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신명기 공부

신명기 23장 공부 : 이스라엘의 회중에 들 수 없는 사람들

윤 베드로 2017. 10. 3. 07:19


이스라엘의 회중에 들 수 없는 사람들(23,2-9) 


본문은 이스라엘 가운데 주님의 집회에 들어 올 수 없는 자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집회에 들어오지 못하는 자들은

“고환이 상한 자나 음랑이 잘린 자,” “私生兒,”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이고

한시적으로 집회에 들어올 수 없는 자들은 에돔과 애굽인들이다.

 “고환이 상한 자”나 “음랑이 잘린 자”는 이교도의 풍습에 따라서

“고의로 거세한 자”를 의미하는데

대부분은 우상숭배와 관련 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고대 근동의 여러 종교들 가운데 이런 의식이 있었다.

여기 사생아란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결혼 법에 따르지 않고 낳은 아이들을 말한다.

모압과 암몬 사람들도 집회에 들어올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영접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이스라엘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회에 들어오는 일을 한시적으로만 금지당한 자들도 있다.

그들은 에돔과 애굽 사람들이다.

여기 말하고 있는 에돔 사람과 애굽 사람은 이스라엘에 사는 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삼대 후부터는 이스라엘 집회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에돔은 혈육이기 때문이고

애굽은 그 땅에 이스라엘을 허용해 주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에돔과 애굽이 이스라엘을 외면했지만

(에돔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여정 중에 그 땅을 통과하기를 요청했을 때 거절했고 애굽은 그들을 노예로 삼음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이들이 집회에 들어오는 것을

한시적으로만 금한 것은 혈육의 관계를 소중히 하고,

받은 은혜를 잊지 않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으로 인한 것이다. 

 

진영의 청결에 관한 규정(23,10-15) 

 

전쟁에 나갈 병사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지킴으로

스스로를 거룩하게 해야 했다.

하나는 악한 일을 조심하는 것이었고,

다음은 밤에 夢泄함으로 부정하게 되었을 때

규정에 따라 진영 밖으로 나가고 머물러 있다가

해 질 때에 목욕을 하고 해가 진후에 진영에 들어와야 했고,

마지막으로 지켜야 할 또 다른 하나는 진영 밖에 변소를 마련하여 진영 안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이 이처럼 스스로를 거룩하게 해야 했던 것은

하느님께서 자신들의 진영 중에 계시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느님은 거룩하시다. 그러므로 거룩한 곳만 계실 수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전쟁 중에 자신들과 함께 계시며

자신들을 대신하여 대적과 싸우시도록 해 드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를 거룩하게 해야 했던 것이다. 

 

피신해 온 종에 관한 규정(23,16-17)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여기 도망쳐 온 종은

다른 나라에서 이스라엘로 도망쳐 온 종일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은 이스라엘에게 종들의 학대를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의 여러 나라들 가운데 지켜졌던 법은 이들을 붙잡아

본래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런 자들에게

거쳐할 곳을 마련해 주어 그 땅에서 살도록 하라고 명하신 것은 이스라엘도 전에는 노예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였으나 하느님의 은혜로

그곳을 탈출하여 자유민이 되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누구보다도 종의 고통을 잘 알고 있는 민족이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애굽의 종됨을 기억하고

자기 민족 중에 누구든지 영구히 종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레위25:42,55),

주인의 학대로 인하여 도망쳐 나온 종들을 불쌍히 여김으로

그들을 주인에게 돌려보내지 말고 오히려 거처를 마련하여

자유롭게 해 주도록 말씀하신 것이다.

즉 이스라엘은 애굽의 종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주인의 압제를 이기지 못하여 도망쳐 나온 종을 또 다시 압제해서는 안 되었다. 

 

신전 매음에 관한 규정(23,18-19) 

 

하느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신전창녀와 신전남창을 두지 말 것을 말씀하셨고 

          그들이 번 돈은 서원하는 일에 사용할 수 없고

또한 하느님께 바칠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어쩌면 여기 신전창녀와 신전남창은 신전에서 일하는 매춘부였을 것이다.

가나안 신전에서 드리는 종교 의식은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었으므로

신전의 사제들이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으로서 性관계를 가졌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이런 일들을 금하신 것은

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와 같은 우상숭배에

유혹 되지 않도록 경고함이었을 것이다. 

 

이자에 관한 규정(23,20-21) 

 

이스라엘은 형제에게 무엇을 꾸어주었을 때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에게 무엇을 꾸어주었을 때,

그에게 이자를 요구한다면 그는 더욱 가난해질 것이고

이런 일이 거듭 될 때 가난한 사람은 가난으로부터 회복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자에게 이자를 요구하는 것은

그를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 것으로서

이것은 형제에게 행해야 할 합당한 일이 아니다.

놀라운 사실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하신 모든 법은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들을 세워주고 그들로 하여금 회복할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랑의 정신에 비춰볼 때 가난한 형제에게 이자를 요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에게 꾸어주었을 때

그들에게서 이자를 받는 것은 허용하셨다.


서원에 관한 규정(23,22-24)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서원한 것을 속히 갚도록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서원한 것을 반드시 받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보다 서원하지 않는 것이 합당하다.

서원하고 갚지 않는 것은 하느님께 죄가 된다.

따라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너희 입으로 하느님께 스스로 서원한 대로,

너희 입에서 나온 것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남의 포도나 곡식에 관한 규정(23,25-26) 

 

굶주림은 생명과 관계된 일이고 또한 모든 삶의 기회와 관계된 일이다.

즉 굶주림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을 위기에 있다면

그에게 기회가 주어져도 그 기회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굶주림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은 하느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다.

따라서 세상에 어떤 사람도 이 권리를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굶주린 자는 다른 사람의 밭에 가서 곡식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은 다른 사람의 밭이므로

하느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주신 권리임으로

그 밭에서 생존을 위한 기본권만 누릴 수 있다.

이것은 그 밭으로부터 어떤 것도 가지고 가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포도밭에 들어가서 배불리 먹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그릇에 담아서는 안 되고

밭에 들어가서 곡식을 먹을 수는 있지만 그 곡식에 낫을 대서는 안 된다.

즉 굶주림을 해결하여 힘을 얻었으면 삶의 기회를 찾으라는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