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은 예언자 하깨에게 임한 세 번째 말씀이었다.
첫 번째 말씀은 다리오 이년 유월 초하루에 임하였고(1:1),
두 번째 말씀은 같은 해 칠월 이십 일 일에 임하였다(2:1).
여기 두 말씀은 모두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한 말씀이다.
하느님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에게 세 가지 사실을 물으셨다(2:3-4).
하나는 “너희가운데 이집의 옛 영화를 본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느냐?”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은 이 집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이고,
또 다른 하나는 “너희 눈에도 있으나마나 하지 않느냐?”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물으심은 그들이 건축한 성전이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에 비하여 너무 초라하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낙심할까 염려하여 그들을 격려해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하느님은 이처럼 물으신 후에 또 다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즈루빠벨아, 이제 용기를 내어라. 주님의 말씀이다.
여호차닥의 아들 예수아 대사제야 용기를 내어라.
이 땅의 모든 백성아, 용기를 내어라.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일을 하여라.(2:4)”
이 말씀에서 “용기를 내어라.”는 말이 세 번 반복되는데
한 번은 스룹바벨에게 주신 말씀이고
다른 한번은 예수아에게 그리고 마지막은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이처럼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백성 모두가
스스로 용기를 내기를 원하셨다.
그들에게 이와 같은 격려의 말씀이 필요했던 것은 격려만이 시작한 일을
끝까지 완성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성전건축을 다시 시작한 유다에게 격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용기를 내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5-9절에서 하느님은 이스라엘에게 출애굽의 역사를 회상시키시면서
그 때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셨던 것처럼
지금도 함께 해 주실 것을 말씀해 주시며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다.
이미 이스라엘은 성전건축을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들은 바빌론으로부터 귀환한 즉시 성전 건축을 시작했지만
주변 나라들의 위협으로 인하여 건축을 중단하고 15년 동안 방치해 두었다.
이처럼 성전 건축을 계속하지 못하고 중단하게 한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이 두려움 때문에 또 다시 성전건축을
중단하지 않도록 두려워 말라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주님께서 다시 복을 내리시리라(2,10-19)
본문은 하깨에게 내린 세 번째 말씀으로 유다에게 회복을 약속한 말씀이다.
하느님은 유다의 과거를 회상케 하심으로
현재 그들의 변화된 모습을 깨닫도록 하신다.
이것은 그들이 어떤 상태에 있어야 하느님께서 복을 주실 수 있는지
깨닫도록 해 주시기 위함이다.
하느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무조건 축복해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이것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복 받기에
합당한 자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유다는 과거 그들이 행하였던 것처럼
거룩함을 상실하면 복을 받을 수 없다.
하느님께서 하깨를 통하여 제사장들에게 물으셨던 물음은
바로 그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일깨워 주시기 위함이다.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너는 사제들이 어떤 가르침을 내릴지 이렇게 물어보아라.
‘어떤 사람이 봉헌된 고기를 옷자락에 담아 가져가는데,
그 옷자락이 빵이나 삶은 요리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다른 어떤 음식에 닿으면, 그것들도 거룩해집니까?’”
그렇게 하자 사제들은 “아닙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하까이가 다시 “주검에 닿아서 부정하게 된 이가
이 모든 것 가운데 어느 것에라도 닿으면,
그것이 부정하게 됩니까?” 하고 물으니,
사제들이 “부정하게 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2:11-13)”
본문은 레위기6장27-29절과 민수기19:11-13,
그리고 민수기19:11-13에 기록된 제물에 관한 말씀들이다.
하느님은 거룩하신 분으로 부정한 것과 함께 하실 수도 없고
또한 부정한 것을 받으실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부정하기 때문에
하느님은 그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원할지라도 그렇게 하실 수 없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들에게 부정에 관한 율법을 생각하게 하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이 자신을 합당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성전 건축을 중단하여 성전이 황폐하였을 때다.
그때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그들을 바빌론의 포로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예루살렘에 이르게 하신 것은
성전을 건축하도록 해 주시기 위하심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힘써 경작하였으나 거둔 것이 심히 적었다.
이것은 주님께서 그들로부터 복을 거두어 가셨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다.
즉 백성들의 불순종과 땅의 황폐함은 비례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이와 같은 사실을 깨닫는다면
복된 삶을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성전이 황폐했을 때를 돌아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느님은 유다에게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여기 “오늘부터”란 유다가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하느님께 인정받은 날을 의미한다.
주님은 하깨를 통하여 유다에게 “성전을 건축하라”는 말씀을 주셨다.
유다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고
이로부터 한 달이 지난 후 하느님은 유다를 격려하시기 위하여
그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또 다시 약 두 달이 지난 후 하느님은 하깨를 통하여
유다에게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순종하는 자들에게 말씀해 주신다.
이처럼 하느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순종할 때 축복해 주신다.
그러므로 순종은 복된 삶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주님께서 즈루빠벨을 선택하시다(2,20-23)
이는 세 번째 메시지와 같은 날에 행해진 메시지로서,
2개월 전에 전한 두 번째 메시지(2:1-9참조) 가운데
역사적인 큰 변혁들에 대한 말씀으로 인하여
백성들 중에 일어난 불안과 염려를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2:6-7).
“나는 하늘과 땅을 뒤흔들리라. 나는 왕국들의 왕좌를 뒤엎고
민족들의 왕국의 권세를 없애 버리리라.
또 병거와 거기에 탄 자들을 뒤엎으리라.
군마와 기병들은 서로 동료의 칼에 맞아 쓰러지리라.(2:21,22)”
6절의 진동을 더욱 자세히 설명하는 것으로,
역사적 변혁이 전쟁을 통하여 일어날 것을 말하고 있다.
여기 “서로 동료의 칼에 맞아 쓰러지리라”는 말은
전쟁 가운데 殺傷이 일어날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환란의 날에도 하느님은 순종하는 자들을 지켜 주실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을 경외하며 사는 길이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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