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예언서 공부

예언자 이야기

윤 베드로 2014. 4. 16. 15:40

★예언자 이야기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을 전후로 여기저기서 출현한 것이 예언자였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당신의 마음과 뜻을 전하시며

                    백성에게 호소하셨다.

1. 예언자

 

1). 뛰어 난 감성

①예언자들에게는 : 출신이나 부르심의 양상이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들은 희한하게도 感性과 直觀이 아주 특출 나서,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똑 같이 느낀다는 것이다.

⇒예언자들은 바로 이 예민한 감성으로 백성과 하느님 사이를 중재한다.

 

②예언자들에게는 : 백성이 고통을 받으면 그 고통이 자신의 고통으로

            느껴진다. 그러니 예언이 적당히 될 리 없다.

⇒예언서에는 : “피가 울부짖는다”, “뼈가 떨린다”,

                    “뼈가 으스러진다”는 등의 표현들이 자주 나온다.

    例 : ․“유다가 슬피 울고 그 성읍들이 쇠약해져 간다.

             그들이 땅에 쓰러져 통곡하고 예루살렘이 울부짖는

                        소리가 높이 오른다.”(예레 14,2).

           ․“내 심장이 내 안에서 터지고 내 모든 뼈가 떨린다.

             나는 술 취한 사람처럼 술에 전 인간처럼 되었으니

                    이는 주님 때문이요 그분의 거룩한 말씀 때문이다.”(예레 23,9)

          ․“내 살과 내 살갗을 닳아 없어지게 하시고

               내 뼈를 부수시며… ” (애가 3,4-5).

 

③또 예언자들은 : 백성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할 때에도

        이처럼 뛰어난 감성으로 하느님 심정을 그대로 느끼면서 전한다.

 

④실제로 예언의 중심부에는 : 느낌이 있다.

그러니까 단순한 말씀은 나중에 표현되는 것이고,

      정확하게는 표현되지 않는 일체감이 먼저인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예언이 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백성들을 각별하게 사랑하신 것도

         이처럼 백성들의 속사정을 다 느끼고 계시기 때문이었다.

 

2).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의 구별

일반적으로 시대마다 항상 참 예언자가 있었고, 거짓 예언자가 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교회 내에도 참이 있고 거짓이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를

                     구별하는 기준이 몇 가지 있다.

①말씀이 성취되어야 참 예언자다.

“예언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였는데도 그 말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언자가 제멋대로 말한 것이므로,

                 너희는 그를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신명 18,22).

 

야훼 예언자 엘리야와 바알 예언자 사이에서

            “누가 참 예언자인가?” 하는 물음이 생겼을 때,

             엘리야 예언자가 참 예언자로 드러났다.

․“몇 해 동안 가뭄이 온다”(1열왕 17,1) 했더니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 말은 말씀이 성취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사야서에 보면, 야훼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를 한 다음에야

         다시 돌아간다. :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②야훼의 영에게서 주어진 예언을 하는 이가 참 예언자다.

“주문을 외우는 자와 혼령이나 혼백을 불러 물어보는 자와

             죽은 자들에게 문의하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짓을 하는 자는 누구나 주님께서 역겨워하신다.”(신명18,11-12).

 

⇒요즘에도 미래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언의 이름으로 온갖 점들이 난무한다.

이는 야훼의 영이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서 얻어내는 미래에 대한 정보는,

       길게 봤을 때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지 못한다.

오히려 게으르게 하고, 요행수를 바라게 하고, 타락하게 만든다.

 

2. 예언의 배경과 특징

 

1). 예언자들의 출현 배경

①예언자들은 바알 신을 숭배하는 문화적 배경에서 나타났다.

그들은 바알 신을 숭배하는 北 Is에서 우르르 나타났다.

 

⇒왜 그랬을까? : 우상숭배 때문에 하느님께서 외적의 침입을

                            자주 허용하셨기 때문이다.

외적이 침입이 많았다는 것은 : 그만큼 임금의 두려움

            커져갔다는 것을 뜻한다.

임금이 자꾸 예언자한테 기대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예언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②또 예언자들은 사회 不義를 배경으로 나타났다.

임금이 부실하면 꼭 일어나는 것이 사회 불의다.

실제 예언자들의 활동 당시, 사회에 불의가 만연했다.

이를 배경으로 예언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2). 예언 말씀의 특징

①예언 말씀은 분명하고 확실하고 구체적이다. :

                       애매 모호한 말씀은 없다.

②예언 말씀은 이스라엘 공동체와 반드시 연관이 있다. :

하느님은 개인적인 예언을 잘하지 않으신다.

물론 하실 때도 있겠지만 이는 그 예언 자체가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시는 것이다.

③예언 말씀은 여러 수사법을 쓴다. :

그래서 우리는 예언의 말씀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

 

④예언자는 상징 행위로 말씀을 전하기도 한다. :

이는 주님께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해괴한 행위를 하도록 명하셨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호세아 예언자는 : 부인이 창녀였다.

