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에제키엘서 공부

에제키엘서 14장 공부 : 우상 숭배자들을 단죄하시다

윤 베드로 2017. 10. 13. 07:08

우상 숭배자들을 단죄하시다(14,1-11) 


14,1-5 :

세상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소수의 사람들만

하느님과 친밀한 교통을 하며 살고 있다.

그들이 기도할 때 하느님은 응답하시고,

위험에서 도움을 구하면 능하신 손으로 구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하느님은 힘이시며 구원이시며 피할 바위이시다.

그러나 하느님의 백성일지라도 대부분은 기도해도 들으심을 받지 못하고

도움을 구해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

두 종류 사람들 가운데 존재하는 차이는 무엇일까?

본문은 이스라엘의 두 원로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자

예언자 에제키엘을 찾아왔음을 말해 주고 있다.

원로들은 바빌론에서도 예루살렘에서와 마찬가지로 백성들의 지도자였다.

그들이 예언자를 찾아온 것은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포로로 잡혀 있는

유다의 장래에 대하여 하느님께 묻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백성의 지도자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예언자를 찾아갔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이겠는가?

하느님은 무엇보다도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을 기뻐하신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예언자에게 그들을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3절은 그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의 아들아, 이 사람들은 자기 우상들을 마음에 품고,

자기들을 죄에 빠뜨리는 걸림돌을 제 앞에다 모셔 놓은 자들이다.

내가 어찌 이러한 자들의 문의를 받을 수가 있겠느냐?

하느님은 말씀을 들으려고 온 원로들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우상들을 보셨다.

이것은 원로들이 사람들의 눈에는 경건하게 보일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위선자로 보였을 뿐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들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14,6-11 :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우상으로부터 떠날 것을 권고하셨다.

만일 이 권고를 듣지 않고 계속 우상을 숭배함으로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은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든지 이스라엘 가운데 사는 외국인이든지

상관하지 않고 모두 심판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심판하실 때 그들은 놀라움과 속담거리가 될 것이고

또한 백성들로부터 끊어질 것인데 이것은 우상숭배로 인하여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며

또한 하느님의 약속으로부터 제외될 것이라는 의미다.

하느님은 거짓 영에 유혹 받은 예언자를 심판하실 것이고

또한 그들의 거짓 예언에 미혹된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14:9-11).

이것은 미혹하는 자들이나 미혹을 받는 자들 모두가

미혹에 대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느님의 백성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여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유혹에 빠질 수 없다는 것을 전제한 말이다.

다르게 말한다면 하느님의 백성이 거짓에 미혹 된다는 것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하느님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정직한 마음을 상실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말씀에 따라 행하고자 하는 정직한 마음을

상실하게 하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탐욕이다.

하느님의 백성들이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순간

거짓에 미혹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미혹된 자들은 그것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미혹하는 자나 또는 미혹을 받는 자 모두에게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처럼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을 본받아

또 다시 스스로 거짓을 따르는 일이 없도록 하려 하심이다.

그들이 거짓에 미혹 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를 때

비로소 하느님은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막을 수 없는 하느님의 심판(14,12-23) 

 

14,12-20 :

여기 ‘어떤 나라가 배신하여 나에게 죄를 지었기 때문(14:13)’에서

어떤 나라는 예루살렘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때 그곳에 노아, 다니엘, 욥과 같은

의로운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그들이 그 심판을 막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義로 인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들의 의가 다른 사람까지 구원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모든 사람은 스스로 행한 일에 대하여

하느님 앞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에 의로운 자들이 있는 것은 축복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의로움이 그 시대를 각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노아가 없었다면 그 시대 사람들이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겠는가?

노아시대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서 멸망한 것이 아니고 불순종해서 망했다.

마찬가지로 바빌론에 다니엘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느님을 알 수 있었다(다니6:26-27).

따라서 바빌론 사람들도 하느님을 몰랐기 때문에 망한 것이 아니고

알았지만 믿지 않았기 때문에 망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시대의 사람들 가운데는 평생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축복이다. 

  그러므로 한 공동체에 노아나 또는 다니엘, 욥과 같은 의인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축복이 된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만으로 이 축복이 자신의 것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축복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들만

누릴 수 있는 축복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언제 어느 곳에서든지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이다.

다만 이 축복을 자신의 것으로 누릴 수 있느냐의 문제는

들은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의하여 결정된다.

하느님은 이와 같은 사실을 강조하시고 확인해 주시기 위하여

동일한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하여 말씀해 주셨다(14:12-20).


14,21-23 :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것을 직접 언급하셨다.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때 네가지 수단을 통하여 심판하실 것이다.

그것들은 칼과 기근과 사나운 짐승과 흑사병이다.

구약에서 이와 같은 용어로 말씀하시는 것은

그 심판의 철저함을 말씀하시기 위함이다.

우리는 동일한 예를 요엘서에서 찾을 수 있다.(요엘1:4).

이처럼 심판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또 다른 심판을 통하여 멸망 받게 되고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은 또 다른 심판에서 멸망 받게 된다.

이처럼 철저한 하느님의 진노하심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섭리 가운데 자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들 가운데 얼마를 남겨 두신다.

실례로서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때 얼마를 살려 주심으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도록 하셨는데

이것은 이미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로 하여금

예루살렘의 멸망이 끝까지 권고의 말씀을 듣지 않음으로 인한

것임을 증거 하도록 하려 하심이었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예루살렘에 한 모든 일이

공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