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에제키엘서 공부

에제키엘서 21장 공부 : 주님의 칼

윤 베드로 2017. 10. 18. 06:55





불타는 수풀의 비유(21,1-5) 


*21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유다 왕국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이고(21:6-22),

또 다른 하나는 암몬에 대한 심판의 메시지다(21:23-37).

하느님은 칼이 유다의 모든 주민을 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하느님은 바빌론이 예루살렘과 암몬을 치러 올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처럼 21장은 내용적으로 볼 때 하느님께서 바빌론을 통하여

유다와 암몬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단순한 것이지만,

심판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한 언어들을 살펴본다면 “시간의 긴박성”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하느님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혼에 대하여 연민을 갖게 할 것이다


21,1-5 :

본문은 남쪽 수풀에 내릴 '불‘의 비유를 자세하게 해석하고 있다.

그것은 유다 전체에 닥칠 바빌론의 공격을 의미한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정화하여 깨끗케 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예언자에게 얼굴을 남으로 향하도록 말씀하시고

소리내어 이 기쁜 소식을 외치도록 하신 것이다.

2절은 남쪽 왕국인 유다는 불타 없어질 수풀과도 같다.


주님의 칼(21,6-22)


에제키엘에게 내린 말씀은 예루살렘과 성소를 향하여 선포하도록 주신 말씀이다.

하느님은 예언자 에제키엘을 통하여 유다 가운데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했음을 말씀해 주셨다.

“내 칼이 남쪽에서 북쪽까지 모든 살덩어리를 치려고 칼집에서 나갈 것이다(9절)”. 

“나 주님이 칼집에서 칼을 뽑았음을 모든 살덩어리가

알게 될 것이다. 그 칼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10절)”

“그 칼은 마구 죽이라고 간 칼이요

번개 치듯 내리치라고 날을 세운 칼이다(15절).”

“날을 세워 손에 쥐라고 그것을 내어 놓았다. 그것은 살해자의 손에

넘기려고 잘 간 칼이요 날을 세운 칼이다(16절).”

이런 표현들은 우리로 하여금 殺戮者가 사람을 죽이기 위하여

손에 날카로운 칼을 쥐고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그의 손에 들려진 칼은 그가 죽이고자 하는 사람을 향하여

언제든지 내려 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다.

이와 같은 표현들을 시간적으로 볼 때 긴박성을 나타내 주고 있다.

이처럼 유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임박했지만 유다는 깨닫지 못하고

언제까지 평안할 것처럼 생각하고 탐욕에 이끌려 살고 있었다.


하느님은 이처럼 무감각한 유다를 깨우쳐 주시기 위하여 예언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사람의 아들아, 탄식하여라. 그들이 보는 앞에서

허리가 끊어지는 듯이 괴로워하며 탄식하여라.

그들이 ‘어째서 탄식합니까?’ 하고 물으면, 이렇게 말하여라.

‘들려오는 소문 때문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모두 녹아 내리고

손은 모두 맥이 풀리며, 기는 모두 꺾이고

무릎은 모두 젖어 물이 흐를 것이다. 보아라, 들려오는 소문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21:11-12)

“사람의 아들아, 울부짖어라, 슬피울어라. 그 칼이 내 백성을 겨누고 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제후를 겨누고 있다. 그들은 내 백성과 함께 칼에 넘겨지고 말았다.

그러니 가슴을 쳐라.  너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여라. 손바닥을 쳐라.

그 칼은 두 번 세 번 휘둘리리라. 그것은 살생의 칼 큰 살생의 칼

그들 둘레를 빙빙 도는 칼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마음이 떨리고 많은 이가 비틀거리리라.

나는 그들의 성문마다 살육의 칼을 세웠다.

아, 그것은 번개 치듯 내리치라고 만든 칼 마구 죽이라고 날을 세운 칼이다.(21:17-20)”

이처럼 하느님은 영적으로 무감각한 유다를 각성시켜 주시기 위하여

슬픔으로 그리고 위협으로 극화된 말씀을 주셨다.

이렇게 하심은 무감각한 유다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심령이 각성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느님은 예언자들을 통하여 유다에게 구원의 길을 말씀해 주셨지만 

        그들의 귀와 눈이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말씀이 그들에게 아무 실익도 줄 수 없었다.


바빌론 임금의 칼(21,23-32) 

 

21,23-28 :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너 사람의 아들아, 바빌론 임금의 칼이

갈 길을 두 개 그려라. 그 둘은 같은 나라에서 나오게 해야 한다.

그리고 표지판을 세우는데, 각 성읍으로 향하는 길 어귀에 그것을 세워라.

너는 칼이 암몬인들의 라빠로 갈 길과,

유다와 요새 예루살렘으로 갈 길을 그려라.(21:23-25)”

여기 “칼”은 하느님의 심판을 상징하는데, 하느님은 바빌론을

심판의 도구로 삼아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심판을 “바빌론 왕의 칼”로 묘사한 것이다.

하느님은 예언자에게 땅에 지도를 그리고 그곳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과

라빠(암몬의 수도)로 가는 길을 그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갈림길에다가 각각으로 향하는 표지판을 두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예루살렘이 어떻게 바빌론에게 침략당할 것인지

그 과정을 보다 더 실감 있게 말씀해 주시고자 하신 것이다.

여기 특별히 암몬을 언급하신 것은 암몬도 예루살렘처럼

처음에는 바빌론에게 복종했으나(열왕하24:2), 후에 주변 나라들과

함께 바빌론에 대항하였기 때문이다(예레27:3).

물론 암몬도 이로 인하여 결국은 바빌론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21,29-32 :

하느님은 바빌론의 손을 빌어 범죄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러므로 바빌론의 침략은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예언해 주신

말씀의 성취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범죄 사실을 입증한 사건인 것이다.

30절, “이스라엘 왕”이란 시드기야를 말한다.

하느님은 그를 “사악하고 마지막 벌을 받을 자”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그가 다른 사람보다 더 악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한 나라의 왕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으로

백성들을 멸망으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특별히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시드기야에게 마땅히 행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것은 그가 애굽을 의지하지 않고 바빌론에게 항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고

바빌론에게 대항했다. 이로 인하여 그 자신이 멸망했을 뿐만 아니라 유다가 바빌론에게 멸망당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한 개인으로서 범죄한 것과 한 지도자로서 범죄한 것의 결과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말해 준다.

지도자의 행위는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지도력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도자의 영향력이

클수록 책임도 더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31-32절은 시드기야의 범죄로 개인적으로 당하게 될 재난을 말하고 있다. 

 

암몬인들을 치는 칼(21,33-37) 

 

하느님께서 암몬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여기 “칼이다. 마구 죽이려고 빼어 든 칼이다. 전멸시키라고,

번개 치듯 내리치라고 날을 세운 칼이다.”라는 말씀은

암몬을 심판하시기 위한 하느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하느님의 심판은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특별히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복술가들이 암몬의 평안을 위하여

예언해 준 것도 하느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말씀 외에 어떤 것도

우리의 보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35절,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네가 창조된 곳,

너의 고향 땅에서 내가 너를 심판하겠다.”는

하느님께서 그들을 멸하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칼을 뽑아도 소용이 없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여기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라는 말은

그들의 어떤 노력으로도 재난을 피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메시지다.

그들은 하느님의 심판 아래 마치 불의 섶 같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느님의 심판이야 말로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임을 말해 주고

또한 우리에게 가장 두려운 것임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