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23장 공부 ; 티로와 시돈에 내릴 심판

윤 베드로 2017. 4. 3. 07:51

티로와 시돈에 내릴 심판(23,1-18)

 

23,1-7 :

띠로는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226㎞ 지점에 있으며

띠로와 쌍둥이 항구처럼 늘 나란히 소개되는 시돈에서는 남쪽으로 40㎞되는 곳에 소재한 항구도시다.

바다 중심에 위치한 띠로는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 소아시아, 애굽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요 무역의 중심거래처였다.

띠로인들은 해상 무역을 잘하여 지중해, 홍해, 대서양, 인도양까지 누비며

장사하여 부유해지자 적들의 침략을 위한 국방을 강화하였고 많은 식민지를 거느렸다.

그러므로 고대 근동 세계에서 바빌론은 제국 세력의 중심지라고 부르고,

띠로는 무역의 중심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우리는 띠로에 관한 경고를 통하여

물질의 획득을 지상 최고의 가치로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 어떤

위험이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장래가 어떻게 되는지 교훈 받는다.

시돈과 시홀 그리고 애굽은 띠로와 무역하는 나라들이었다. 특별히 띠로는 무역의 중심지였다.

그러므로 띠로가 망한 것은 이들에게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자가

아이를 통하여 기대할 수 있는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하느님은 해변의 주민들, 즉 무역을 업으로 삼고 사는 자들에게

더 이상 띠로를 의지하지 말고 다른 곳 즉 다르싯으로 건너갈 것을 권고하고 있다(23:6-7).

이것은 그들이 믿고 있던 띠로의 회복이 불가능함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하여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무역으로 인하여

부를 얻고 이로 인하여 교만하였던 띠로를 조롱하셨다.

 

23,8-12 :

띠로가 당시 여러 나라들 가운데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말해 주고 있다.

띠로는 “면류관을 씌우는 자”였다.

면류관을 씌운다는 것은 왕을 세우는 자라는 의미다.

실제로 띠로는 깃딤, 다르싯, 그리고 키르타고와 같은 식민지들은

띠로에 의존했고, 그 모성에 의하여 임명된 왕들이 다스렸다고 한다.

그러므로 띠로는 교만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띠로의 교만을 심판하실 때

그들의 영광은 하루아침에 모두 무너졌다.

 

여기 “딸 타르시스야 나일 강처럼 네 땅으로 건너가거라.(23:10)”라는 말은

본문 전체의 흐름으로 볼 때(23:6), 띠로를 대신하여

타르시스가 번영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굴레가 벗겨졌다(23:10)”는 말은 띠로는 더 이상 식민지들을 속박할 능력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띠로에 식민지로 있던 모든 나라들은

이제부터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주님께서 바다 위에 손을 펴 열방을 흔드시며

주님께서 가나안에 명을 내려 그 견고한 성을 파괴하셨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학대받던 자들은 자유롭게 되었지만 학대하던 자는 학대받는 자가 되었다.

“너 학대받은 처녀 딸 시돈(23:12)”은 띠로를 말한다.

띠로와 시돈은 서로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 가운데는 띠로와 시돈을 혼돈하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성경에서도 띠로와 시돈은 대부분 함께 언급 되고 있다.

 

23,13-18 :

여기 띠로와 관계된 나라들을 언급하다가

갑자기 바빌론과 앗시리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것은

띠로의 황폐함에 대하여 말해 주기 위함 일 것이다.

즉 앗시리아가 바빌론을 황폐케 한 것처럼 그들은 또한 띠로를 황폐시킬 것이다.

그때 띠로는 궁궐이 헐리고, 모든 것이 폐허가 되어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마치 들짐승이 사는 곳과 같이 황폐할 것이다.

또 다시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통곡하여라, 타르시스의 배들아.(23:14)”고 말씀하신다.

여기 타르시스의 배들은 띠로와 무역 관계에 있는 모든 자들을 의미한다.

이들이 슬퍼해야 하는 것은 무역의 중심지인 띠로를 잃었기 때문이다.

언급한 것처럼 띠로의 황폐함은 무역으로 부를 누리고 있던 그들에게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15-18절에서 하느님은 띠로가 황폐한 날로부터 70년 후에

다시 회복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띠로가 회복 될지라도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치 않고

오히려 이전과 같은 생활로 돌아갈 것이다.

본문에서 띠로를 창녀로 표현했는데 여기 “창녀”는 무역에 대한 상징적 언어다.

무역을 창녀로 묘사한 것은 무역은

마치 창녀처럼 사람들의 매력을 끄는 것이기 때문이다.

띠로가 비록 창녀처럼 음란함을 인하여 이익을 얻을 것이지만

그 얻은 것을 스스로를 위하여 쌓아두지 않고 하느님께 드릴 것을 말하고 있다(1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