하느님은 그를 계속 바람난 여자, 창녀하고 살게 만드신다.

그래서 그가 하느님께 ‘못살겠다’고 한탄하면

          “야 나는 더하다. 너희들이 나한테 하고 있는 게

            이보다 더하다”면서 메시지를 주셨던 것이다.

 

예레미아 예언자는 : 소 멍에를 메고 다녔다.

그래서 사람들이 “아, 왜 그래요?” 그랬더니 그는

         “장차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하는 예언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 뒤 백성들이 막 어둠이나 절망 속에 있을 때

       “땅을 사라”는 예언 메시지를 받고서 고국에 땅을 산다.

          밭을 사들임으로써 희망을 주는 것이다.

 

․이사야 예언자는 : 나체로 스트리킹을 했다.

왜 그랬을까? : 이 행위를 통해 “나중에 이 꼴을 당하리라.”

                        “옷도 벗기고, 결국 입고 싶어도 못 입고,

                          발가벗겨서 쫓겨나는 꼴을 당하리라”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에제키엘은 : 거지 행색을 하고 보따리를 끌고 다녔다.

사람들이 “왜 그러냐”고 묻자,

               장차 “이 꼴을 당하리라”고 말한다.

               결국 그대로 되었다. 바빌론으로 끌려갔지 않은가.

 

3. 예언자의 중심사상 : 결국 예언자는 무엇을 전하려 했던 것일까?

예언자의 중심사상은 :

            크게 보아 ①야훼 신앙, ②사회 정의,

                          ③참된 제사, ④메시아이다.

 

1). 야훼 신앙 : 예언자는 무조건 첫 번째로 야훼 신앙을 가르쳐 준다.

 

①호세아는 : 바알 숭배를 비판하면서 야훼 신앙으로 돌아올 것

                            호소하고(호세2,7-9,15),

②아모스도 : 야훼 공경이 살 길 임을 역설한다(아모 5,24).

③이사야도 : 마찬가지다.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고 은을 저울로 다는 자들

                      그들은 금 세공인을 고용하여 그것들로 神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

                      그들이 그것을 어깨에 올려 메고 가서 제자리에 내려놓으면

                       거기에 선 채로 그것은 움직이지도 못한다.

                       누가 그에게 소리 질러도 대답하지 못하고 그를 곤경에서

                       구해 주지도 못한다.”(이사 46-7).

 

⇒“야훼께로 돌아와라, 야훼께로 돌아와라.”

이 얘기는 옛날 얘기가 아니다.

뉴에이지 영성, 단학, 마음수련, 요가,

               이런 것들 뒤에 숨어 있는 정체가 있다.

옛날로 치면 바로 여기서 얘기하고 있는 바알이다.

 

2). 사회 정의 : 예언자의 두 번째 중심사상은 사회정의.

사회의 불의를 고발하고 사회 정의를 주장하는 것이 예언자들의 메시지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정치적인 타락, 사회 불의를 비판한다.

임금이 문란해지니 신하들이 썩고, 탐관오리가 생기고, 서민착취가 난무한다.

이런 배경에서 예언자는 사회 정의를 외쳤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언을 보자.

“너희는 피로 시온을, 불의로 예루살렘을 세운다.

그 우두머리들은 뇌물을 받아 판결을 내리고 사제들은 값을 받아 가르치며

    예언자들은 돈을 받고 점을 친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주님을

    의지하여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느냐?

    우리에게는 재앙이 닥칠 리 없다.’하고 말한다.”(미카 3,10-11).

 

3). 참된 제사 : 예언자의 세 번째 중심사상은 참된 제사.

 

참된 제사란 어떤 제사인가? :

①아모스서는 : 먼저 잘못된 제사에 대해서 얘기한다.

       "나는 너희의 축제들을 싫어한다. 배척한다.

        너희의 그 거룩한 집회를 반길 수 없다."(아모 5,21).

         = 주일에 정신 없이 모여, 얼빠져 가지고 우리들이 법석거릴 때

                       그거야말로 반갑지 않다는 얘기다.

“너희의 시끄러운 노래를 내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희의 수금 소리도 나는 듣지 못하겠다.” (아모 5,23).

   =마음이 없는 성가,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성가,

               이런 성가를 부르지 말라는 것이다.

 

②그렇다면 참된 제사란?

아모스 예언자는 : “다만 공정을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24)라고 말한다.

= 사회에서 올바로 살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인 것이다.

 

③또 호세아 예언자는 :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라고 한다(호세 6,6).

‘신의’란 :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충실성,

                즉 우리가 말하는 ‘믿음’을 말한다.

‘예지’란 : 공동번역에는 “내(하느님) 마음을 알아다오”라고 번역.

                곧 “예지”는 “내 심정(마음) 좀 알아다오”라는 의미다.

                이렇게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면,

                           우리는 회개하고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삶을 뜯어고치게 된다.

 

⇒주님은 궁극적으로 사랑을 원하신다.

우리에게 “내가 사랑에 목말라 있다.

