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다니엘서 공부

다니엘 11장 공부 ① : 천사가 이집트와 시리아에 관하여 설명하다

윤 베드로 2017. 11. 11. 07:32


천사가 이집트와 시리아에 관하여 설명하다(11,2-20) 


11,2-4 :

천사는 다니엘에게 기도 응답의 소식을 전해 준 후,

또 다시 이스라엘과 근동의 장래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전해 주었다.

천사는 페르시아에서 세 왕이 일어날 것이고

그 후에 네 번째 왕이 일어날 것인데

그가 강해져서 헬라를 침략할 것이라고 했다(11:2).

3절에서 “용맹한 임금”이란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을 말한다.

예언은 알렉산더 이후 헬라 제국이 나누어 질 것을 말하고 있다.

이미 8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알렉산더 이후 헬라 제국은

네 명의 계승자(카산더, 리시마쿠스, 톨레미, 셀류쿠스)에 의하여 지배권이 분할되었다.

4절, “그렇지만 그가 일어서자마자 그의 나라는 부서져 천하 사방으로

나뉘는데, 그의 자손들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고,

통치력도 그의 때와 같지 않을 것이다.

그의 나라가 뿌리째 뽑혀 그들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

넘어갈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것은

헬라 제국이 알렉산더의 아들에게 계승되지 않을 것에 대한 예언이다. 

  실제로 이 예언대로 그의 두 아들 알렉산더 4세는 카산더에 의하여

살해되었고, 알렉산더 3세의 이복형제인 필립 아르히다이우스는

정신 병자였는데, 그는 이미 317년에 암살되었다.

그리하여, 알렉산더에게는 그를 계승할 혈육이 없었다.


11,5-6 :

남쪽 왕은 애굽의 톨레미.소터 1세(B.C.323-285)이고,

북쪽 왕은 시리아의 셀류커스.니카도르1세(B.C.312-281)이다.

본래 니카도로1세는 바빌론의 안티고누스의 밑에 있던 자였으나

B.C. 316년에 안티고누스와 불화하여 톨레미 편으로 도망하였다.

그후 안티고누스가 망하자 그는 312년 톨레미의 도움을 받아

다시 바빌론으로 돌아가 2년 후에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러므로 셀류쿠스의 시대가 시작된 공식적인 시기는 B.C. 310년이 된다.

셀루쿠스는 동쪽으로 인더스강까지 서쪽으로 시리아와 페니키아까지

영토를 장악하였기 때문에 그의 권세는

그의 후원자 톨레미보다 훨씬 더 커지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애굽과 시리아 사이에 전쟁이 시작되었다.

여기 북쪽 셀루쿠스 왕조는 B.C. 64년까지 지속되다가 폼페이에게 망했다.


11,7-9 :

앞 절에서 언급한 사건들 뒤에 있었던 보복 사건에 대한 예언이다.

애굽의 톨레미 필라델푸스는 딸의 비극적인 죽음을 당한 직후인

B.C. 247년에 죽고 아들인 톨레미3세가 그의 뒤를 이었다.

그는 즉위한 후 누이의 복수를 하기 위하여 시리아를 공격했다.

이 전쟁은 B.C. 246년부터 B.C. 241년까지 계속 되었고

톨레미가 크게 승리하였다.

그러나 보복을 위한 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9절은 북쪽 왕 셀류쿠스2세가 또 다시 남방 왕에게 보복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때 그는 톨레미 영토 안으로 들어갔으며 페니키아와 북부 시리아의 지배권을 되찾았다.

이와 같은 세속 역사를 살펴보면서 한 가지 새롭게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세상 나라들은 탐욕으로 인하여 자멸해 간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의 멸망은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해방의 날이

가까워 옴을 알리는 신호가 되고 있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어째서 이처럼 다니엘에게 이방 나라의 역사에 대하여 

         자세히 말해 주고 있는지 주목해 보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오늘의 세계 역사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길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11,10-12 :

셀류쿠스2세가 죽은 후(B.C.226) 그의 아들인 셀류쿠스3세가 왕이 되지만 그는 3년만 통치하였다.

셀루쿠스2세의 둘째아들인 안티오쿠스3세는 왕위에 오른 후(B.C.223)

동부지방의 반란을 진압시킨 후(B.C.220),

다음으로 페니키아와 팔레스틴의 원정길에 나셨다(B.C.219-218).

그러나 그는 톨레미4세에게 패하여 치명적인 좌절을 맛보게 되었다.

11-12절이 이 사건을 말하고 있다.

안티오쿠스3세는 페니키아와 팔레스틴을 톨레미4세에게 양도한 후,

문제가 되지 않는 지역을 정복하며 제국의 영토를 넓혀 나갔다.


11,13-20 :

안티오쿠스는 B.C. 202년 전보다 더 많은 군대를 이끌고

다시 애굽을 공략했다.

그리하여 201년에 가자의 요새를 멸망시켰다(11:13-14).

그때 유대인들 중에는 애굽을 배반하고 안티오쿠스 편에 선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애굽의 스코파스 장군이 반격하여

친 안티오쿠스의 유대인 지도자들을 처벌하였다.

이 내용이 14절의 예언의 말씀이다.

그러나 스코파스는 결국 안티오쿠스에게 패하여

페니키아 해안의 시돈까지 퇴각하였는데 이것이 15절의 배경이다.

그러나 스코파스는 시돈에서도 패하였다.

이로 인하여 성지는 안티오쿠스에 속하게 되었다.

16절은 여기에 대하여 “ 남쪽 임금을 공격하는 자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데도, 그들을 아무도 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북쪽 임금이 영화로운 땅에 자리 잡으면,

모든 것이 그의 손안에 들어가고 말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는 B.C. 198년에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안티오쿠스는 애굽을 親셀류쿠스로 만들어 자신의 영향아래 두고자

B.C. 197년에 자신의 딸 클레오파트라를 당시 열 살이었던

소년 톨레미5세와 결혼 시켰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는 톨레미 왕국의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에게 어떤 정치적 이익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 안티오쿠스는 B.C. 187년에 죽고

클레오파트라는 B.C. 181년 톨레미 5세가 죽은 후

애굽 정부에 의하여 섭정 왕으로 임명되었다(11:17).

한 편 안티오쿠스는 스코파스와 싸워 승리한 후

에게해 연안의 나라들로 관심을 돌이켰다.

안티오쿠스 군대가 그들에게 접근해 갔을 때 로데인들은 로마에 원병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에게해 연안의 나라들 가운데 상당한 지역을 점령했다.

18절에 “해안 지방”이란 이와 같이 해안의 나라들을 의미한다.

여기 이미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남쪽왕은 이스라엘의 남쪽에 위치한

애굽을 말하고 북쪽왕은 이스라엘의 북쪽 시리아와 소아시아 지역

등의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두 나라가 전쟁할 때면 대부분은 팔레스틴이 전쟁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