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 공부/히브리서 공부

충실하고 자비로운 대사제 예수(3,1-5,10)

윤 베드로 2017. 3. 7. 18:17

Ⅲ. 충실하고 자비로운 대사제 예수(3,1-5,10)

 

모세보다 위대하신 예수님(3,1-6)

 

⇒저자는 1장에서 주님을 천사와 비교하였고 2장에서는 인간과 비교하였다.

이렇게 한 것은 주님의 탁월함을 말하고자 함이다.

3장에서는 동일한 목적으로 모세와 비교함으로 주님의 탁월함을 말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유다인들 가운데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천사와 모세에 대한 경외감이나

또는 존경으로 인하여 주님의 구세주 되심을

격하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주님께서 모세보다 우월함에 대하여 두 가지 비유로 말하고 있다.

하나는 집을 지은 자가 그 집보다 존귀한 것처럼

주님께서 모세보다 존귀한 분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세가 하느님의 집에서 종이었다면

주님은 그 집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비유를 통하여 유대인들이 천사들이나 모세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을 깨뜨리고 주님을 바로 볼 수 있도록 생각을 자극시키기 위한 것일 뿐,

둘 사이를 비교하여 다름의 정도를 나타내려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사람도 인간의 언어로서 주님의 탁월성을 완전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만일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왜곡된 주님일 것이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안식(3,7-19)

 

3,7-11 :

이처럼 저자는 그리스도의 존귀함을 말한 후,

“그러므로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를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갖지 마라,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처럼 반항하던 때처럼.”(3,7-8)라고 권고하였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능하신 팔로 애굽의 노예 됨으로부터 해방되어

약속의 땅을 향하였지만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불신앙에 빠짐으로 허락된 축복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진노하심을 샀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의 진노하심으로 광야에서 죽었다(3:17).

하느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인도해 주시기 위하여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늘날도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해 주신다.

이처럼 말씀해 주실 때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그 말씀을 거역한다면

그들 역시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범했던 동일한 죄를 범할 것이다.

죄를 범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던 것처럼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도

순종치 않으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과거를 회상시켜 줌으로

그 역사를 통하여 교훈 받도록 권고한 것이다.

 

3,12-19 :

저자는 “주님의 주되심”을 충분히 밝힌 후 주님을 거역하지 않도록

몇 가지 권고의 말을 하고 있다.

하나는 조심하라는 것이다.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은 불신앙의 마음이다.

왜냐하면 불신앙의 마음에 미혹될 때 우리는 살아계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다. 믿는 사람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것보다 더 두려운 일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믿는 자는 항상 불신앙에 미혹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다음은 이와 같은 미혹을 받지 않도록 피차 권면하라는 것이다.

본문 중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라는 권고에서

“오늘” “매일” “피차” 등과 같은 표현들은 우리에게 권고가

얼마나 실제적이고 필요한 것인지 말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우리가 죄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길들 가운데 하나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 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음의 공동체 안에 거할 때

이와 같은 권고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죄의 유혹으로부터 피하기 위하여 준 권고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처음 믿음을 끝까지 붙들라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료가 된 사람들입니다.

처음의 결심을 끝까지 굳건히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3,14).

이 권고는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믿음의 길을 출발했을지라도

믿음의 여정에서 불신앙의 유혹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유혹이 있을 때마다

우리를 처음 믿음의 길로 인도했던 그 확신으로 돌아가서

다시 믿음을 재확인해야 한다.

 

4,1-11 :

여기에서 저자는 “안식”을 주제로 하여 성도들에게 권고하고 있다.

여기 “안식”이란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허락해 주신 완전한 축복을 의미한다.

하느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무엇보다 먼저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그 날을 지키도록 하심으로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 안에서만 참된 안식이 있음을 알도록 하셨다.

따라서 여기 하느님께서 약속해 주신 안식은 단순히 노동으로부터

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수고와 고통이

모두 극복 된 하느님 안에서 누리게 되는 샬롬을 의미한다.

