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이사야서 공부

이사야서 22장 공부 ; 예루살렘에 대한 책망

윤 베드로 2017. 4. 3. 07:46

예루살렘에 대한 책망(22,1-14)

 

22,1-4 :

‘환시의 계곡’은 예루살렘을 지칭한 말이다.

예언자가 예루살렘을 이렇게 부른 것은 외형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예루살렘은 마치 골짜기 안에든 성읍 같이 보였기 때문에

        예레미야서에서도 예루살렘 백성들을 “골짜기와 평원 바위의 주민”이라고 했다(예레21:13).

그러나 예언자가 예루살렘을 이처럼 부른 것은

            지리적인 이유 때문만이 아니고 그 이상을 의미하고 있다.

예루살렘은 그에게 지리적으로 외부 세계와 단절 되었을 뿐만 아니고

       영적 의미에서 세속과 단절된 곳으로 하느님께서 직접 통치하시는 거룩한 땅이었기 때문이다.

여기 “소음으로 가득 차 법석대는 도성아 희희낙락하는 도시야!”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한 예루살렘 성의 복된 모습을 말해 주고 있다.

소란 또는 떠들던 성이란 적막함과 반대되는 말이다.

구약에서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하여 황폐한 곳을 말할 때에는

                대부분 “적막함”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소란과 떠듦, 즐거움 등은 생기로 넘치는 성읍을 표현하기 위하여

                사용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경외할 때의 예루살렘은 이처럼 생기로 넘쳐 있던 성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성은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하다.

“지붕에 올라감” “죽임” “도망” “결박” 등은 전쟁으로 인한 위급한 상황을 표현한 말들이다.

그러므로 “네가 지붕에 올라감은 어찌함인고 소란하며 떠들던 성,

                 즐거워하던 고을이여”라는 말은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에

                  뜻밖의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하여 놀라움을 표현한 말이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대적들과 싸워보지도 못한 채 무기력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관원들은 도망갔지만 붙잡혀 포로가 되었다.

그들에게는 안전한 장소가 없었다.

그래서 멀리 도망갔지만 결국은 그곳에서도 붙잡혀 결박을 당하게 된 것이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의 패망을 슬퍼하며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돌이켜 나를 보지 말지어다”고 말하고 있다(22:4).

예언자 이사야의 심정은 유다가 죄로 인하여 바빌론에게 멸망하는 것을

            보며 울었던 예레미야와 동일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영적으로 각성된 자들은 언제나 하느님의 백성들이 죄로 인하여

            멸망하는 모습을 볼 때 슬픔을 이기지 못한다.

이들이 이렇게 슬퍼하는 것은 죄로 인하여 멸망하는 자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이들의 부패함과 패망이 하느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22,5-11 : ‘환시의 계곡’

하느님은 유다를 심판하시기 위하여 엘람과 키르를 사용하실 것이다.

엘람과 키르는 모두 앗시리아 내에 있는 나라들로서

             앗시리아 군대를 구성하고 있는 자들이었다.

이들의 침략으로 인한 예루살렘의 모습을‘소란함과 밟힘과 혼란의 날’로 묘사하고 있다.

이 날 예루살렘의 성벽은 무너질 것이고,

         또한 예루살렘에는 사무치는 통곡의 소리가 있을 것이다.

즐거움과 기쁨으로 가득하던 예루살렘이 어찌하여

                이처럼 통곡의 소리로 가득한 곳이 되었는가?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8-11절에서 찾을 수 있다.

“유다의 방어진이 무너졌다. 그날에 너희는 ‘수풀 궁’에 있는 무기들을 찾아내고(8절).”

유다는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었을 때,

            하느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그들이 숨겨놓은 무기고를 의지했다.

“유다의 방어진”은 비밀스런 장소 즉 무기고를 말한다.

또한 그들은 전쟁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하느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성벽을 쌓고, 물과 식량을 준비해 놓았다.

그러므로 유다의 패망은 하느님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넘어진다는 것을 교훈해 준다.

 

22,12-14 :

유다를 넘어지게 한 죄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하느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것을 은혜로 받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통곡하며 회개하라고 명하셨을 때

            오히려 소와 양을 잡고 연회를 베풀며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라고 말함으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무시하였다.

하느님은 이들의 이와 같은 악함에 대하여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14절)”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의 백성은 때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이 기뻐할 때인지 아니면 통곡하며 회개해야 할 때인지 분별하여 사는 것이 경건이다.

 

세브나에게 내릴 심판과 엘야킴의 등용과 파멸(22,15-25)

 

하느님은 유다에 대한 책망을 잠시 멈추시고 “셉나”를 주목하셨다.

셉나는 당시 국고를 맡고 있는 관리였다.

여기 “국고를 맡고 왕궁 맡은 자”라는 말은

          그가 당시 권력자들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그는 유다가 전쟁의 위협 가운데 있었지만 권력을 가진 관리로서

        나라의 장래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고 오직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자였다.

그래서 그는 전쟁의 위협 가운데서도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사후에 자신이 묻힐 묘실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느님은 이와 같은 셉나에게 예언자를 통하여

               “네가 여기에 무슨 권한이 있기에, 네가 여기에 무슨 연고가 있기에

                여기에다 너를 위해 무덤을 팠느냐?(16절)”라고 물으셨다.

이것은 셉나가 자신을 위하여 무덤을 팠을지라도

            결코 그곳에 묻힐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다.

오히려 그는 하느님의 심판으로 관직에서 쫓겨날 것이다.

하느님은 셉나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한 나라에 지도자로 세워 주신 것은

                   그 나라를 하느님의 뜻에 합당하게 세우도록 하심이다.

그래서 그에게 위임해 주신 일을 능히 할 수 있는 권세를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자신에게 위임된 권세를 사욕을 위하여 사용한다면

                작게는 나라를 황폐하게 하지만 크게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게 된다.

                하느님은 이런 자를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느님은 이와 같이 권력을 私有化함으로 유다를 황폐하게 한

            셉나를 단단히 결박하여 광막한 곳에 던져버려서

            그곳에서 죽게 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우리의 소유는 하느님의 허락하시는 동안만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면서까지 소유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범할 수 있는 어리석음 가운데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하느님은 셉나를 쫓아내시고 그를 대신하여 힐기야의 아들 엘리야킴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셨다(22:19-21).

그리고 하느님은 엘리야킴에게 다윗 집의 열쇠를 주시고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자가 없게 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그래서 유다에서 그의 위치는 마치 못이 단단한 곳에 박힘같이 견고케 되어

            그 아버지 집에 영광의 보좌가 될 것이다(22:23).

24절은 엘리야킴이 유다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었는지 말해 주는 말씀이다.

여기 “그의 아버지 집”은 엘리아킴의 집을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유다를 의미하기도 한다.

가정 혹은 나라의 영광이 그에게 달려 있었다는 의미다.

이처럼 한 사람이 하느님의 기뻐하심을 받을 때 그를 통하여

            한 가정 또는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가 영광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김도 하느님을 끝까지 경외하는 일에서는 실패했다.

그래서 하느님은 예언자를 통하여 “그날에 단단한 곳에 박힌 말뚝은

             휘고 꺾여서 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