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에제키엘서 공부

에제키엘서 16장 공부 : 예루살렘의 역사: 부정한 아내의 역사

윤 베드로 2017. 10. 14. 07:36

예루살렘의 역사: 부정한 아내의 역사(16,1-63)


16,1-14 :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의 근본과 어릴 적의 모습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다.

예루살렘은 처음부터 다른 곳보다 특별해서 구별 된 곳이 아니고

오직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구별된 곳이다.

3절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너는 가나안 땅 출신이다. 너의 아버지는

아모리 남자고 너의 어머니는 히타이트 여자”라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예루살렘은 이방인이 살고 있던 한 성에 불과 했고

또한 단일민족이 아닌 多宗族이 함께 通婚하며 살던 곳이었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근본을 살펴본다면 예루살렘은 다른 나라나

또는 다른 성읍에 비하여 구별될 만한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오히려 주목받지 못하던 곳이었다.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예루살렘을 택하실 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의인화하여 말씀하셨다. “네가 태어난 일을 말하자면,

네가 나던 날, 아무도 네 탯줄을 잘라 주지 않고,

물로 네 몸을 깨끗이 씻어 주지 않았으며, 아무도 네 몸을

소금으로 문질러 주지 않고 포대기로 싸 주지 않았다.

너를 애처롭게 보아서, 동정심으로 이런 일을 하나라도 해 주는

이가 없었다. 오히려 네가 나던 날,

너를 싫어하여 들판에 던져 버렸다.(16:4-5)”

하느님은 계속하여 예루살렘을 은혜로 택하신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때에 내가 네 곁을 지나가다가, 피투성이로 버둥거리는 너를 보았다.

그래서 내가 피투성이로 누워 있는 너에게 ′살아남아라!′하고 말하였다.

그러고 나서 너를 들의 풀처럼 자라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서 꽃다운 나이에 이르렀다.

젖가슴은 또렷이 드러나고 털도 다 자랐다.

그러나 너는 아직도 벌거벗은 알몸뚱이였다.(16:6-7)”

하느님은 이런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기시고 거두어 주셨다.

이처럼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하여 거리에 버려진 어린아이와 같았던

예루살렘이 왕후와 같은 화려함을 지니게 되어

이웃의 여러 나라에 그 명성이 퍼지게 되었다(16:8-14).


16,15-22 :

이 말씀은 하느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누리게 된 풍요함을

탐욕을 채우는 일에 사용함으로

자신을 세속화의 늪에 빠지게 했다는 의미다.

다음의 구절들은 이것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또 너는 내가 준 금은 패물들을 가져다가, 남자 형상들을 만들어

놓고 그것들과 불륜을 저질렀다.

너의 수놓은 옷들을 가져다가 그것들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을 그것들 앞에 가져다 놓았다.

내가 너에게 준 양식, 곧 내가 너에게 먹으라고 준 고운 곡식 가루와

기름과 꿀을 그것들 앞에 향기로운 제물로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너는 네가 나에게 낳아 준 아들딸들을 데려다가,

그것들에게 양식으로 바쳤다.

너의 그 탕녀 짓만으로는 모자랐단 말이냐?(16:17-20)”

이상과 같은 말씀들은 예루살렘이 하느님께서 주신 축복들로 인하여

하느님을 더욱 영화롭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 축복들을 우상을 숭배하고

그것들에게 제사하는데 사용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행위는 은혜에 대한 배반이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축복해 줄수록 하느님을 가까이 하려고 하기 보다는

세상과 가까워지려고 하였다.

그들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백성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오히려 세상과

구별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들과 같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세속화의 늪에 빠지게 된 것이다.


16,23-29 :

여기 “不倫”이란 예루살렘의 세속화를 말하고 있다(16:26).

그리고 “너를 위하여 누각을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다” 

           “이웃 나라 애굽 사람과도 불륜을 저질렀다” 등과 같은 표현들은

하느님의 백성들이 세속화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16:24-26).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부르심에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할

하느님의 백성들이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스스로를 높이려 하고 

          소유 지향적으로 사는 것이 바로 세속화된 삶이다.

지도자들이 입으로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것 같이 행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명예를 구하고 富를 구한다.

그래서 그들은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말하지만

행동은 언제나 자신들의 영광을 구한다.

예루살렘의 불륜으로 인하여 하느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심으로

일용 양식을 줄이고 블레셋에게 그들을 붙이실 것을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은 더 많은 소유를 얻기 위하여 불륜하였는데

오히려 그들이 얻게 된 결과는 일용할 양식조차 부족하게 된 것이고

또한 그들이 다른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받아 자유를 잃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지하여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앗시리아와 行淫하고 그것도 부족하여

갈대아 사람들과 행음하였다.


16,30-34 :

이 말씀은 예루살렘이 하느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을 때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지니고 있는 모든 영광스러움을 잃어버리고 

           창녀보다도 못한 천한 자로 전락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들이 창녀보다도 더 못한 것은 창녀는 돈을 받지만

그들은 돈을 주고 행음하는 자들을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떠난 그들의 비참함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창녀들은 몸값을 받는 법이다.

