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소예언서 공부

즈가리야서 12장 : 예루살렘과 유다의 구원과 영화

윤 베드로 2017. 7. 26. 07:52

예루살렘과 유다의 구원과 영화(12,1-8)

 

*12장부터 14장까지는 즈가리야서의 제2부, 두 번째 주제에 해당한다.

즈가리야는 여기에서 장차 임할 주의 날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다.

특별히 12장은 열국이 예루살렘과 유다를 공격할 것이지만 오히려

그들은 이 전쟁으로 인하여 멸망할 것임을 말하고 있다(12:1-9).

그리고 하느님은 다윗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그들 가운데 영적 각성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다(12:10-14).

 

12,1-3 :

1절에서 예언자는 자신을 통하여 예언된 말씀이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말하고,

그 하느님은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전능하시며 만유의 주되신 하느님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예언자가 이것을 말한 것은 자신을 통하여 선포된 예언의 말씀이

얼마나 권위 있는 말씀인지 말해 주기위한 것이다.

예언자를 통하여 선포되는 말씀은 하느님께로부터 임한 말씀으로서 그 자체가 권위이다.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술잔으로 만들어,

주변의 모든 민족들이 취하여 비틀거리게 하겠다.

예루살렘이 포위 공격을 당할 때에 유다도 그러할 것이다.

그날에 나는 예루살렘을 모든 민족들에게 무거운 돌이 되게 하여,

그것을 들어 올리는 자마다 큰 상처를 입게 하겠다.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예루살렘을 거슬러 모여들 것이다.(2-3)”

하느님은 예루살렘과 유다가 열국으로부터 침략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다.

이처럼 예루살렘이 열국으로부터 침략을 당할지라도 견고하게 될 것은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무거운 돌”이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즉 열국이 예루살렘을 자기 땅으로 옮겨 가려고 할지라도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무거운 돌이 되게 하셨기 때문에 옮겨 갈 수 없을 것이다.

여기 예루살렘을 무거운 돌이 되게 하셨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의 보호자가 되어 주심으로

어떤 나라도 예루살렘을 해할 수 없게 하셨다는 의미다.

이처럼 연약한 자일지라도 하느님께서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면

강한 자도 그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12,4-9 :

본문은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을 무거운 돌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적군을 약하게 하셨다는 의미고(12:4),

유다를 강하게 하셨다는 의미다(12:5).

특별히 하느님은 유다의 지도자들을 나무 가운데 화로 같게 하실 것이며

곡식 단 사이에 횃불 같게 하시므로

그들을 둘러싼 적군들을 모두 타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2:6).

이로 인하여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약한 자들일지라도

그 날에는 다윗 같겠고 다윗의 족속은 하느님 같고

무리 앞에 있는 사자 같을 것이다(12:8-9).

 

'찔려 죽은 이'를 위한 애도(12,9-14)

 

하느님은 다윗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12:10).

이처럼 하느님께서 다윗 집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을 때

그들 가운데 큰 영적 각성이 일어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메시아를 배척한 것이 얼마나 큰 죄였는지 깨닫게 되어

그들 가운데 큰 애통함이 있을 것이다.

“나는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 주민들 위에 은총과 자비를 구하는 영을 부어 주겠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를, 곧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보며,

외아들을 잃고 곡하듯이 그를 위하여 곡하고,

맏아들을 잃고 슬피 울듯이 그를 위하여 슬피 울 것이다.(12:10)”

 

하느님께서 은총을 거두어 가신다면 우리는 죄를 범하고도

자신의 행위가 죄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은총을 거두어 가신다면 우리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조명해 주실 때

비로소 우리는 스스로 죄인됨을 알게 되어 회개하게 된다.

그리고 회개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성령을 보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회개하도록 이끄시는 것은 놀라운 은혜인 것이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도

그것이 죄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성령께서 베드로의 메시지를 통하여

그들의 심령을 각성시켜 주셨을 때 비로소 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큰 죄를 범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도들에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2:37)”라고 물었고

 베드로의 권고에 따라 회개함으로 구원받을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다윗 집에 은총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 주셨을 때

그들 가운데는 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독자와 장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처럼

자신들의 죄를 슬퍼하며 회개 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