주님께서 이를 행하셨기 때문이다.

 

22편은 :

全心으로 하느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받을 때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는 자신이 모태에서부터 하느님께 맡겨져 왔음을 말하고(22,10-11),

       고통 가운데서도 하느님만을 자신의 구원으로 고백하고 있다.

특별히 그가 극한 고통 가운데 있었지만 하느님에 대하여 어떤 원망이나

           불평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경건한 사람인지 말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극한 고통 가운데 있었다는 것은 경건한 사람들도

             때로는 하느님의 섭리가운데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말해 준다.

순전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경외하던 욥도 고난을 받았고,

          하느님 앞에 정직히 행하던 다윗도 고통을 받았으며,

          또한 죄 없으신 주님도 고난을 받으셨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우리가 고통을 단순히 죄에 대한 심판으로만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고통에 대한 주님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살펴야 할 일은 고통의 원인을 살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받고 있는 고통들 가운데는 죄로부터 온 것이 아닌 것도 있다.

          이런 고통은 하느님의 섭리가운데 주어지는 고통이다.

 

다른 하나는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시편 저자는 이와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소리쳐 부르건만 구원은 멀리 있습니다.

저의 하느님, 온종일 외치건만 당신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니

          저는 밤에도 잠자코 있을 수 없습니다.(22,2-3)”

이 기도에서 시편 저자는 밤과 낮을 부르짖었지만

          하느님께서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했다.

 

하느님의 섭리 가운데 오는 고통들 가운데 찾을 수 있는 특징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는 것이다.

욥에게 이 고통은 불가항력적이었다.

스바 사람들과 갈대아 사람들이 욥의 모든 소유를 탈취해갈 때

         누구도 그것을 막지 못했고, 재난이 욥의 자녀들의 생명을

         한 순간에 앗아가도 그것에 대항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시편 저자도 외적 환경으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고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하고 있었지만 그 고통으로부터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께 제게서 멀리 계시지 마소서.

환난이 다가오는데 도와줄 이 없습니다(22,12)”라고 탄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고통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온전함으로 이끄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은혜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은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는 길은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 특별한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우리가 이와 같은 고통을 받고 있을 때에도

             끝까지 인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은혜의 수단들을 허락해 주셨다.

그것들은 신앙의 고백과 기도며 또한 하느님에 대한 신뢰다.

시편 저자는 하느님을 자신의 힘으로(22,20), 의지할 분으로(22,11-12),

          그리고 구원의 하느님으로(22,5-6) 고백하였고 그 하느님을 끝까지 신뢰하였다.

 

고통은 우리를 온전함으로 이끌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사용하시는 은혜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을 때 그 고통을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

              온전함에 이르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고통을 통하여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오히려 고통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함으로 넘어진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고통을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므로 그것을 온전함에 이르는 기회로 삼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모든 환경은 온전함에 이르는 은혜의 수단들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