나를 좀 위로해다오”라고 말씀하신다.

결국 여기에서의 핵심은 주님의 마음을 헤아려,

       주님과 함께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다.

 

④그렇다면 우리가 주님께 사랑을 보여드리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째는 봉헌이다 :

․주님은 : 봉헌하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너는 첫 번째 시간을 나한테 주었느냐?

               가장 알맹이 시간은 다 딴 데 가서 놀고,

               맨날 나에게는 찌끄러기 시간만 준 것 아니냐?

               또 너의 제일 애지중지 하는 거 나한테 주었냐?

               그런 것들은 꿍쳐두고 나한테는 안 가져오지 않았느냐?”

 

․주님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너의 재능을 나는 원한다.

        너의 재능을 나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바쳐라.

        그러면 네가 나를 사랑하는 걸 알겠다.”

 

⇒사람들이 애지중지하는 게 뭐겠는가? : 바로 돈이다.

하지만 주님은 그 돈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드릴 때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

또 봉헌은 돈으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 능력, 달란트 등으로도 봉헌할 수 있다.

 

둘째는 선교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네가 나 사랑하는 거, 내가 뭘 보면 알 수 있겠냐?

내가 사실은 제일 좋아하는 것이 복음을 전하는 거다.

내 자식들이 전부 다 집 나가서 안 돌아오는데,

     그 애들 데려다 주면 나는 제일 기쁘겠다.”

 

⇒결국 “사랑을 추상적으로 얘기하지 마라,

           구체적으로 얘기하라”는 뜻이다.

 

4). 메시아 : 예언자의 네 번째 중심사상은 메시아.

예언자들은 궁극적으로 메시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①메시아에 대한 언급은 가장 먼저 창세기에 등장한다.

창세기에 ‘뱀을 물리치실 분’(3,15)으로 한 여인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 여인의 역할이 감추어져 있다.

 

②그리고 그 유명한 이사야서의 말씀이 나온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

          벌써 여인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③이어 이사야서 49-53장에 ‘고난 받는 야훼의 종’ 이야기가 나온다.

           메시아가 장차 겪게 될 고난을 미리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④다니엘서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이’, 이른바 ‘人子’ 얘기가 나온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다니 7,13-14).

 

⇒이처럼 메시지가 지금 예수님을 향해 선포되고 있다.

결국 예언자들의 선포는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로 모아지고 있다.

물론 이밖에도 메시아에 대한 언급은 수없이 많다.

 

4. 예언자들의 고통

 

1). 예언자는 왜 고통을 받는가? :

예언자는 시대를 거슬러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시대를 거스른다는 것은 : 시대를 앞서는 것을 말한다.

             그 시대의 유행을 따르지 않고 유행 너머

              저편의 것을 얘기하다보니 거스르게 된다.

⇒남들이 “다 잘된다”고 그럴 때, “이러다가 망한다”고 이야기하고,

                남들이 “다 죽겠다”고 하는데

                 “살 길이 있다”라고 얘기하는 게 예언자다.

 

2). 어떤 고통을 받는가?

①비방과 혹평(예레 12,6 ; 에제 2,6-7 ; 호세 9,7).

⇒가족들, 친척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야단맞고,

              “저거 미친놈 아냐?”란 얘기도 듣는다.

②함구령(예레 11,21 ; 36,5).

⇒어떤 권한으로부터, 즉 제도권으로부터

           가택연금도 당하고 함구령도 떨어진다.

③추방(아모 7,12-13) : 아모스 예언자가 추방당한다.

④체포와 고문 : 예레미야는 이런 고통을 숱하게 당한다.

 

3). 누가 박해하는가?

①왕 : 어떤 때는 왕이 직접 시켜서 박해한다.

           예언자들이 자기를 비판하고 정책을 비판하니까 박해한다.

②지도자들 : 예언자들이 그들을 탐관오리들이라고 고발하니까 박해한다.

③사제들 : 자기들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④백성들 : 백성들도 예언자를 싫어한다.

                 친척과 동향인들도 역시 예언자를 못살게 굴었다.

                 망한다는 얘기를 자꾸 하니까 “너 때문에 못 살겠다”,

                               “너 때문에 나도 나가서 욕먹고 다닌다”하며

                                싫어하는 것이다.

 

4). 예언자들의 반응 : 이렇게 박해받을 때 예언자들은 어떻게 했는가?

①여기서 참고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위로가 된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사실 예언자들은 이 말씀대로 처신했다.

 

②도망가는 경우도 있다. 일단 목숨이 위태로울 때는 피신한다.

⇒가서 기도하며 야훼께 매달린다.

           “말하라고 시켜서 했더니 이 꼴이 됐습니다.”

 

③끝까지 진리에 충실하고 번복하지 않는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 기득권에서 아무 것도 못하게 하고

                  가택연금 시키며 괴롭힐 때, 저술활동을 했다.

                  기록을 남기고 밖으로 알려 주었다.

 

 

                                                                                                            <차동엽, 행복코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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