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신명기 공부

신명기 25장 공부 : 후손에 관한 규정

윤 베드로 2017. 10. 4. 19:12


판관이 지켜야 하는 공정(25,1-3) 


하느님의 백성들 가운데서도 “분쟁”이 있을 수 있다.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생겨서 재판받으러 나아가면,

판관들은 그들을 재판하여 옳은 이에게는 무죄를 선언하고,

그른 자에게는 유죄를 선언해야 한다.(25:1)”

하느님은 자기 백성들 가운데 발생하는 시비를 가리기 위하여

재판 제도를 세우도록 말씀하시고 또한 재판을 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을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공정성이다.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면, 판관은 그를 자기 앞에 엎드리게 한 다음,

그의 잘못에 해당하는 대 수만큼 매질하게 해야 한다.(25:2)”

여기 笞刑이란 매로 사람을 치는 형벌을 말한다.

하느님은 재판장에게 이와 같은 태형을 집행할 때

지켜야 할 두 가지 사실을 말씀해 주셨다.

하나는 형을 집행할 때 재판장이 입회해야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원칙은 사십대를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사십대 이상의 매는 건강과 생명에 위험을 주었다.

그러므로 사십대 이상의 매를 친다는 것은

그를 비인간적으로 취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작하는 소에 관한 규정(25,4) 

 

이 말씀은 수고하는 자는 마땅히 수고의 값을 받아야한다는 의미로서

신구약성경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다.

여기 “타작 일하는 소”란 근동의 추수 장면을 연상시켜 주는 말이다.

그들은 탈곡의 한 방법으로서 멍에를 멘 소들로 하여금 바닥에 깔린

곡식들을 밟고 지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이리 저리로 몰았다.

그러므로 “타작 일하는 소”란 일꾼을 상징한다.

따라서 “타작 일을 하는 소에게 부리망을 씌워서는 안 된다.”는 말은

일꾼에게는 그가 수고한 만큼 마땅히 삯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의 수고로 인하여 유익을 받는 사람은

그 열매를 수고한 사람과 함께 나누라는 의미다.


후손에 관한 규정(25,5-10) 

 

결혼한 형제가 자식이 없이 죽었을 때 그의 代를 이어주기 위하여

형제 중 하나가 죽은 형제의 미망인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주는 것을 수혼(嫂婚)이라고 한다.

이처럼 형제의 미망인과 결혼한 사람이 아들을 낳았을 때,

첫 아들을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해 줌으로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도록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스라엘 가운데 대를 잇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말해 주고 있다.

하느님은 인간을 포함하여 생명을 가진 모든 피조물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축복해 주셨고

또한 하느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에도

그를 통하여 한 민족을 이루실 것을 말씀해 주셨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스라엘에서 대를 이어간다는 것 자체가

하느님의 축복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말해 주고

반대로 대가 끊어진다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으로부터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자기 형제의 아내를 맞아들이기를

원하지 않으면…(25:7-10)” 라는 말은

형제가 죽은 형제의 미망인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을 때

미망인은 성읍의 원로들에게 그를 고소할 수 있었다.

그때 원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형제에 대한 의무를 하도록 권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듣지 않을 때, 미망인은 원로들 앞에서 의무를

하지 않는 그 형제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여기 “신을 벗긴다”는 것은 그가 마땅히 차지할 수 있는 지위와 재산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형제에 대한 의무를 하지 않는 자는 얼굴에 침 뱉음을 당하였고

또한 이스라엘 중에서 “신 벗기운 자의 집”으로 불림으로 수치를 당했다.


싸울 때에 금지된 행동(25,11-12) 

 

수혼 제도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제도라면 남자의 음낭을 보호하려는 것도

동일한 목적을 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여인의 행위는 자기 남편을 보호하기 위한 정당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가 다른 사람의 생산능력을 손상시킴으로 그 사람의 대를

끊어지게 한다면 이것 역시 용서 받을 수 없는 죄가 되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법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법이 모든 법보다 上位法에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도적질하지 말라”는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린 사람이 다른 사람의

밭에 들어가서 배를 채우는 것을 죄로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권리로 인정해 주었고(신명23:24,25),

“간음하지 말라” 또는 “근친상간하지 말라”는 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제가 자식을 두지 못하고 죽었을 때 수혼을 허락하였고,

그리고 이웃을 치는 행위는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방어의

수단으로서 여인이 남편을 치는 자의 음낭을 잡았을지라도

오히려 여인의 손을 자르라는 중형을 명한 것도

모두 생명과 관계된 상위법에 따른 것 예라고 할 수 있다.


도량형에 관한 규정(25,13-16) 

 

하느님의 백성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축복으로 이익을 얻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백성이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그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저울추나 또는 되를 둘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확실한 한 가지 사실은 우리의 경제 활동을 포함한

모든 수고의 목적은 이웃을 위한 섬김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상거래에서 공정한 저울추와 공정한 되를 사용하는 것은

이웃에 대한 섬김 행위다.

왜냐하면 이를 통하여 경제 정의가 이루어져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경제적인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말렉인들을 치라는 명령(25,17-19) 

 

약탈을 일삼는 아말렉의 행위는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신앙적인 행위였고, 수고의 목적이 이웃을 섬기는 것이라는

하느님의 뜻에 반하는 행위다.

즉 그들의 행위는 다른 사람의 것을 탈취하여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도적질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세상은 불행해 진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늘 아래에서 아말렉인들에 대한 흔적조차

없애 버려야 한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