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공부/열왕기 공부

르하브암의 유다 통치(14,21-31)

윤 베드로 2017. 3. 17. 07:57

르하브암의 유다 통치(14,21-31)

 

여로보암이 북쪽 이스라엘을 통치할 때 남쪽 유다는 르호보암이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십 칠년을 통치했다.

역사는 그의 통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유다도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들이 지은 죄는 자기 조상들이 지은 모든 죄보다 더 커서 주님의 격정을 불러일으켰다.(14,22절).”

르호보암의 시대에 유다는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세웠고, 또한 남색 하는 자가 있었고,

하느님께서 쫓아낸 국민들이 행하던 모든 가증한 일들이 그들 가운데 행해지고 있었다.

르호보암의 시대에 북쪽 이스라엘이 부패했던 것처럼 유다도 부패했다.

그들은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면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우상을 세우고

任意로 절기를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전 예배를

중단케 하고 우상을 숭배하도록 한 것에 비하여

남쪽 유다에서도 동일하게 우상숭배가 극심했지만

그러나 예루살렘의 성전 예배가 중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북쪽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에 비하여 유다가 우상숭배에 빠진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부패에 의존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유다는 영적 회복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지만

북쪽 이스라엘에는 이런 가능성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하느님은 부패한 유다를 심판하기 위하여 애굽의 시삭을 도구로 사용하셨다.

르호보암 제5년에 유다는 애굽의 시삭으로부터 침략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에 의하여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들이 모두 탈취 당했다.

이때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도 모두 빼앗겼다.

그래서 르호보암은 금 방패 대신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대신했다.

또한 이 시대에는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었다.

르호보암이 죽어 그 선조의 묘실에 장사되고 그를 대신하여 그의 아들 아비얌이 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