저자는 우리에게 이런 안식이 약속되어 있음을 말해 주며,

불신앙으로 인하여 이 축복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 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 축복은 창조 이후부터 계속 존재 해 왔다.

하느님은 이 축복을 모든 시대 이스라엘에게 알리시기 위하여

모세를 통하여 제 칠일을 안식일로 정하여 지키게 해 주심으로

하늘의 참된 안식을 소망하게 하셨고,

여호수아의 지도 아래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신 후에

이스라엘을 그 땅에서 정착하게 하심으로 그것을 참 안식의 모형으로 삼도록 하셨다.

또 다윗의 글을 통해서도 이스라엘에게 이 축복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그 자체가 참 안식은 아니다.

하느님 안에 있는 완전한 안식의 모형일 뿐이다.

하느님은 이런 모형을 통하여 하느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참 안식의 날을 소망하며 살도록 하신 것이다(4:4-8).

이런 의미에서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참 안식할 날은

여전히 미래의 것으로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다(4:9).

그러므로 저자는 우리에게 “그와 같은 불순종의 본을 따르다가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게, 우리 모두 저 안식처에 들어가도록

힘씁시다.”(4,11)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의 백성들은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 이 축복에 참여할 수

있으므로 이런 자들에게는 바로 “오늘”이 안식이 되는 것이다(4,7).

 

위대한 대사제이신 예수님(4,14-5,10)

4,12-16 :

저자는 이 편지를 읽는 성도들에게 지금까지 말한 것이 진리임을 다시

한번 확인 시켜 주기 위하여 하느님의 말씀의 확실성을 말해 주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12-13절).

하느님의 말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고 능력이다.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다”는 것은 말씀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능력을

무엇보다 잘 표현해 주고 있는 말이다.

즉 하느님의 말씀은 예리한 검처럼 우리의 마음과 생각 가운데 역사한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 앞에서 아무도 핑계할 수 없는 것이다.

저자의 관심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고 권면한 후,

또 다시 우리에게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갑시다.”(4,14) 라고 권고하고 있다.

우리가 굳게 잡아야 할 믿음의 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연약함을 몸소 체험하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아실뿐만 아니라 우리를 가엾게 여기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하여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그 분을 믿고

은혜의 보좌 앞에 나가 필요한 도움을 청할 수 있다.

 

5,1-4 :

본 장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심”이다.

제사장은 레위 지파 가운데 아론의 후손들 가운데

율법이 정한 자격에 합당한 자만 할 수 있는 성직이다.

제사장의 직무는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 일이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라고 할 수 있다.

제사장들에게는 백성들이 누릴 수없는 특권이 있다.

그들은 성소를 출입하며 하느님을 섬길 수 있는 특권과

거룩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있으며

또한 제사장들 가운데 제비 뽑힌 사람은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느님과 대면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러므로 제사장직은 영광스러운 것이고

오직 부르심을 받은 존귀한 자들만 할 수 있는 직무이다.

 

5,5-10 :

하느님께서 아론의 후손들을 통하여 계시하신 장차 임하실

온전하고 영원한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은 인간의 혈통이나 인간의 班列을 좇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된 것이다.(5,5절).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내가 오늘 너를 낳았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주님의 대제사장직이 인간의 혈통이나 반열을 좇아 된 것이 아니고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말해 준다. 이처럼 신적 기원을 둔

제사장직을 “멜기세덱의 班次를 좇은 제사장(5,6)”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멜기세덱에 대해서는 우리가 충분히 알 수 없다.

히브리서 저자는 멜기세덱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렵다”(5,11).

여기 멜게세덱에 관해서는 창세기 14장과 시편110편에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구절들을 통하여 멜기세덱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살렘 왕이었다는 것과 하느님의 제사장이었다는 것,

그리고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취한 노획물 중에서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을 때 그가 아브라함에게 복을 빌어 주었다는 것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로 계실 때 자신의 몸으로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셨다(5,7-9).

예수 그리스도는 이처럼 자신을 우리를 위한 온전한 희생이 되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신 것이다.