그러나 너는 네 모든 정부에게 놀음차를 주었다.

불륜을 저지르는 너에게로 사방에서 모여들도록

그들에게 선물을 주었다.

이렇게 너는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다른 여자들과는 반대로 하였다.

누가 정을 통하려고 너를 따라온 것도 아니고,

네가 해웃값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웃값을 내주니,

너는 반대로 한 것이다.(16:33,34)”

즉 그들이 돈을 주어도 그들에게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백성들이 하느님을 떠났을 때,

이것은 마치 맛을 잃은 소금처럼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밖에 버려져서 사람들에게 밟힐 뿐이다.


16,35-43 :

하느님께서 탕녀와 같은 예루살렘에게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말씀은 그들의 음행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었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시기 전

그들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심으로

그들이 심판을 받을지라도 핑계될 수 없도록 하셨다.

36절은 그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네가 정부들과 너의 그 모든 역겨운 우상과 불륜을 저지르면서

치부를 보이고 알몸을 드러내었으므로,

그리고 그것들에게 스스로 바친 네 자식들의 피 때문에,”

하느님은 자기 백성들을 통하여 세상에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그런데 이와 같은 영광스런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이

오히려 세상에 부끄러움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이 범한 죄들 가운데 다른 하나는 자기 자녀의 피를

우상에게 바친 것이다.

예루살렘이 자기 자녀라고 생각하고 우상에게 바친 자들도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기 자녀를 우상에게 바쳤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위임해 주신 자녀를 임의로 우상에게 희생으로

내어 준 것이 됨으로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 행위이다.

예루살렘은 이와 같은 죄를 범했으므로 하느님 앞에서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하여 핑계될 수 없다.

하느님은 범죄한 이들을 심판하시되 이들이 사랑하던 자들로부터

대적함을 받게 하실 것이다(16:37).

이처럼 사랑하던 자들로부터 대적함을 받는 것을 배반이라고 한다.

예루살렘이 하느님을 배반하였으므로 그들 역시 사랑하는 자들로부터

배반을 당할 것이다.

“그들 앞에서 네 알몸을 드러내어, 그들이 그 알몸을 다 보게 하겠다.

나는 간음하고 살인한 여자들을 재판하듯 너를 재판하고,

분노와 질투로 너에게 살인죄의 벌을 내리겠다.(16:37,38)”

이들이 받게 될 또 하나의 심판은 수치다.

그들은 벗은 몸을 드러냄으로 대적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수치스러움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적들로부터 약탈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누각이 헐리겠고 의복이 벗김을 당할 것이며

그들의 집들이 헐리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처럼 혹독하게 심판하시는 것은 이들로 하여금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려 하심이었다(16:41-43).


16.44-52 :

하느님은 유다의 죄악을 북왕국 이스라엘과 하느님의 심판으로 멸망한

소돔 사람들의 죄에 비교하며 그들의 죄를 책망하셨다.

“속담을 짓는 이들은 모두 너를 두고 ′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고 말할 것이다.(16:44)”

여기 “어머니”는 일반적으로 가나안의 족속들, 즉 죄를 범하여

하느님께 쫓겨난 가나안 족속들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본문은 이 땅의 원주민이었던 그들이 범죄로 인하여

이곳에서 쫓겨난 것처럼(창15:16), 유다도 죄로 인하여

그들과 동일하게 하느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게 될 것을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햇사람과 아모리 사람과는

관계없는 자들이다.

그러나 본문은 그들을 헷사람과 아모리 사람 그리고 사마리아와

소돔과 관련하여 말하고 있다(16:45-47).

이것은 비유로서 이스라엘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하느님께 선택받은

거룩한 백성이지만 그들의 행동이 마치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과 같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유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은

그들의 부패함이 이방인들보다 더 하다는 것이다(16:48-51).


16,53-59 :

예루살렘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하여 소돔과 사마리아처럼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부끄러움을 당할 때 소돔과 사마리아는

그들로 인하여 위로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금까지 예루살렘으로부터 이방인으로 취급되며

박해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예루살렘도 자신들이 범했던 죄보다 더 큰 죄를 범함으로

하느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더 이상 예루살렘으로부터 무시를 당하거나

멸시를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자신들이 예루살렘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부패할 때

세상이 기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소돔과 사마리아와 유다를

회복시켜 주실 것을 말씀하셨다.

이렇게 하심은 하느님께서 유다와의 계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여기 소돔과 사마리아도 회복시키신다는 것은 유다로 인하여

하느님을 알게 될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16:55-59).


16,60-63 :

여기 하느님께서 계약을 기억한다는 것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는 의미다.

이것은 비록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이 범죄로 인하여 그들을 심판하실지라도 

        이와 같은 심판의 궁극적인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죄로부터 떠나

회복의 은혜를 누리도록 해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하느님께서 유다에게 회복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

사마리아와 소돔은 유다의 영향 아래 있을 것이다.

그때 유다는 이와 같은 일들이 자신들의 능력으로 인하여 온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은혜로 인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지은 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으로 베풀어 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깨닫고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무조건적인 은혜를 깨닫는 순간 

          자신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