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시편 공부

제10편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윤 베드로 2020. 5. 1. 11:34

10편 심판을 위하여 보좌를 준비하셨도다.

 

10편은 : 악인에 대한 심판의 호소,

하느님의 정의를 찬양하고 있는 앞 시의 내용을 보다 깊고 넓게 다루고 있다.

현실 속에서 보여지는 부조리와 불의함을 하느님의 정의에 대한

       확신과 연결시키는 성숙된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다.

본문은 공의로운 하느님이 침묵하는 듯한 현실 세계의 모순된 상황,

           다시 말해 악인이 득세하고 성공하며

           의인이 핍박받는 상황에 대한 시인의 간곡한 탄원과(1-11),

           종국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공의로운 심판에 대한

            간곡한 호소와 확신을 고백한다(12-18).

이 시편은 고통당하는 자에 대한 도움을 지체하지 말아달라고

                주님께 간구하는 기도이다.

 

1. 간곡한 탄원

1 주님, 어찌하여 멀리 서 계십니까?

어찌하여 환난의 때에 숨어 계십니까?

2 가련한 이는 악인의 교만으로 애가 타고

그들이 꾸며 낸 흉계에 빠져 듭니다.

3 악인은 제 탐욕을 뽐내고 강도는 악담하며 주님을 업신여깁니다.

4 악인이 콧대를 높여 ?하느님은 벌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없다!? 하니 이것이 그의 생각 전부입니다.

5 그의 길은 언제나 성공에 이르고 당신의 심판은 높이 있어

그에게 미치지 않으니 그는 자기 반대자들을 모두 조롱하며

6 마음속으로 말합니다.?나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리라!?

재앙을 모르는 그자

7 저주만을 퍼붓습니다. 그 입은 사기와 억압으로 가득 차 있고

그 혓바닥 밑에는 재앙과 환난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8 마을 으슥한 곳에 숨어 앉아 죄 없는 사람을 몰래 죽이려

그의 눈은 힘없는 이를 살핍니다.

9 그는 덤불 속의 사자처럼 은밀한 곳에서 노립니다.

가련한 이를 잡아채려 노리다가 그물로 끌어당겨 잡아챕니다.

10 이렇듯 가련한 이는 두들겨 맞아 쓰러지고 힘없는 이들은

그의 폭력에 넘어집니다.

11 악인은 제 마음속으로 말합니다. ?하느님은 잊고 있다.?

?얼굴을 감추어 영영 보지 않는다.?

 

2. 惡人에 대한 심판의 호소

12 주님, 일어나소서. 하느님, 손을 쳐드소서.

가련한 이들을 잊지 마소서.

13 악인이 어찌 하느님을 업신여기며 당신께서는 벌하지 않으신다고

마음속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14 당신께서는 정녕 재앙과 재난을 보시고 손수 처리하시려 살피고 계십니다.

힘없는 이, 당신께 몸을 맡기고 당신께서는 고아에게 친히 보호자가 되십니다.

15 죄인과 악인의 팔을 부러뜨리소서.

그의 죄악을 징벌하시면 죄악이 자취를 감추리이다.

16 주님은 영영세세 임금이시니 민족들이 그분 땅에서 없어지리라.

17 주님, 당신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들의 마음을 굳세게 하시며 당신의 귀를 기울여 주시니

18 고아와 억눌린 이의 권리를 되찾아 주시고

다시는 세상의 인간이 을러대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0:

하느님의 백성은 사람들에 대하여 마땅히 해야 할 두 가지 의무가 있다(10,1-11).

하나는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축복해 주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사람들 가운데 행해지고 있는 악행들을 미워하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가운데 악이 행해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지만 하느님께서 그것에 대하여 침묵하고 계신 것을 보며

          하느님께 나가 이렇게 탄원하고 있다.

주님, 어찌하여 멀리 서 계십니까? 어찌하여 환난의 때에 숨어 계십니까?”(10,1)

이처럼 하느님의 백성들은 불의한 자들이 악을 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형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들의 행위에 대하여 침묵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일 때 고통을 느낀다.

이와 같은 일들은 우리가 고백하고 있는 신앙과 불일치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악인들의 행위를 보고도 어떠한 의분을 느끼지 못한다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정상적인 상태라고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의한 자들의 악행이 하느님을 배반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 때 그들의 행위는 우리에게 저항과

              내적 문제가 되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 나가게 한다.

또한 우리는 불의한 자들의 악행이 연약한 자들에게 고통이 된다는 것을 알 때 내적 고통을 갖게 된다.

 

여기 시인이 말하고 있는 악인들은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

          연약한 자들을 탈취하고 있었다.

시인은 이들의 악한 행위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마을 으슥한 곳에 숨어 앉아 죄 없는 사람을 몰래 죽이려 그의 눈은 힘없는 이를 살핍니다.”(10,8).

그러므로 한 공동체 안에 악인들이 많을수록 연약한 자들은 고통을 당하게 된다.

불의한 자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얼마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겠는가?

아합의 탐욕으로 인하여 죄 없는 나봇은 죽임을 당했다.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어 그를 죽인 것이다.

이와 같은 행위들은 하느님 나라의 임함을 방해 하는 것들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것들에 대하여 탄식할 줄 알아야 한다.

그때 이와 같은 탄식들은 우리를 하느님 앞으로 인도하는 은혜의 수단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은 삶의 여정에서 때로는 어찌하여라고

              탄식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탄식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도다(10,12-18.).

시인은 불의한 자들의 악행으로 인하여 하느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연약한 자들이 고통을 받고 또한 사람들이 그들의 악행을 본받는 폐단들을 보며 탄식했지만

           이들의 惡行이 하느님의 뜻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하느님께 나가 불의한 자들의 악행을 심판해 주시고

           이들로부터 고통 받는 자들을 구원해 달라고 탄원했다.

여기 주님, 일어나소서. 하느님, 손을 쳐드소서. 가련한 이들을 잊지 마소서(10,12)”

라는 시인의 기도야 말로 탄식을 극복하는 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탄원은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는 길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불의한 자들로부터 압제를 받고 있는 연약한 자들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다.

하느님은 시인을 통하여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하느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축복해 주는 일과

              불의한 자들에 의하여 행해지고 있는 악행들을 미워함으로

              언제나 영적 관심 가운데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