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계명 준수(2,3-11)
․2,3-11에서는 : 영지주의자들의 윤리적 오류를 나무란다.
= 앎 다르고 삶 다른 知行 불일치를 탓한다.
⇒사실 그들은 : “하느님을 알고 있다”(4절),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다”(6절),
“빛 속에 있다”(9절)고 뽐내면서도
하느님의 계명과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즉, 예수님처럼 살지 않았고(6절),
형제애를 실천하지 않았다(9-11절).
․새로운 계명이란?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3,34-35)고 명령하셨는데,
이웃 사랑의 계명은 :
①레위기 19,18절("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에 이미 쓰여 있고,
②그런가 하면 석가는 자비를 가르쳤고,
③공자는 仁德을 강조했는데,
⇒이는 표현만 바뀌었을 뿐
성서의 이웃 사랑과 내용상으로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럼 예수께서는 왜 이웃 사랑의 계명을 "새 계명"이라고 하셨을까? :
그에 대한 대답은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에 있다.
즉, 예수의 처신을 본받는데 새로운 점이 있다. :
①예수께서 세족례 때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처신을 본받는데(13,1-5),
②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그 헌신을 본받는데(15,12-13) 에서
서로 사랑하는 새로운 모습, 지극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리스도인과 세상(2,12-28)
①12-17절에서는 : 자기 교회 교우들에게 먼저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고 나서 (12-14절),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훈계로 끝맺는다(15-17절).
②전반부(12-14절)에서는 : 교우들을 "어린 자녀들", "아버지들",
"젊은이들"이라고 번갈아 부르면서,
·이미 죄를 용서받았고,
․예수와 하느님을 알았으며,
·악마를 이겼고
·지금도 그러하다고 함으로써(그리스어 과거시제)구원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다.
③15-17에서는 :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한다.
·긍정적 세상관 :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끔찍히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게
요한계 교회의 그리스도론이었다(요한 3,16 ; 1요한 4,9. 14).
이런 그리스도론을 빙자하여
이단자들은 세상과 세상 것들을 사랑했다.
·부정적 세상관 : 세상은 초월적 말씀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더러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다음에도 그분을 배척한 까닭에
예수 역시 세상과 그 지배자 악마를 단죄했다.
그러니 세상 또한 예수와 제자들을 미워하게 마련이다.
⇒이처럼 예수(그리스도인들)와 세상(악마)은 적대관계에 있는 만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게 15-17절의 논지다.
④18-28(反 그리스도 ; 거짓말쟁이) :
이단자의 정체와 참 그리스도인의 정체를 말한다.
․이단자들은 : 요한계 교회에서 생겨나서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다(19절).
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곧 하느님의 아들임을 부인한다(22절).
․참 그리스도인들은 : 기름부음을 받아, 즉 성령을 받아 올바로 안다(20. 27절).
진리의 내용인즉, 교회 초창기부터 익힌 대로(24. 27절)
아버지와 아들을 고백하고 모시는 것이고(23절),
아버지와 아들 안에 머무르는 것이다(24. 27. 28절).
※영지주의 란? :
이 사상은 그리스도교보다 훨씬 이전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개선이후 꽃피기 시작했던
헬레니즘의 문화에 따라 동방사상은 서로 뒤섞이게 된다.
그리스 철학에 기원을 둔 이 사상은 이제 동방종교의 이원론을 흡수하여
하느님과 사상, 영과 육, 선과 악 등을 대결된 입장에서
독특한 구원론과 불사론을 펼치고 있다.
이 사상은 종교 및 철학의 복합체계라고 정의하는 것이 가장 알맞는 표현이다.
⇒사실 新 플라톤 사상에서는 신과 인간의 중개사상을,
신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는 자연 신비사상을,
신 스토아 학파에서는 개인의 가치와 윤리성의 의미 등을 발췌하여
그 이론적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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